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563> 부친에 이어 제주도에 유배된 북헌 김춘택의 시

조해훈 시인·고전인문학자·목압서사 원장 2026. 4. 26.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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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에 두 번이나 유배객 되다 보니(殊方爲客再·수방위객재)

변방에 두 번이나 유배객 되다 보니(殊方爲客再·수방위객재)/ 당연히 서로 아는 사람들이 있네.(亦有故相知·역유고상지)/ 흰머리건만 아름다운 기녀를 보면 부끄럽고(白髮羞佳妓·백발수가기)/ 개구쟁이 아이들 보면 크게 웃네.(開顔賴小兒·개안뢰소아) (하략)

위 시는 조선 후기 문사인 북헌(北軒) 김춘택(金春澤·1670~1717)의 ‘제주에서 읊은 여러 시편(濟州雜詩·제주잡시)’ 20수 중 마지막 수의 일부로, 그의 문집인 ‘북헌집(北軒集)’ 권 2에 들어있다.

두 번이나 유배객이 되고 보니 아는 사람도 있다는 말에서 아픔이 배어나기도 하지만 그나마 여유도 느껴진다. 죄가 중한데 사형을 면한 자가 유배되는 곳이 당시 제주였다. 그는 1691년 제주에 유배 온 부친 김진구(金鎭龜·1651~1704)를 보필하기 위해 20대에 제주에 와서 장기간 머문 적이 있었기에 30대 때 유배는 제주와의 두 번째 만남이었다. 부자(夫子) 간 2대에 걸친 유배객이다.

김춘택 가계를 보면 조부는 숙종의 장인인 광성부원군 김만기(金萬基), 부친은 호조판서를 지낸 김진구, 종조부는 ‘사씨남정기’와 ‘구운몽’을 지은 김만중(金萬重)으로, 그의 집안은 조정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 노론 거족이었다.

본 연재 554회에 소개한 김진규는 김진구의 동생으로, 김춘택에게는 작은아버지이다. 김진구는 귀양살이 5년 동안 제주의 자제들을 가르쳐 그중 이중발(李重發) 오정빈(吳廷賓) 고만첨(高萬瞻) 3명은 문과 급제까지 했다.

김춘택은 남인과 소론에 의해 평생을 옥사와 유배로 보냈다.

숙종 때 치열한 정쟁 와중에 28세 때인 1697년 황해도 금천 유배를 시작으로 평생 세 차례 투옥과 다섯 차례 유배형을 받았는데, 제주 유배는 37세 때인 1706년 시작해 1710년까지 이어졌다. 그는 종조부인 서포 김만중의 소설 ‘구운몽’ ‘사씨남정기’를 한문으로 번역했고, 가사(歌辭) ‘별사미인곡(別思美人曲)’도 지었다. 김춘택이 제주 유배 기간에 지은 시 중에 위 시와는 달리 제주를 유형의 땅으로 인식한 작품들도 있다.

필자는 그제(25일) 제주도에 와 이틀을 보냈다. 김춘택이 부친에 이어 제주도에 유배 산 일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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