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베일 싸인 ‘공화춘 창시자’… 인천 화교사회, 면밀 분석 제안
알려진 우희광 ‘마지막 소유주’
초기 주식 증서에는 이름 없어

인천에서 처음으로 ‘짜장면’을 팔았다고 알려진 중국집 ‘공화춘’의 창시자가 그간 알려진 우희광(于希光·1886 ~1949)이 아닌 다른 인물이라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화교사회에서도 짜장면에 얽힌 인천의 근대 개항기 역사를 다시금 짚어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23일 오전 10시께 인천 중구 차이나타운에 있는 짜장면박물관에는 평일인데도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개항기 인천에 터를 잡은 화교들의 삶과 짜장면의 역사 등을 알리기 위해 중구가 인천시의 지원을 받아 지난 2012년 과거 중국요리집 공화춘 건물을 매입해 지은 짜장면박물관은 차이나타운의 명소로 자리잡았다.
입구 앞 안내판에는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인천 선린동 공화춘’의 창시자를 산둥성 출신 화교인 우희광으로 설명한다. 또 공화춘의 전신은 청국 조계지에서 음식점과 호텔의 혼합형 숙식업소인 ‘산동회관’으로 소개한다. 1911년 우희광이 지금의 짜장면박물관 위치로 이전해 개업했다가, 이듬해 중화민국 수립을 기념해 ‘공화국의 봄’이라는 의미의 ‘공화춘(共和春)’으로 개명했다고 안내한다.
그러나 박물관 2층에 들어서면 공화춘 창시자를 우희광으로 보는 기존 통설과 배치되는 사료인 ‘공화춘 주식 매매 증서’를 확인할 수 있다. 1914년 발행된 해당 증서에는 공화춘을 대표하는 ‘총리인(總理人)’에 ‘곽추방(郭秋舫)’이라는 인물이 기록돼 있다. 총리인은 당시 ‘대표자’를 뜻하는 단어로, 가장 큰 지분을 지닌 인물을 의미한다.

이로부터 8년 후인 1922년 1월 작성된 또 다른 주식 매매 증서에서야 ‘우희광’이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우희광이 공화춘 주식 1주를 매수했다는 내용이다. 이때 그의 직함은 총리인이 아닌 ‘경리인(經理人)’이었고, 증서 내 ‘총리인’ 자리에는 ‘왕심보(王心甫)’라는 또 다른 인물이 적혀있다. 경리인은 오늘날로 치면 식당을 관리하는 지배인에 해당한다는 것이 학계의 해석이다.
이정희 인천대 중국학술원 교수는 논문 ‘조선화교의 중화요리점 연구- 1880년대~1920년대를 중심으로’(2017)에서 ‘인천의 공화춘도 여러 명의 주주로 구성된 합자회사’라며 ‘1922년 1월 15일 발행된 주식을 보면 (공화춘의) 사장은 왕심보, 부사장은 필명향, 지배인은 우희광이었다’고 기술했다. 이를 종합하면 우희광은 공화춘의 지배인으로 시작해 지분을 확대해온 인물이며, 장기간 지분을 늘리며 경영에 참여했고 훗날 공화춘 건물을 매입해 마지막 소유주가 됐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해당 주식 증서를 짜장면박물관에 기증한 우희광의 증손자 우례후씨는 경인일보와 통화에서 “설립 당시 공화춘은 규모가 컸던 만큼 여러 투자자가 모여 주식 형태로 자금을 조달해 만든 식당”이라며 “증조부께서는 공화춘 창시에 함께 참여한 것은 맞으나, 지금으로 치면 ‘현장 매니저’로서 일을 한 것이라 초기 주식 증서에는 이름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주희풍 인천화교협회 부회장은 “우희광은 말단 관리자에서부터 점차 지분을 늘려가며 끝까지 공화춘을 지켜낸 인물로서, 인천의 짜장면 요리를 발전시켜온 업적을 인정받아야 한다”며 “주식 증서와 같이 공화춘 창시자와 관련한 정황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박물관에 남아 있는 만큼, 이에 대해 더 면밀한 분석과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송윤지 기자 ssong@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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