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내 정신은 무너지지 않았다”… 세 번째 피격 공포 앞 다시 주먹 쥔 트럼프
트럼프 시대, 정치폭력 심화
스트롱맨 리더십 재차 부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통령 자격으로 참석하는 첫 백악관 출입기자단(WHCA) 만찬이 한 무장 남성의 총격 난입으로 중단됐다.
이 자리에는 트럼프 대통령을 포함해 영부인 멜라니아 여사, JD 밴스 부통령,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카시 파텔 연방수사국(FBI) 국장,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보건장관 등 미국 행정부 권력 1~5순위가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전문가들은 언론자유와 수정헌법 1조를 기리는 만찬이 트럼프 시대 정치폭력의 또 다른 좌표로 기록됐다고 평했다.

워싱턴 치안당국 발표를 종합하면 사건은 이날 오후 8시 35분 워싱턴 힐튼 호텔에서 벌어졌다. 캘리포니아주 토런스 출신 남성 콜 토머스 앨런(31)은 호텔 투숙객 신분으로 진입한 뒤 산탄총과 권총, 칼 여러 자루를 꺼내 들고 만찬장 입구 비밀경호국(SS) 보안검색대로 돌진했다.
제프리 캐럴 워싱턴경찰청(MPD) 직무대행 청장은 “용의자가 산탄총, 권총, 칼 여러 자루를 들고 검문소로 뛰어들었다”며 “현재로선 단독 범행, 단독 총격범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앨런은 약 50야드(45m) 떨어진 만찬장 안쪽으로는 진입하지 못했다. 앨런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비밀경호국 요원 한 명이 근거리에서 산탄총을 맞았지만, 방탄조끼 덕에 목숨을 건졌다. 앨런은 직후 경호국 요원들에게 제압돼 체포됐다. 그는 현재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고 보안 당국은 전했다.
이날 만찬장 안에는 약 2500명이 있었다. 총격은 만찬 애피타이저였던 샐러드가 막 서빙되던 시각에 일어났다. 바깥에서 총성 5~8발이 울리자 주변에 있던 비밀경호국 요원 네 다섯명은 무대 위 트럼프 대통령 부부에게 달려들었다. 총성을 들은 다른 참석자들 역시 흰 식탁보가 깔린 둥근 테이블 아래로 몸을 숨기면서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한쪽에선 “하느님 미국을 축복하소서(God Bless America)” 합창이 시작됐다. CNN 앵커 울프 블리처는 “총격범과 몇 피트 떨어진 곳에 있었다. 매우 강력한 무기였다. 경찰관이 나를 바닥에 눕히고 그 위를 덮쳤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 옆자리에 앉아 있던 WHCA 회장 웨이자 장 CBS 기자는 “내 일곱 살 딸과 남편, 부모님이 모두 이 자리에 있었다. 언론자유의 밤에 우리는 그 자유가 얼마나 깨지기 쉬운지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부터 노출된 세 번째 직접 총격 위협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화당 대선후보였던 2024년 7월 13일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 야외 유세장에서 토머스 매슈 크룩스(20)가 쏜 총에 맞아 오른쪽 귀를 관통 당했다. 이 과정에서 지지자였던 코리 컴퍼레이터(50)가 사망하고 2명이 중상을 입었다.
두 달 뒤인 9월 15일 플로리다주 웨스트팜비치 트럼프 인터내셔널 골프클럽에선 라이언 웨슬리 라우스(58)가 SKS 소총을 들고 6번 홀 울타리 너머에 12시간 잠복하다 비밀경호국에 발각됐다. 라우스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미 정치 매체 액시오스는 “현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 이렇게 잇따른 위협 목록을 가진 인물은 없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 본인도 사건 직후 백악관 브리핑룸 회견에서 이 사실을 인정했다. 그는 “지난 몇 년 사이 살해를 시도하는 자에 의해 우리 공화국이 공격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라고 했다. 자신의 정치 인생이 직접 정치폭력의 표적이 돼 온 흐름을 본인 입으로 드러낸 발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을 노린 표적 공격이었느냐는 기자 질문에 “그런 것 같다“고 답했다. 그는 “내가 영향력이 있을 때 사람들이 나를 노린다. 영향력이 없으면 가만히 둔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본인이 추구하는 정책이 적을 만든다는 인식을 우회적으로 드러냈다’고 평했다. 자신이 미국 정치폭력의 표적이 됐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그 위협 때문에 정책을 거두거나 행보를 자제하지는 않겠다는 메시지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곧바로 “대통령은 위험한 직업이다. 위험은 따라온다”고 덧붙였다.

이날 회견에는 평소 트럼프 대통령답지 않은 통합 메시지도 등장했다. 그는 “오늘 밤 사건을 계기로 모든 미국인이 마음을 다해 서로의 차이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데 다시 헌신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어 “이 행사에는 공화당원, 민주당원, 무소속, 보수, 진보, 좌파가 모두 한자리에 있었다.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이 완전히 하나로 뭉치는 모습을 봤다. 어떤 의미에서는 매우 아름다웠다”고 했다. 평소 언론을 “가짜뉴스”라 공격하고 정적을 거칠게 몰아붙이던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이례적인 발언이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총격 사건 당시 자신 바로 옆에 앉아있다 함께 대피했던 웨이자 장 기자단 회장을 직접 지목해 첫 질문 권한을 줬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진 답변에서 “언론 보도가 매우 책임감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1기 4년 내내 만찬을 보이콧했던 그가 백악관 기자단에 보이는 화해 제스처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은 정치 폭력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도 분명히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건 직후 본인 트루스 소셜에 “쇼는 계속돼야 한다(LET THE SHOW GO ON)“고 적었다. 그는 사건 직후 “우리는 누구도 우리 사회를 빼앗도록 두지 않겠다“며 “이런 아픈 자들, 깡패들, 끔찍한 자들이 우리 삶의 근간을 바꾸도록, 우리가 하는 일의 방향을 바꾸도록 둘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정치폭력에 일정을 양보하지 않는다는 강인한 지도자 서사는 그가 이전 피격 사건에도 보여줬던 모습이다. 그는 2024년 버틀러에서 피 흘리는 얼굴로 주먹을 치켜들고 “싸워라(Fight)”를 외쳤다. 이 장면은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운동의 상징이 됐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버틀러 총격은 트럼프와 MAGA 운동의 결정적 순간으로 남았다“고 했다. 이번 만찬 대피 직후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방식으로 응수했다. 그는 회견에서 “많은 사람이 이런 일을 겪으면 정신이 무너진다(basket case)고들 한다. 나는 정신이 무너지지 않았다”고 했다.

미 정가에서는 이번 사건이 트럼프 대통령 정치 생명에 미칠 파장을 두고 양면적 해석을 내놨다. 일각에서는 버틀러 피격 사건 직후처럼 지지층이 결집하고 ‘강한 트럼프’ 서사가 재점화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6월 멜리사 호트만 미네소타주 하원의원이 정치적 동기 공격으로 살해됐다. 이어 9월에는 보수 인플루언서 찰리 커크가 연설 도중 대중이 보는 가운데 암살됐다. 정치폭력이 일상 풍경이 되는 흐름 속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또다시 ‘나는 정신이 무너지지 않았다’는 말로 응수하는 모양새가 지지층 결집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대편에서는 이번 사건이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의 강자 서사에 균열을 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버틀러 피격 사건 당시 그는 야외 유세장에서 피를 흘리며 직접 주먹을 들었다. 반면 이번 사건에서는 시각적 서사를 만들어낼 장면 자체가 없었다는 평가다. 만찬장 보안 실패 책임론도 같은 맥락에서 제기됐다. AP는 전문가를 인용해 “호텔 투숙객이 산탄총과 칼을 들고 대통령과 부통령, 각료가 모인 행사장 50야드 앞까지 접근했다는 사실은 비밀경호국이 버틀러 사건 이후 강화했다고 자평해 온 경호 체계에 의문을 던진다”고 했다.
치안 당국은 이번 사건을 자국 내 단독 범행으로 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연계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그렇게 보지 않는다“고 답했다. 외부 적대세력 개입설을 본인이 직접 차단해 정전 협상 동력을 흔들지 않으려는 포석으로 읽힌다. 미국은 지난 2월 28일 이란을 상대로 대규모 군사작전을 개시한 뒤 정전 협상 시도를 이어가는 중이다. 이날도 만찬장 밖에선 이란 공습 반대 시위대가 행사 직전까지 구호를 외쳤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만 “수사당국이 며칠 안에 동기를 밝힐 것”이라며 명확한 결론은 유보했다.

조사 결과 현장에서 체포된 용의자 앨런은 2017년 캘리포니아공과대(칼텍·Caltech)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인재로 밝혀졌다. 칼텍은 매사추세츠공과대(MIT)와 함께 미국 최고 수준 이공계 명문으로 꼽힌다.
그는 캘리포니아주 토런스(Torrance) 지역 사교육 업체 C2 에듀케이션(C2 Education)에서 교사로 일하며, 부업으로 게임을 만드는 개발자였다. 토런스는 로스앤젤레스(LA) 한인타운과 가까워 한국인 거주자도 많은 지역이다. 앨런은 2024년 12월 ‘이달의 교사’로 뽑힌 경력도 있었다. 그는 2024년 10월 13일 민주당 후원 플랫폼 액트블루(ActBlue)에 25달러(약 3만 6000원)를 카멀라 해리스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 캠프에 기부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이번 총격이 정치적인 동기에서 비롯된 건지 여부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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