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째 정체 숨긴 살인마…지금 우리의 이웃일 수 있다 [정락인의 사건 속으로]
행적 끊긴 채 52세 중년 돼…지금도 평범한 얼굴로 살 가능성
(시사저널=정락인 탐사저널 사건전문기자)
2008년 6월17일 저녁 8시30분쯤,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고속버스터미널 호남선(현 센트럴시티) 앞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여행객과 행인들로 북적였다. 습한 초여름의 공기가 감도는 가운데, 어색한 긴 머리 가발을 쓰고 안경으로 얼굴을 가린 건장한 체격의 한 남자가 인파 속에 섞여 있었다. 그는 한참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이내 한곳에서 시선을 멈췄다. 터미널 오른쪽 입구 화단 옆에서 누군가를 초조하게 기다리던 30대 남녀를 발견한 것이다.
남자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접이식 칼(일명 발리송 나이프)이었다. 손목의 반동을 이용해 단번에 날카로운 칼날을 드러내더니 찰나의 망설임도 없이 달려들었다. 두 사람 중 남성에게 먼저 다가갔다. 그의 몸을 툭 치며 붙잡더니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가슴부터 배 등 온몸을 사정없이 찔렀다.
미처 방어할 틈도 없었던 남성은 피를 내뿜으며 바닥에 쓰러진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여성은 위험을 직감하고 도망치려고 했으나, 남성의 거친 손이 그녀의 목덜미를 휘어잡은 채 제압하더니 칼을 휘둘렀다. 순식간에 보행로는 붉은 선혈로 뒤덮였고, 행인들의 비명이 뒤섞이며 일대는 아수라장이 됐다. 온몸이 피로 범벅이 된 범인은 피가 묻은 칼을 현장에 내던지고, 터미널 앞 왕복 8차로 도로를 무단횡단해 어둠 속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8차로 도로 너머로 사라진 장발의 그림자
얼마 후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 구급대원들이 피를 흘리며 신음하고 있던 피해자들을 인근 강남성모병원으로 이송했다. 당직 중이던 서초경찰서 강력6팀에도 비상이 걸렸다. 천현길 팀장(경감)은 팀원들과 함께 현장으로 달려갔다. 피해자들이 쓰러져 있던 곳은 피비린내가 진동했고, 이들이 고통에 몸부림친 흔적이 역력했다. 경찰은 폴리스 라인을 치고 현장 통제에 나섰다. 무엇보다 범인의 신원을 특정하는 것이 급했다. 신원 확인이 늦어지면 그만큼 도주할 시간을 벌어주기 때문이다. 천 팀장은 형사 한 명을 현장에 남겨놓고 피해자들이 이송된 병원으로 달려갔다. 의료진은 환자의 상태가 위중하다며 접촉을 막았지만, 이를 뿌리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피해 여성은 딸꾹질하는 것처럼 숨을 헐떡이고 있었고, 말을 못 할 정도로 상태가 위중했다. 바로 옆에 있던 남성은 고통스러워하며 의료진에게 연신 "살려주세요"를 반복했다. 경찰이 "범인이 누구인지 아느냐"고 묻자 "피해 여성의 전남편"이라고 지목했다.
목과 폐, 심장, 간 등 무려 17곳을 찔린 여성은 병원에 이송된 지 18분 만에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남성은 폐와 대장과 소장 등 14곳을 찔렸으나 다행히 급소를 피해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다. 경찰은 피해 남성의 증언을 바탕으로 가해자와 피해자의 인적 사항을 확인했다. 가해자는 피해 여성의 전남편인 황주연(당시 34세)이었다. 그는 왜 전처인 김아무개씨(34)와 그 옆에 있던 남성 A씨에게 칼을 휘둘렀을까. 이들에게는 복잡한 사연이 있었다.
동갑내기인 황주연과 김씨는 22세 때인 1996년 11월8일 결혼해 부부가 된다. 결혼생활은 평온하지 않았다. 황씨는 밖에서는 성실하고 유머러스한 사람이었지만 집에서는 180도 달랐다. 그는 심한 의처증으로 상습적인 가정폭력을 자행했다. 심지어 아내의 옷을 모두 벗겨 침대에 묶어놓고 폭행할 정도로 가학적인 성향을 드러냈다. 김씨로선 매일 공포가 엄습하는 지옥 같은 생활의 연속이었다. 그에게 아내는 자신이 언제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소유물일 뿐이었다. 참다못한 김씨는 이혼을 요구했고, 결혼 약 6년 만인 2003년 1월 헤어진다. 이때 딸이 여섯 살이었다. 얼마 후 황주연은 어린 딸을 앞세워 눈물로 사죄하며 재결합을 요구했다. 아이가 눈에 밟혔던 김씨는 마음을 돌려 1년이 채 되지 않아 재결합한다.
하지만 황씨는 변한 것이 없었다. 그에게는 오랜 비밀이 하나 있었는데, 김씨와 결혼생활을 이어가면서 몰래 내연녀를 만나고 있었다. 재결합 3년 후인 2006년 황씨는 "결혼하고 싶은 여자가 생겼다"며 이혼을 요구한다. 김씨는 이때서야 내연녀의 존재를 알게 된다. 다시 한번 황씨의 밑바닥을 본 김씨는 두 번째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뒤틀린 소유욕이 만들어낸 비극의 서막
이혼장을 받아든 황씨는 내연녀 B씨를 찾아갔다. 그는 "나는 사실 유부남이었고 아내와 이혼했다"며 "이젠 결혼하자"고 졸랐다. 이 말을 들은 B씨는 큰 충격에 휩싸인다. 그녀는 황씨와 4년을 사귀면서 그가 총각인 줄만 알았던 것이다. 황씨에게 심한 배신감을 느낀 B씨는 "그만 만나자"며 이별을 통보한다.
황씨는 B씨를 찾아가 다시 만날 것을 사정했다.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해 병원 환자복을 입은 사진을 보내기도 했다. 스토킹을 하면서 협박성 문자를 보내기도 했으나 끝내 마음을 돌리지 못하자 그 분노를 이혼한 김씨에게 돌린다.
전북 남원에서 황씨와 결혼생활을 했던 김씨는 두 번째 이혼 후 서울로 도망치듯 이사를 했다. 황씨가 찾아내지 못하도록 자신의 거주지는 가족에게만 알려줬다. 그녀는 암에 걸려 투병하면서도 황씨에게 노출될까봐 혼자 지내며 제대로 된 도움을 받지 못했다. 김씨는 황씨가 자신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는 여동생에게 "죽어서나 황주연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황주연은 김씨를 찾아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처음에는 어린 딸을 트럭 조수석에 태우고 약 20여 일 동안 서울과 경기도 일대를 뒤졌다. 그래도 찾지 못하자 흥신소에 웃돈을 주고 인터넷 주소(IP) 추적을 의뢰했다. 심지어 119에 전화를 걸어 "아내가 자살하려 한다"며 위치추적을 요구하는 거짓 신고까지 했다. 소방 당국이 위치를 알려주지 않자 딸을 미끼로 이용한다.
초등학생인 딸의 이메일 주소를 이용해 김씨에게 "부산에서 사업하다 망해서 곡성(전남)에서 눌러앉았다. 애를 고속버스에 태워 서울로 보낼 테니까 네가 마중 나와라"고 메일을 보낸다. 다음 날 김씨는 딸을 마중 나가려고 채비했다. 약 두 달 반 전에 알게 된 A씨에게 딸 짐도 들어줄 겸 같이 나가자고 했다.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고속버스터미널로 향한다.
황주연은 딸을 고속버스에 태우는 대신 자신의 화물차 조수석에 앉혔다. 처음부터 딸을 혼자 보낼 생각이 없었던 그는 무서운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서울에 도착한 황씨는 터미널 근처에 트럭을 주차했다. 딸에게는 "엄마 데리고 올 테니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라고 말한 뒤 혼자 내렸다. 자신을 알아볼 수 없게 어깨까지 내려오는 가발을 쓰고, 안경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변수가 생긴다. 김씨 혼자 나올 줄 알았는데, 그 옆에 낯선 남자가 있었다. 황씨는 당초 계획을 바꿔 두 사람을 현장에서 죽이겠다고 마음먹고 달려들었다. 결국 김씨는 죽어서야 비로소 황씨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경찰은 터미널 인근을 수색해 황씨가 타고 온 파란색 화물차를 찾아낸다. 차 안에 있어야 할 딸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경찰은 신변에 이상이 생겼을지 몰라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딸은 차 안에서 아빠를 한참 동안 기다렸다. 이때까지도 엄마를 해치러 갔다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오지 않자 서울 이모에게 전화해 이모 집으로 간 것이 확인됐다.
황씨의 트럭을 살펴보던 경찰은 짐칸에 실려 있는 수상한 물건에 주목한다. 성인 키만 한 물체가 있었는데, 그 위는 포장으로 덮여 있었다. 그걸 걷어냈더니 장롱이 나왔는데, 그 안에서 황씨의 또 다른 범행계획을 엿볼 수 있는 물건들이 쏟아져 나왔다. 김장용 대형 비닐봉지와 커다란 자루, 손도끼, 삽 등이었다. 경찰은 황씨가 김씨를 트럭으로 유인한 후 살해해 암매장할 계획을 세웠던 정황으로 판단했다.
황주연은 범행 후 주도면밀하게 움직였다. 사건 당일에는 아무런 흔적도 없다가 다음 날부터 움직임이 포착된다. 오전 10시40분쯤 신도림역 역사에 있는 공중전화로 매형에게 전화를 걸어 "어제 사고를 쳤다. 나는 목숨을 끊으러 가니 딸과 트럭을 잘 챙겨달라"고 말한다.
지능적인 도주 행각…끊겨버린 흔적
이후 영등포구청역, 강남역, 사당역, 삼각지역을 거쳐 경기 안양의 범계역까지 서울 전역을 훑으며 복잡하게 이동했다. 경찰의 추적 기법을 꿰뚫고 있는 황씨가 수사에 혼선을 주려는 의도로 풀이됐다. 그는 또 이동 과정에서 지하철 무임승차를 하거나 교통카드 태그를 피했고, 범행 당시의 피 묻은 가발과 옷을 벗어던지고 말끔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마지막으로 포착된 범계역 인근 백화점 앞 CCTV를 끝으로 그의 행적은 완전히 끊긴다.
사건 발생 22일 후인 7월10일, 서울 방배동의 한 PC방에서 그의 아이디로 농기계 거래 사이트에 접속한 흔적이 발견됐으나, CCTV가 없는 곳이라 신원 확인에는 실패했다. 당시 그는 타인의 인적 사항을 도용해 회원 가입을 했는데, 도용된 번호는 서울 유흥업소 여종업원의 것이었다. 경찰은 이 여성과 주변 지인에 대한 수사를 벌였으나 황주연과 연결 지을 단서는 나오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황주연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본다. 그는 포도 농사, 농기계 중개, 택시 운전, 다단계 영업 등 매우 다양한 직업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는 신분을 숨기고 소규모 공사 현장이나 농어촌 지역에서 현금을 받으며 생활하는 데 최적화된 조건이다. 특히 그는 화술이 뛰어나고 사람의 마음을 사는 법을 잘 알아, 신분을 속인 채 새로운 여성 조력자를 만나 그 명의에 의지해 살고 있을 가능성도 크다.
황주연을 특정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신체적 특징은 오른쪽 귀가 운동선수들의 귀처럼 연골이 굳어 변형된 '만두귀' 형태라는 점이다. 또한 키 180cm의 건장한 체격에, 웃을 때 왼쪽 입꼬리만 올라가는 심한 안면 비대칭을 가지고 있다. 시력이 나빠 안경이나 렌즈를 착용할 가능성이 크다. 올해 그의 나이는 52세로 중장년층 모습으로 변했을 것이다.
황주연 사건은 단순한 미제 사건이 아니다. 국가의 치안 시스템을 비웃으며 우리 사회 어딘가에서 평범한 이웃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는 살인마와의 소리 없는 전쟁이다. 18년이라는 시간 동안 수사 기법은 발전했지만, 범인의 지능적인 은둔과 타인 명의 도용 앞에서는 여전히 시민들의 제보가 가장 강력한 검거의 열쇠가 될 수 있다.
우리는 황주연이라는 이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가 지인들에게 "나는 안 잡힐 자신이 있다"며 비웃었던 공권력과 사회적 정의를 다시 세우기 위해서라도, 끝까지 추적해 법의 심판대에 세워야 한다. 주변에 키가 크고 귀 모양이 특이하며, 모든 경제 활동을 타인의 명의로만 처리하는 이가 있다면 다시 한번 눈여겨봐야 할 이유다. 범죄자가 평온하게 늙어가는 사회는 정의롭지 않다. 황주연의 도주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우리의 추적 역시 멈추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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