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피한 만찬장, 45년 전 레이건 피격 그 호텔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참석 중이던 백악관 출입기자단(WHCA) 연례 만찬 행사장에서 총격 사건이 발생해 긴급 대피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사건이 발생한 장소인 워싱턴 DC의 ‘워싱턴 힐튼(Washington Hilton)’ 호텔의 뼈아픈 과거가 다시금 조명받고 있다. 이곳은 45년 전인 1981년 3월 30일,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이 존 힌클리 주니어의 총탄에 맞은 이른바 ‘레이건 암살 미수 사건’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미국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암살 미수 사건 중 하나가 발생했던 바로 그 장소에서 일어났다는 점에서 미국 사회에 적지 않은 충격을 안기고 있다.
45년 전 레이건 전 대통령의 피격 사건은 한 편의 영화와도 같았다. 당시 연설을 마치고 호텔 입구를 나서던 레이건 대통령은 힌클리가 쏜 6발의 총알 중 한 발을 맞았다. 마지막 한 발이 대통령 전용차의 방탄유리를 맞고 튕겨 나와 레이건의 왼쪽 겨드랑이를 파고든 것이었다. 갈비뼈를 부러뜨리고 폐에 구멍을 낸 총탄은 심장에서 불과 2.5cm 떨어진 곳에 멈춰 섰다. 그는 인근 조지 워싱턴 대학 병원으로 긴급 후송돼 곧바로 폐혈관을 꿰매고 총알을 제거하는 대수술을 받았다.
치명적인 내부 출혈로 생사를 오가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지만, 레이건을 전설적인 대통령으로 만든 것은 역설적이게도 병상에서 보여준 그의 여유와 입담이었다. 그는 사색이 되어 달려온 아내 낸시에게 “여보, 내가 고개 숙이는 걸 깜빡했소”라고 농담을 건넸고, 수술실에 들어가면서는 잔뜩 긴장한 의료진을 향해 “당신들이 모두 공화당원이기를 바라오”라고 말했다. 이에 민주당원이었던 집도의가 “각하, 오늘 하루는 우리 모두가 공화당원입니다”라고 응수해 미국 전역에 감동을 안겼다는 일화가 있다. 일촉즉발의 위기 속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모습에 70세 고령 대통령의 지지율은 단숨에 73%까지 치솟았고, 이때 형성된 ‘강인한 지도자’ 이미지는 남은 임기를 이끄는 강력한 원동력이 됐다.
하지만 당시 레이건 곁에 있다 머리에 총을 맞은 제임스 브래디 백악관 대변인은 평생 휠체어에 의지하는 반신불수가 되었다. 이후 그는 아내와 함께 강력한 총기 규제 운동에 투신했고, 그 결과 1993년 총기 구매자의 신원 조회를 의무화하는 ‘브래디 법’이 제정되는 역사적 성과를 이뤄냈다. 흥미로운 점은 오늘 대피 소동을 겪은 백악관 출입기자들이 매일같이 모여 브리핑을 듣고 기사를 쓰는 백악관 내 기자회견장의 공식 명칭이 바로 그의 이름을 딴 ‘제임스 S 브래디 프레스 브리핑 룸’이라는 사실이다. 브래디 룸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기자들이, 과거 브래디가 총에 맞았던 바로 그 호텔에서 또 다른 총격 사건의 한가운데 놓이게 된 우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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