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되는 화폐 이야기]48. 돈을 만들어 온 75년 역사의 현장
1997년 IMF 외환위기 땐 직원 다수 떠나보내
‘현금 없는 사회’ 도래…화폐의 ‘문화적 승화’
![6.25 전쟁의 포화 속에서 1951년 부산 동래구 명륜동에 첫 둥지를 틀었던 한국조폐공사의 옛 본사 모습(왼쪽)과 대전 유성구에 자리 잡은 오늘날 본사의 전경 모습. [조폐공사 제공]](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26/dt/20260426100236908ujrr.jpg)
1951년 가을, 전쟁의 포화가 채 가시지 않은 부산 동래구 명륜동의 한 낡은 건물. 그곳엔 피란지의 어수선함 속에서도 비장한 각오로 모여든 275명의 직원이 있었다. 제대로 된 장비는커녕 번듯한 공장 건물조차 없던 시절이었지만, 잉크 냄새와 기름 냄새가 뒤섞인 그 비좁은 공간에서 대한민국의 돈이 처음으로 찍혀 나왔다. 한 나라의 경제적 권위와 신용을 상징하는 화폐가 전쟁의 잿더미 한복판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 온 가장 한국적인 시작이었으며, 그 불굴의 의지는 훗날 대한민국 경제를 떠받치는 신뢰의 기초가 되었다.
사실 한국조폐공사의 뿌리는 1883년 고종 재위 시절 세워진 ‘전환국’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근대 국가로 탈바꿈하려던 격변의 시대에 우리 손으로 직접 화폐를 만들겠다는 주권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했다. 1892년 인천전환국이 설립되었으나 핵심 기술과 인력은 일본인의 수중에 있었고, 결국 1910년 국권 피탈과 함께 화폐 제조권마저 총독부로 넘어갔다. 광복 후에도 기술과 설비는 온전히 우리 것이 아니었으며, 설상가상으로 한국전쟁 중 서울 용산의 인쇄 시설이 공습으로 전소되는 비극을 겪었다.
근대 화폐의 역사를 되찾는 과정은 그야말로 맨손으로 일궈낸 재건이었다. 조폐공사는 멈추지 않았다. 1952년 최초의 새 은행권을 발행했고, 1966년에는 국내 최초의 주화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1975년, 마침내 외국의 도움 없이 순수 국내 기술만으로 1000 원권을 찍어내는 데 성공했다. 총칼 대신 정밀한 인쇄기를 붙잡고 기술을 갈고닦은 세월이 만들어낸 결실이었다. 은행권부터 기념주화, 훈장, 국채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신용과 품격이 필요한 모든 곳에는 늘 조폐공사의 손길이 닿아 있었다.
그러나 성장의 길목마다 시련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1997년 IMF 외환위기는 조폐공사에도 가혹한 파고를 몰고 왔다. 3000명이 넘던 임직원은 구조조정의 칼바람 앞에 속절없이 줄어들었다. 무엇보다 뼈아픈 사건은 1998년, 대검찰청 공안부장이 조폐공사의 파업을 의도적으로 유도했다는 이른바 ‘파업 유도 사건’이었다.
국가 기관에 의해 조직이 흔들렸다는 허탈함과 동료를 떠나보낸 죄책감은 남겨진 이들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하지만 그들은 다시 인쇄기 앞에 섰다. 뼈를 깎는 혁신을 거치며 기술력 하나로 다시 일어섰고, 그 시련은 역설적이게도 조직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유산이 되었다.
![화폐 역사 체험과 경제 교육의 산실 역할을 수행하며 다양한 화폐 관련 제품을 전시하고 있는 한국조폐공사가 운영하는 국내 최초의 ‘화폐박물관’. [조폐공사 제공]](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26/dt/20260426100238184rsin.jpg)
세월이 흘러 이제 조폐공사는 또 다른 거대한 변화의 파도 앞에 서 있다. 지갑 속에 지폐보다 카드나 스마트폰이 더 익숙해진 ‘현금 없는 사회’가 도래한 것이다. 2025년 기준 화폐 제조 사업의 매출 비중은 20% 초반까지 떨어졌다. 한때 “곧 사라질 공기업”이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지만, 조폐공사는 이 위기를 화려한 변신의 기회로 삼았다.
첫 번째 변신은 화폐의 ‘문화적 승화’다. 단순한 결제 수단을 넘어 시대의 기억을 담는 그릇으로 화폐를 재해석한 것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기념주화를 보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던 기억처럼, 화폐 요판화나 화폐 굿즈 등은 이제 고부가가치 문화상품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두 번째는 ‘디지털 전환’이다. 지폐에 새기던 위변조 방지 기술을 디지털 공간으로 확장해 전자여권,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등 국가 신분증 사업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지역사랑상품권 디지털 플랫폼과 전자 바우처를 운영하는 ‘보안 기반 디지털 서비스 기관’으로 거듭난 것이다. 마지막은 글로벌 시장을 향한 ‘수출’이다. 지폐용 특수 용지와 면펄프를 동남아시아에 수천만 달러 규모로 수출하고, 스위스와 캐나다 등 보안 강국에 특수 잉크와 안료를 공급하며 세계 무대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부산 명륜동의 허름한 창고에서 시작해 대전의 첨단 연구단지에 이르기까지, 조폐공사의 75년은 대한민국 산업화의 축소판 그 자체다. 우리가 지폐 한 장을 아무 의심 없이 주고받을 수 있는 이유는 그 이면에 쌓인 수십 년의 정교한 기술과 이름 없는 이들의 땀방울이 만든 ‘단단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돈을 만드는 일의 본질은 결국 신뢰를 잇는 일이다.

시대가 변해 화폐의 형태가 종이에서 데이터로 바뀔지라도, 가치를 보증하는 일의 무게는 변하지 않는다. 75년의 세월 동안 그 무거운 책임감을 묵묵히 짊어져 온 사람들은 오늘도 내일을 준비한다. 세상은 빠르게 진화하지만, 본질을 지키는 힘은 끝내 살아남는다. 변화 속에서도 ‘신뢰’라는 뿌리를 잃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조폐공사가 75년 역사 속에서 증명해 온 살아 숨 쉬는 생존 방식이다.
송신용 기자 ssyso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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