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반도체 호황을 ‘소수의 잔치’로 머물지 않게 하려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 AI 시대를 맞아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가 폭증하면서 두 기업이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반가운 소식이다. 임직원들은 역대급 성과급을 기대하고 있다. 하이닉스는 7억 원대 얘기가 나오고, 삼성노조는 성과급 상한제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같은 시기 우울한 소식도 함께 전해졌다. 일도 구직도 하지 않는, '쉬었음 청년'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반도체는 초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그 온기가 극소수에게만 닿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런 온도 차가 생기는 데는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 반도체 산업이 소수 초대형 기업 중심으로 성장해 왔기 때문이다. 실제 기술력과 투자 규모는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산업 생태계는 두께가 매우 얇다. 협력업체 상당수는 단순 하청 구조에 머물고, 소재·장비·설계 분야에서 독립적인 경쟁력을 갖춘 기업은 손에 꼽을 정도다. 대기업이 호황을 누려도 그 효과가 산업 전반으로 퍼지지 못하는 이유다.
이에 반해 대만은 전혀 다른 길을 걸어왔다. 반도체의 메카 신주 과학단지에는 TSMC를 중심으로 팹리스(설계)·파운드리(생산)·소재·장비 기업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대만 정부 역시 인력 양성과 연구개발, 세제 지원을 일관되게 뒷받침하고 있다. 그 결과 대만은 TSMC 한 회사의 성공이 아니라 수백 개 기업이 함께 성장하는 생태계를 만들어냈다. 호황의 과실이 특정 기업에만 머물지 않고 사회 전반으로 흘러가는 구조를 형성한 것이다.
미국도 이 교훈을 뒤늦게 깨달았다. 반도체 제조를 해외에 아웃소싱하며 효율을 추구했지만 공급망 위기를 겪은 뒤 수천억 달러를 투입해 자국 생산으로 방향을 틀었다. 분산이 아닌 집적, 그 안에서 생태계를 구성하려는 것이다.
우리도 이제 방향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 핵심은 두터운 반도체 생태계의 구축이다. 이를 위해선 먼저 소재·부품·장비 기업의 독립적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일본 수출 규제 이후 국산화 성과가 있었지만 핵심 기술의 해외 의존도는 여전히 높은 상황이다. 납품을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 자체 기술로 경쟁하는 기업을 육성해야 한다. 삼성·SK와 협력업체 간 공동 R&D와 기술 공유 플랫폼이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둘째, 팹리스 산업을 적극 육성해야 한다. 우리는 메모리 반도체는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시스템 반도체 설계에서는 미국·대만에 크게 뒤처져 있다. 더구나 메모리에 편중된 구조는 시장 사이클에 지나치게 취약하다. 사상 최대 이익을 올렸다고 성과급 잔치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니다. 시장 상황에 따라 언제 곤두박질칠지 모른다. 설계 인프라와 테스트베드, 투자 환경을 갖춰 유망 스타트업이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해야 한다.
세 번째는 지역 클러스터 전략을 재정비해야 한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이 추진되고 있지만 공장 집적만으로는 부족하다. 연구소·대학·스타트업·협력업체가 모여 기술이 순환하고 창업이 이어지는 혁신 생태계로 발전시켜야 한다. 일부에서 선거를 앞두고 클러스터의 지방 이전을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반도체 생태계의 본질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오히려 수원·용인·화성·평택을 잇는 반도체 벨트를 하루빨리 완성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대만 반도체의 경쟁력은 신주 과학단지를 중심으로 수백 개 협력사의 집적에서 나왔다.
마지막으로 인력 양성 체계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반도체 인력 부족은 이미 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 대학 정원 확대를 넘어 실무형 교육·산학협력·해외 인재 유치를 아우르는 종합 전략의 고도화가 요구된다. 이공계에 대한 파격적인 혜택과 함께 '쉬었음' 청년이 줄어들 수 있는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절실하다.
삼성과 하이닉스의 성과는 눈부시다. 그러나 그것이 협력업체의 성장으로, 청년의 일자리로, 지역 경제의 활성화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반도체 호황은 결국 '소수의 잔치'에 불과할 뿐이다.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6·3 지방선거, 거대 정당들은 저마다 경제 활성화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당장의 표를 노린 파편적 공약보다, 반도체 호황을 어떻게 우리 경제 전반의 성과로 연결할 것인지 고민하고 솔루션을 제시해야 한다. 그것이 극명하게 벌어지는 양극화를 완화하고 우리 경제의 미래를 열어갈 핵심적인 공약이다.
민병수 디지털뉴스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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