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억 9000만원’ 작품 한 편 제작비로 15편 올리는 발레축제

고승희 2026. 4. 26.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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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억9000만원으로 15편 무대에
대한민국발레축제, ‘열정 페이’로 버텨
21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제16회 대한민국발레축제 기자간담회에서 안호상 세종문화회관 사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없는 살림에 알차게 꾸몄다.

“지난해 발레 축제의 예술감독이 됐을 때부터 예산 얘기를 했는데 올해도 예산을 꺼내는 저를 이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김주원 대한민국발레축제 예술감독은 제16회 축제를 앞두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올해 대한민국발레축제의 총예산은 3억9000만원. 전년보다 3000만원 증가했지만, 장장 두 달여간 예술의전당과 세종문화회관 일대에서 꾸리기엔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총 15편, 27회 공연, 15회의 부대 행사를 진행하는 축제 규모를 고려하면 작품 하나 제작비로 한 달간의 축제를 운영하는 셈이다.

안호상 세종문화회관 사장은 “한 작품 제작비도 3억5000만원 가지고 충분하지 않은 예산인데 그걸 가지고 축제를 하고 있다”며 “어려운 일정과 공간 확보, 부족한 예산 속에서도 프로그래밍을 해낸 축제 관계자들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안 사장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서울시발레단과 발레축제를 연계,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하고 있다.

개막작은 유니버설발레단의 ‘심청’. 올해로 초연 40주년을 맞은 이 작품은 발레축제의 성대한 시작을 알린다.

김주원 감독은 “저희가 직접 작품을 제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신작으로 개막작을 올리고 싶지만 한계를 느낀다”며 “유니버설발레단이 축제 개막작으로 ‘심청’을 올리는 것은 저희와 함께 가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턱없이 부족한 예산이지만, 지난 오랜 시간 동안 대한민국발레축제는 민간 발레단의 든든한 지원군이 돼줬다.

김길용 와이즈발레단 단장은 “저희 와이즈발레단은 21년 됐고 서울발레시어터가 31년 됐는데, 저희들도 예술의전당 무대에서 공연하기가 너무 힘들다”며 “이 대한민국발레축제를 통해서 1년에 한 번이라도 이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게 큰 의미”라고 밝혔다.

21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제16회 대한민국발레축제 기자간담회에 정구호 연출가(왼쪽 두번째부터), 김주원 대한민국발레축제추진단 대표 겸 예술감독, 안호상 세종문화회관 사장이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와이즈발레단은 김유미 안무가와 함께 작업한 ‘프리다’를 무대에 올린다. 프리다 칼로의 삶과 예술을 탐구하고, 그의 여정을 돌아보는 작품이다.

김 단장은 “한국에서 컨템포러리 발레, 창작 발레는 정말 티켓 파워가 없다. 저희 민간 발레단들도 열심히 열정으로 안무하고 무대에 올리지만 재공연되기가 너무 힘들다”며 “대한민국발레축제를 통해 죽어가던 작품을 심폐소생하듯이 살리는 역할을 해주고 있기 때문에 저희 민간 예술단체에게는 되게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춘천발레단은 ‘세비야의 이발사(브라보 휘가로)’를 통해 예술의전당에 입성한다. 백영태 춘천발레단 예술감독은 “강원도에서 서울에 와서 특히 예술의전당이라는 곳에서 공연하기에는 정말 엄두도 못 낸다. 이런 자리가 있어서 춘천에도 엄청난 바람이 불고 있다”며 “초창기 멤버로서 참여했던 사람으로서 정말 비약적으로 발전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창작을 아무리 열심히 작품을 짜더라도 그게 일회성, 이회성으로 끝나버린다. 티켓 파워가 없기 때문”이라며 “조금만 관심을 가져주시고 이 대한민국발레축제가 지금보다 좀 돈이 더 풍성해져서 제작자나 안무가들이 조금 더 여유 있게 하고 싶은 의상, 장치, 안무를 할 수 있게 지원이 가능하면 감사하겠다”고 덧붙였다.

대한민국발레축제는 2011년 시작돼 올해 16주년을 맞았다. 초창기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지정 사업으로 국립발레단과 예술의전당이 공동 기획하며 예산이 풍부했지만, 2019년부터 민간으로 전환되면서 지원금을 받아 운영하는 구조로 달라졌다. 그 때부터 ‘예산과의 전쟁’이 시작됐다.

김주원 감독은 “사실 16년 전에는 문체부의 지정 사업으로 국립발레단과 예술의전당의 공동 기획으로 예산이 풍부하던 시절 올려졌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은 저희가 민간으로 전환해서 지원금을 받고 올라가는 축제가 되면서 조금 사실 언제나 예산과의 전쟁”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적은 예산에서 최대의 아이디어를 내기 위해 다들 너무 고민해 주고 계신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발레축제는 이제 한국 발레계의 수준은 무용수들과 저희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들은 세계적인 수준에 다가갔다고 생각한다”며 “지금은 창작자를 만들어야 하고 좋은 콘텐츠를 개발해야 하는 시기”라고 진단했다.

그런 만큼 올해 발레축제를 꾸미는 작품의 면면이 화려하다. 안호상 사장은 “발레축제가 끊기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은 한국 발레계 전체의 역량이 그만큼 되기 때문”이라며 “오페라는 같이 시작했는데 지금 거의 흔적이 없어지고 있는 것 같다. 발레축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많을 것이고, 또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축제는 ‘에코(공명)’를 주제로 풍성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서로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메트로놈이 공진 현상을 통해 하나의 박자로 맞춰지듯, 다양한 발레 작품들이 관객과 사회에 깊은 울림을 주기를 바라는 의미다.

21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제16회 대한민국발레축제 기자간담회에서 김주원 대한민국발레축제추진단 대표 겸 예술감독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니버설발레단의 ‘심청’을 시작으로, 서울시발레단에선 국립발레단 단원 강효형이 안무를 맡은 ‘인 더 밤부 포레스트’(5월 15~17일, 세종문화회관), 광주시립발레단의 ‘해적’(5월 30일), 서울발레시어터 ‘피에스타’(6월 3일, 예술의전당)와 와이즈발레단의 ‘프리다’(6월 3일, 예술의전당), 민간단체의 아함아트프로젝트의 ‘낫아웃’(6월 11~12일, 예술의전당), 신현지 B 프로젝트의 ‘휴먼’(6월 11~12일, 예술의전당), 녹색달의 ‘도깨비잔치’(6월 16~17일, 예술의전당), 무브먼트 몸의 ‘도깨비의 춤’(6월 16~17일, 예술의전당)이 이어진다.

축제 자체 기획 공연도 눈에 띈다. 정구호 연출가는 클래식 명작 속 여주인공 캐릭터를 재해석한 ‘정구호의 테일 오브 테일스(TALE OF TALES)’를 선보인다. 그는 “발레에서 발레리나가 갖고 있는 의미가 굉장히 크고, 그 발레리나의 역할 자체가 그 시대의 배경을 반영하는 부분이 많았다”며 “여성 발레리나가 갖고 있는 책임과 의무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아가는 의미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음악·미디어그룹 무토(MUTO)의 박훈규 연출가와 최수진·이루다 안무가는 ‘발레아리랑’으로 한국적 정서를 현대적으로 풀어낸다.

지금의 대한민국발레축제는 여러 단체의 오늘을 만날 수 있는 대형 플랫폼으로 기능한다. 김주원 감독은 대한민국발레축제를 “현재 발레계의 현시점을 볼 수 있는 곳”이라고 정의했다. “어떤 안무가들이 새로운 안무를 시작하는지, 어떤 안무가들이 성장하고 있는지, 발레단들이 현재 어떤 작품들을 창작하고 있고 어떤 클래식 작품들이 올라가는지를 볼 수 있는 장”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16년간의 그래도 어떤 저희의 노하우가 있다고 생각하고, 좋은 콘텐츠들을 개발하는 노력을 계속해야 하는 시점”이라며 “한국 발레는 이제 세계가 주목하는 수준에 올라와 있다. 세계 유수의 발레단에서 한국인 무용수들이 활약하며 주목을 받고 있고, 공공 발레단은 물론 민간 발레단의 창작 역량 또한 매년 성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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