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태기의 사이언스토리] 물리학 우등생이 수영 세계기록 경신… ‘한 우물’ 조기교육 집착 버려야
한 가지만 파는 영재교육 대신 운동·예술까지 여러 ‘학습 자본’ 쌓아야

올해 3월 호주 수영선수 캐머런 매커보이(McEvoy)가 무려 16년 만에 50m 자유형 세계 기록을 경신했다. 이전 기록은 물과 마찰을 줄이는 전신 수영복 덕분이었다. 한때 전신 수영복의 발달로 2009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43개의 신기록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수영 경기가 수영복 경쟁으로 변질되자 세계수영연맹은 2010년부터 전신수영복을 금지하기에 이른다. 이후 기록 깨기가 쉽지 않았는데 매커보이가 이 벽을 넘은 것이다.
이번 기록이 주목받으면서 매커보이가 대학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전공한 우등생이라는 사실이 새삼 부각됐다. 수영모에 파인먼 다이어그램이나 중력파를 새겨넣을 정도로 물리학에 진심인 사나이가 매커보이다. 그는 기존 상식에 반하는 훈련을 했다. “수영은 덜 하면서 금메달을 따자(Swim less, win gold)”라며 매주 30km 헤엄치던 훈련량을 2km로 줄였다. 공부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다른 운동으로 물리적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해서 2024년 파리 올림픽 금메달을 땄다. 여기서 우리는 공부와 운동은 별개라는, 그리고 어릴 때부터 하나만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맞는지 따져봐야 한다.
매커보이와 반대로 운동선수였다가 노벨상을 받은 물리학자도 있다. 양자역학의 문을 연 덴마크의 닐스 보어(Bohr)는 동생 하랄트 보어와 함께 축구 선수였다. 생리학 교수였던 아버지는 두 아들에게 축구를 가르쳤고, 보어 형제는 대학에서도 축구를 계속해서 아카데미스크 볼트클럽 선수로 활약했다. 이 구단은 덴마크 리그 우승 9회, 코펜하겐 리그 우승 8회, 덴마크 컵 우승 1회, 코펜하겐 컵 우승 6회를 기록한 덴마크 최고 명문 구단 중 하나였다.
형 못지않게 천재 수학자였던 하랄트는 덴마크 축구 국가대표로 선발돼 1908년 올림픽에 출전해 골을 기록하고 은메달을 땄다. 워낙 인기 선수라 하랄트의 박사 논문 심사에는 수학자들보다 축구 팬들이 더 많이 왔다. 이후 다시 수학자의 길을 걷게 된 하랄트는 형의 빛에 가려져 있지만, 그의 이름을 딴 수학 정리가 여럿 있을 정도로 세계적인 업적을 남겼다.
노벨상 수상자 퀴리 부부 역시 자녀 교육에 스포츠를 강조했다. 이렇게 자란 퀴리 부부의 딸 이렌은 1935년 남편 프레데리크와 함께 노벨상을 받는다. 프레데리크 역시 운동에 뛰어났다. 당시 이렌 부부는 프랑스의 스키 전설 에밀 알레(Allais)와 함께 스키를 즐겼다. 알레는 1936년 동계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땄고, 1937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선수였다. 노벨상 부부의 스키는 취미 수준을 넘었다.
이런 사례는 몇몇 예외적인 천재에만 해당할까? 지난해 12월 세계적인 과학 학술지 ‘사이언스’에는 흥미로운 논문이 발표됐다. 독일의 저명한 스포츠 과학자 아르네 귈리히(Güllich) 교수팀은 여러 분야에서 세계 정상급 실력을 갖춘 성인 수만 명을 분석했다. 예상과 달리, 어린 시절 영재였던 비율은 10% 정도였고, 나머지 90%는 별로 두각을 나타내지 않았던 인물들이었다. 스포츠뿐 아니라 체스, 학술 연구, 예술 등 전 분야에서 동일한 패턴이 확인되었다. 어린 시절 영재였던 집단과 성인기에 월드 클래스의 반열에 오른 집단은 사실상 별개라는 의미다. 조기 영재 교육이 중요하다는 신화에 균열을 내는 결과다.
귈리히 교수팀은 성인기에 정상에 오른 이들이 대부분 어린 시절 하나에 집중하기보다 여러가지 경험을 쌓았다는 점을 주목했다. 아이가 소질을 보이는 분야의 조기 교육이 큰 효과가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아이들의 뇌와 신체는 충분히 자라지 않은 상태다. 다른 분야에서 더 뛰어난 퍼포먼스를 가져올 수 있는 소질을 가질 가능성도 크다. 따라서 당장 보이는 재능에 몰두하게 하는 것은 상당히 모험일 수 있다. 오히려 다양한 경험을 한 아이가 자신의 적성을 제대로 찾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과학 영재가 예술이나 운동 능력을 같이 키우면 문제를 다양한 시각으로 파악할 수 있는 힘을 갖출 수 있게 된다. 귈리히 교수팀의 논문은 이러한 다학제적 교육이 학습 자본(Learning Capital)을 쌓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분야를 넘나들며 축적된 유연성은 훗날 전공 분야에서 맞닥뜨릴 난관을 돌파하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더욱이 스포츠 영재가 다른 종목도 함께 병행해서 운동하면 단일 근골격계의 반복에서 벗어나 부상을 방지할 수 있다. 성장기에 다양한 경험으로 다져진 기초가 성숙기에 폭발하게 된다. 어릴 때부터 한 분야에만 몰두하게 하면, 나중에 흥미를 잃어도 매몰 비용에 대한 덫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점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매커보이가 금메달을 딴 파리 올림픽에서 미국 스탠퍼드 대학 재학생과 졸업생이 딴 메달은 모두 39개로 우리나라 대표팀보다 많았다. 미국 대학은 학점이 안 좋으면 선수를 못한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는 공부와 운동을 별개로 생각한다. 운동하는 지성의 문화는 이웃 나라 일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일본에서 중고교 및 대학생들은 ‘부카츠(部活動)’를 통해 체육·예술에 적극 참여한다. 골프광이었던 일본의 오무라 사토시는 골프화에서 발견한 미생물로 2015년 노벨상을 받았다.
그래도 여전히 대부분의 엘리트 교육은 조기 영재 발굴과 한 우물 파기를 택하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는 이런 경향이 훨씬 심한 것 같다. 모두를 영재로 키울 것도 아니고, 설사 영재라도 어린 시절부터 한 분야만 파는 게 정답이 아니라면, 우리 교육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다양한 경험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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