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아침을 읽다] 살구꽃과 한때 - 황동규

권영준 2026. 4. 26. 18:40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마을 안에 차 집어넣고 이 집, 한 집 건너 또 저 집,

구름처럼 피고 있는 살구꽃과 만난다.

빈집에는 작지만 분홍빛 더 실린 꽃구름,

때맞춰 깬 벌들이 이리저리 날고

날개맥(脈) 덜 여문 나비들이 저속으로 오간다.

소의 순한 얼굴이 너무 좋아

소 앞세우고 오는 마을 사람과 눈웃음으로 인사한다.

하늘 구름이 온통 동네에 내려와 있으니 말을 걸지 않아도 말이 되는군.

차에 올라 시동 걸고도 한참 동안 밖을 내다본다.

꽃들의 생애가 좀 짧으면 어때?

달포 뒤쯤 이곳을 다시 지날 때

이 꽃구름들 낡은 귀신들처럼 그냥 허옇게 매달려 있다면……

꽃도 황홀도 때맞춰 피고 지는 거다.

다리를 건너 가속 페달 밟으려다 말고

천천히 차를 몬다.

몸 돌려 보지 않아도

차 거울들 속에 꽃구름 피고 있고 차 거울로는 잘 잡히지 않으나

하늘의 연분홍을 땅 위에 내려 받는 검은 둥치들이

군소리 없이 구름을 잔뜩 인 채 서 있겠지.

차를 멈추고 뒤돌아본다.

아 하늘의 기둥들!

▶올해도 어김없이 꽃구경을 다녀왔다. 벚꽃도 보고 목련도 보고 살구꽃도 보았다. 여전히 감탄을 자아낼 만큼 아름다웠다. 해마다 지고 피는 꽃이지만 볼 때마다 경이로움을 느끼는 것은 작년에 보았던 그 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저 '살구꽃과 한때'를 보내고 있는 이들도, 작년에 이별한 그 살구꽃을 만나 재회의 감격에 젖어있는 듯 기뻐하지만 사실 생명의 명멸을 애틋해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든 시간을 붙잡고 싶어 한다. 그러나 자연은 그저 자기 리듬대로 피고 지며 흐를 뿐, 인간의 욕망을 옹호하지 않는다. 그 냉혹한 자연의 섭리 앞에서 인간의 욕망은 무력해질 수밖에 없으며, 결국 자연에 순응하게 되어 겸허히 이별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살구꽃'은 인간의 삶과 궤를 같이 한다. 결국 사라질 것을 알기에 애틋해지는 감정, 그 피고 지는 짧은 순간에 작별이라는 숙명을 가슴에 심어놓는다. 봄날 살구꽃 활짝 꽃피운 마을은 생애의 가장 눈부신 시간일 것이다. 그러나 '한때'에 머물다 지나갈 수밖에 없는 것을 알기에 삶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를 통찰케 한다. 살구꽃이 영원히 지지 않는다면 이렇듯 눈부시게 바라보지 않을 텐데, 생의 찬란한 순간들이 허무라는 진실의 비애를 벗어나지 못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내년에도 또 봄이 되면, 여전히 '살구꽃'은 침묵으로 만개해 깊은 울림이 되어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우리는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꽃 진 거리를 걸어간다. 이 시는 무엇인가를 설명하지 않고 한 찰나를 포착해 절제된 장면을 펼쳐놓았을 뿐인데, 내년이면 누군가가 우리 곁을 떠날 것이란 것을 일깨워준다. 모든 것은 지나가기에 아름답고, 그 지나간 자리에는 오직 향기로운 기억만이 남는다.
▲ 권영준 시인

/권영준 시인

Copyright © 인천일보 All rights reserved - 무단 전재, 복사,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