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과 유가가 급등하길 바라는 세력들 [영화로 읽는 세상]

김상회 정치학 박사 2026. 4. 26.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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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이코노무비
장미의 이름⑦
파괴적 쾌락의 정수 보여준 영화
집단 이기주의 · 광적 이념 몰입
추악하고 강렬한 파괴적 쾌락 탓
우리는 그 덫에서 자유로울까

영화에 등장하는 호르헤 수도사(표도르 샬라핀 주니어 분)는 분명 주연은 아닌데 그의 모습은 주인공인 윌리엄 수도사(숀 코너리 분)보다 더욱 강렬하다. '신 스틸러' 정도가 아니라 아예 화면을 씹어 먹는다. 호르헤는 수도원의 자랑인 장서관을 관장하는 수도사다. 요즘으로 치자면 도서관장쯤 되겠다.

영화 속 호르헤 수도사는 파괴적 쾌락의 전형을 보여준다.[사진|더스쿠프 포토]
호르헤는 용모부터 기괴하다. 족히 80세는 넘어 보이는 노인인데, 시력까지 잃었다. 그런데도 이 노老수도사는 눈동자 없는 '눈'을 부릅뜨고 산다. 시력이 없다는 것이 장애와 결핍이 아니라 오히려 특별한 능력이라고 과시하는 듯한 느낌이다. 눈동자 없는 눈빛이 그토록 형형熒熒하고 사람을 압도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호르헤 수도사의 허옇게 부릅뜬 커다란 눈은 문득 미국 1달러 지폐 뒷면에 그려진 미완성의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빛을 내뿜는 강렬한 눈을 떠올리게 한다. 그 눈은 '신의 섭리(Divine Providence)'를 상징한다고 한다.

눈 위쪽에는 라틴어 "ANNUIT COEPTIS"라는 라틴어가 새겨져 있다. 직역하면 '신과 함께'인데, 대개 '우리가 하는 일(건국)은 신이 승인하신 일이다'란 의미가 깔려 있는 듯하다. 조금 비딱한 시선으로 보면 '미국이 무슨 짓을 하든지 그건 신의 뜻'이라는 의미가 될 수도 있겠다.

요즘 이란을 무차별 폭격하면서 '신의 뜻'을 들먹이고 '예수님' 이미지까지 동원하는 미국을 보면 어쩔 수 없이 떠오르는 눈이다. 호르헤 수도사의 눈동자 없이 허옇게 부릅뜬 눈 역시 '내가 무슨 짓을 하든지 그것은 신의 뜻'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기호학자이면서 뛰어난 중세역사학자이기도 한 원작자 움베르토 에코의 충실한 고증을 거친 덕에 영화 속에 등장하는 수도사들의 복색과 복식도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다. 중세수도사들이 나눴다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ㆍ죽음을 기억하라)'라는 인사말의 원천을 제공할 만큼 '세상적인' 일들을 포기하고 엄격한 규율과 기도 속에 사는 것을 모토로 하는 베네딕트 수도사들은 그 복장도 '검은 수도사'라는 별호로 불렸을 만큼 온통 죽음을 상징하는 검은색 망토와 검은 색 두건을 착용한다. 그 검은 망토와 두건이 호르헤의 기괴한 모습을 완성해준다.

호르헤 수도사는 외양만 기괴한 것이 아니다. 내면세계의 기괴함은 겉으로 보이는 기괴함을 뛰어넘는다. 호르헤 수도사는 도서관 가장 깊은 방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2권 '희극론'에 독을 발라 봉인해 두고 그 책을 읽은 수도사들을 모두 독살해버리는 연쇄살인극을 벌인다.

그 논리가 기괴하다. 사람들이 희극을 보고 웃으면 신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잊고, 신을 향한 두려움이 없으면 교회도 사라진다고 그는 믿는다. 수도사가 연쇄살인을 벌이면서, 그것도 '형제'라는 수도사들을 가장 끔찍한 모습으로 죽여 버리면서도 호르헤는 아무런 두려움이나 감정적 동요를 보이지 않는다.

파괴적 쾌락은 소중한 것들을 파괴하면서도 그만둘 수 없는 모든 경계를 넘어버리는 금지된 열정의 폭발이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거의 사이코패스 살인마 같은 모습이다. 호르헤는 자신이 저지르는 살인도 'ANNUIT COEPTIS'로 믿는다. 신의 종이 신의 섭리를 수행하는 데 번민이나 두려움이 있을 수 없다. 범인을 알 수 없는 연쇄살인극은 항상 민심을 흉흉하게 한다. 특히나 수도원이라는 '성소聖所'에서 그런 끔찍한 의문의 연쇄살인극이 발생하면 교황청을 둘러싼 신뢰까지 흔들린다.

교황청은 서둘러 중세판 셜록 홈스라 할 만한 윌리엄 수도사를 해결사로 파견한다. 웬만한 범인이라면 검찰청 엘리트 검사들이 압수수색 들어오면 긴장하게 마련이겠지만, 호르헤는 윌리엄이라는 중세판 셜록홈스가 들이닥쳐 취조를 시작해도 태연하다. 신이 함께하기(ANNUIT COEPTIS) 때문에 두려울 것이 없다.

호르헤 수도사의 기괴함은 영화의 마지막에 그 폭발적 에너지를 한순간에 방출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희극론」을 숨겨놓고 봉인해버린 도서관 가장 깊은 곳까지 마침내 윌리엄의 압수수색이 다가온다.

호르헤는 등불이 쓰러져 화재가 발생한 도서관 가장 깊은 곳에서 윌리엄을 마주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껴안고 한 장 한 장 찢어서 씹어먹고 앙천대소仰天大笑하면서 스스로 불에 타죽는다.

당연히 수도원의 자랑했던 모든 지식의 원천과 같은 그리스, 로마의 모든 고문헌들이 함께 타버린다. 호르헤도 중세 최고의 지성인이며 누구보다 지식을 아꼈던 인물이었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희극이 공개되느니 차라리 세상 모든 지식을 태워버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웃음'을 그토록 혐오했던 호르헤의 마지막 호탕한 웃음은 자신의 사소한 가치 하나를 지키기 위해 세상 모든 것을 파괴해버리는 '파괴적 쾌락'의 정수를 보여준다.

움베르토 에코와 어깨를 겨눌 만한 슬로베니아의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Slavoj Zizek)은 그의 대표적 철학 업적인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The Sublime Object of Ideology(1898년)」에서 파괴적 쾌락(주이상스ㆍJouissance)이라는 두려운 개념을 제시한다. 즐거움이나 쾌락이기는 한데, 정상적인 즐거움이나 쾌락이 아니라 자신을 파괴하면서까지 느끼는 즐거움이다.

파괴적 쾌락은 나와 나의 가장 소중한 것들을 파괴하면서도 그만둘 수 없는 도덕과 윤리, 법, 상식의 모든 경계를 넘어버리는 금지된 열정의 폭발이다. 지젝은 우리가 흔히 빠지는 공동체를 파괴하는 집단 이기주의나 특정 이념에 광적으로 몰입하는 현상 역시 추악하고도 강렬한 '파괴적 쾌락'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어떤 진영에선 기름값이 오르고 한미 관계가 악화하길 바랄지 모른다. 갈수록 심화하는 진영 논리의 병폐 중 하나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우리 속담에 '초가삼간 다 태워도 빈대 잡아 후련하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남의 집 불구경, 싸움 구경을 즐기는 것이 니체가 말한 '남의 고통이 나의 기쁨'이라는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라면 지젝이 말하는 주이상스는 소극적으로 남의 집 불구경을 즐기는 것을 넘어서서 적극적으로 자기 집에 불 질러가면서까지 즐기는 광적인 쾌락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책 한권(「지겨운 빈대」)을 숨기기 위해 도서관(자기 집) 모두를 불태우면서도 '즐거움'을 느꼈던 호르헤 수도사의 기괴함은 호르헤의 것만은 아니다. 우리도 상대 진영이 고통받고 망할 수만 있다면 나라가 망해도 좋다는 듯이 온갖 저주의 주술을 하면서 파괴적 쾌락에 빠져 살아가는 모양이다.

동해 석유시추가 실패하면 기뻐하기도 하고, 체코 원전 수출에 성공하면 고통스러워하기도 한다. 지금 또 다른 누군가는 환율과 유가가 폭등하고 주식시장이 붕괴하는 것도 모자라 트럼프가 항공모함 몰고 와서 '누군가'를 마두로처럼 잡아가기를 축수기원하는지도 모르겠다. 모두 나라에 망조가 들어야 얻을 수 있는 파괴적 쾌락의 유혹이다. 우주 최강의 빌런 '타노스'나 하는 짓이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더스쿠프
sahngwhekim535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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