‘폰 육아’ 대신 ‘책 육아’ 택한 엄마들… 동화책 놀이터 실험 통했다
<10> 대구 ‘책이 재밌는 파티’ 가보니
토요일인 지난달 21일 대구 중구의 한 빌딩 1층. 책 1만여 권으로 벽이 꽉 찬 165㎡(50평) 공간에 어린이 26명, 어른 14명 등 40명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부모가 아이 손잡고 참가하는 주말 독서 모임 ‘책잼파티’다. ‘책이 재미있는 파티’라는 이름의 모임은 2년 전부터 매달 셋째 주 토요일에 열린다.
도서관 열람실처럼 적막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아이들은 책장에서 그림책을 여러 권 골라 엄마·아빠에게 달려가 “책 읽어주세요” 소리쳤다. 부모가 소리 내 책을 읽기 시작하면 주변에 있던 아이들 서넛이 몰려들어 함께 그림책을 보며 깔깔 웃었다. 오전 10시 시작된 책 읽는 소리는 오후 4시에 끝났다.

작년 11월부터 책잼파티에 꾸준히 나오는 홍소미(10)양은 “오늘 책을 5권이나 읽었다”고 자랑했다. 조선 임금 단종에 대한 212쪽 분량 동화 ‘어린 임금의 눈물’과 프랑스 예술가 마르셀 뒤샹의 작품 ‘샘’을 다룬 그림책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변기’를 읽었단다. “여기 오기 전까진 만화책만 봤는데, 이젠 줄글 책이 더 재밌어요. 집에서도 매일 30분씩 읽어요.”
책잼파티를 주도한 건 ‘산후조리원 동기들’이었다. 엄마들이 “‘스마트폰 육아’ 대신 ‘책 육아’를 해야 한다”고 뜻을 모은 게 발단이었다. 모임을 주도한 최혜정(43)씨는 2018년 출산을 했는데, 곧 코로나가 터져 아이와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육아가 지칠 때 세살짜리 아들에게 스마트폰을 쥐여주곤 했다. 최씨는 “‘휴대전화만 주다간 아이 정서에 좋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는데, 산후조리원 동기들과 이야기해보니 서로 비슷한 걱정을 갖고 있더라”라고 했다. 엄마들은 휴대전화 대신 책을 찾기로 했다. 2021년 주변에서 독서 전문가 김혜진(51) 생각꽃지구놀이연구소 대표를 소개받았다. 김 대표는 엄마들의 걱정을 듣고 무상으로 ‘아이에게 그림책 읽어주는 법’을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그림책을 보면서 아이와 대화하는 방법, 생각을 이끌어내는 방법을 알려줬다. 김 대표 수업을 들은 엄마들은 ‘우리가 알게 된 걸 다른 엄마, 아이들과도 나누자’는 생각으로 ‘책잼파티’를 열게 된 것이다. 김 대표는 좋은 취지의 독서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교습소를 무상으로 빌려주고 있다.
처음엔 20여 명 정도 모였다. 그런데 대구 학부모 사이에서 “주말 집에서 스마트폰 보는 대신 아이와 책 읽는 활동이 있다”고 소문이 나면서 지금은 40~50명 규모로 불어났다. 책을 읽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대부분 초등학생과 부모가 참여하는데, 부모가 사정이 있으면 아이만 보내도 된다. 간식과 기념품을 주기 때문에 참가비는 1인당 2만원씩이다.
책잼파티는 ‘대화하는 독서’를 지향한다. 예컨대, 사랑스러운 아이가 흉측한 모습으로 변하는 내용의 그림책 ‘내 이름은 자가주’를 읽고 아빠가 아이에게 “만약 사랑하는 사람이 이상하게 변하면 어떨 것 같아?” 하고 질문을 던진다. 아이들이 돌아가며 생각을 말하다 ‘까르륵’ 웃는다. 이렇게 남과 이야기하며 읽는 방식이 혼자 조용하게 독서하는 것보다 책에 대한 흥미를 높이는 데 좋다는 믿음에서다. 성수연(10)양은 “친구들이랑 같이 책 읽고 이야기하는 게 재미있어서 책잼파티가 기다려진다”고 했다.
한때 ‘휴대전화 수거함’을 두기도 했다. 스마트폰이 독서를 방해할 수 있으니 수거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몇 달 후 자연스럽게 수거함이 사라졌다. 너도나도 책 읽고 대화하는 분위기가 잡혀가자 스마트폰을 꺼내 보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 파티에 온 아이들도 또래를 따라 책만 읽었다. 기자가 찾은 날도 스마트폰을 꺼내 보는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책을 멀리했던 아이도 책잼파티에 오고 나서 눈에 띄게 달라졌다. 손영화(44)씨는 아들(9)이 도통 책을 읽지 않아 걱정이 돼 작년 5월 처음 이곳을 찾았다. 말소리가 끊이지 않는 파티 모습이 처음엔 낯설었다. 그런데 나중엔 아이에게 더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씨는 “애가 원래 TV 볼 때를 빼곤 집중하는 걸 어려워했는데, 책잼파티는 카펫에 누워 책을 읽어도 되는 자유로운 분위기였다”면서 “그러니 아이가 조금씩 책에 흥미를 붙였고, 지금은 집에서도 매일 1시간 책을 읽는다”고 말했다. 손씨와 남편은 집 역시 독서하는 분위기로 만들고 싶어서 저녁 식사 이후엔 TV를 안 틀고 나란히 책을 읽는다. 책잼파티가 부모도 바꾼 것이다.
파티에 왔던 엄마 5~6명은 ‘새벽 독서’ 모임도 만들었다. 매일 오전 6시에 화상으로 만나 1시간 동안 각자 책을 읽는다. 이유진(39)씨는 “매일 아침 새벽 독서를 하니 어느 날부터 아이가 일어나선 내 옆에 와서 같이 책을 펼치더라”라고 말했다.
김혜진 대표는 “‘책잼파티’처럼 부모가 아이와 함께 책을 즐기고 생각을 나누는 동네 모임이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독서 문화가 퍼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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