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난 ‘전담 무인판매점’… 가짜 신분증도 통과시킨다

조경욱 2026. 4. 26. 19:19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일반담배와 동일 잣대 적용 불구
미성년자 구분 실패… 관리 허술
‘소매인 지정기준’ 기초단체 위임
‘무인 금지’ 부평구·서구·강화뿐


담배사업법 개정으로 니코틴을 원료로 하는 액상형 전자담배도 시중 일반담배와 동일한 잣대를 적용받게 됐다. 하지만 전자담배 무인 판매점은 여전히 성인인증 절차를 제대로 갖추지 않는 등 청소년들의 접근 문턱이 낮았다. 특히 기초자치단체마다 담배 무인 판매점에 대한 규제 대응도 차이가 있었다.

개정 담배사업법 시행 첫날인 지난 24일 오전 인천 남동구 번화가에 위치한 한 전자담배 무인 판매점. 형형색색의 네온사인 조명 아래 줄지은 여러 대의 전자담배 자동판매기(이하 자판기)가 눈길을 끌었다.

자판기 화면에는 수십 종류의 전자담배 제품이 표기됐다. 원하는 제품을 고르자 ‘신분증’ ‘휴대폰 인증’ ‘모바일 신분증’ ‘PASS 앱 인증’ 등 다양한 성인인증 방식이 나왔다. 신분증 인증을 선택한 후 곧바로 신분증을 올려놓으라는 안내가 나왔다.

전자담배 자판기가 실제로 미성년자를 구분할 성능을 갖췄는지 시험하기 위해 실물과 같은 크기로 인쇄한 ‘종이 신분증’을 올려놨다. 자판기 화면에 약 5초간 ‘신분증을 스캔 중’이라는 안내가 나왔고 결제 화면으로 넘어갔다. 재차 시도해봐도 자판기는 신분증의 진위 여부를 구별하지 못했다. A4용지에 조잡하게 인쇄한 종이 신분증으로 전자담배를 구입하는 데 3분이 채 안 걸렸다. 미성년자 역시 무인 판매점에서 전자담배를 사는 것이 어렵지 않아 보였다.

개정 담배사업법은 그동안 담배로 보지 않았던 액상형 전자담배를 일반 담배처럼 규제하는 게 골자다. 지난해 12월 23일 공포 후 약 4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쳤다. 시행일부터 생산되는 액상형 전자담배 포장과 광고에는 경각심을 주는 그림과 문구를 사용해야 한다. 금연구역에서 전자담배 흡연 시 과태료도 적용되며, 일반담배 판매점처럼 기초단체에서 일명 ‘담배권’으로 불리는 ‘담배 소매인 지정’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담배 자판기의 성인인증 관리는 허술하다. 당장 전자담배 무인 판매를 막을 방안도 없다. 기존 무인 판매점은 거리제한 요건을 2년간 유예받아 담배 소매인 지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유예기간 후에도 각 기초단체의 자체 규정에 따라 무인 판매점 운영 가능 여부가 갈린다.

최근 개정된 담배사업법으로 일반담배와 같은 규제를 적용받게 되는 전자담배가 무인 판매점의 허술한 성인인증으로 청소년들의 접근이 쉬운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2일 인천시 남동구 구월동의 한 24시 전자담배 무인 판매점의 모습. 2026.4.22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현행 국민건강증진법에서는 담배 소매인 지정 시 담배 자판기를 설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담배 자판기 설치가 금지되는 세부적 장소에 대해서는 기초단체에서 정하도록 위임한다. 즉 단체장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인천 각 기초단체 중 ‘담배소매인 지정기준 등에 관한 규칙’에 무인 담배 판매 금지를 명문화한 곳은 부평구와 서구, 강화군이다.

부평구는 지난 20일 규칙을 개정해 무인점포를 담배 판매업을 하기 부적당한 장소로 못 박았다. 현재 부평구 내 무인 전자담배 판매점은 담배권 유예기간이 끝나는 2년 뒤부터 운영이 불가능하다.

서구 역시 무인점포에 담배 소매인 지정을 할 수 없다는 내용을 지난해 7월 자체 규칙에 포함시켰다. 앞으로 담배 무인 판매점 신규 허가가 나지 않고, 기존 판매점도 2년 후 유인 운영으로 전환해야 한다.

강화군은 지난해 2월부터 같은 내용으로 규칙을 개정해 신규 무인점포의 담배 판매를 금지하고 있다.

반면 중구, 동구, 미추홀구, 연수구, 남동구, 계양구, 옹진군 등에는 담배 소매인 지정 규칙에 무인 판매를 금지하는 내용이 아직 없다. 다만 동구는 ‘구청장이 부적당하다고 인정하는 장소’에 담배 소매인 지정을 거부할 수 있다고 보고 과거부터 무인 판매점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 연수구 역시 같은 기준으로 무인 판매점에 대한 신규 허가를 앞으로 내지 않겠다는 계획이지만, 이미 영업 중인 무인 판매점 가운데 담배권 거리기준을 충족하는 점포 2곳은 유예기간 후에도 운영을 지속할 수 있다. 또 옹진군도 관내 1곳(백령도)의 무인 전자담배 판매점에 대해 24일부터 유인 운영으로 전환하도록 했다.

무인점포의 담배 판매 금지 규정이 없는 한 기초단체 관계자는 “다른 지역 사례를 바탕으로 담배 소매인 지정 규칙 내 무인점포 판매 금지를 명시하려고 검토 중”이라고 했다.

/조경욱 기자 imjay@kyeongin.com

Copyright © 경인일보 All rights reserved.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