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고 흩어짐 속에서 “마음도 입자일까요?” [황정은·허태임 교환일기]
2026년 1월5일 월요일
선생님, 어제 저는 벌레를 손으로 죽였습니다. 담요를 털다가 섬유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 미색 알갱이를 떼어내려고 손가락으로 꾹 집었는데 그게 벌레였어요. 벌레는 제 엄지와 검지에 잡히자마자 몸부림했습니다. 달아나려고 발버둥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에 경련하는 중이라는 걸 모를 수 없었습니다. 감전된 것처럼 튀는 그 몸을 제 손가락으로 누르고 있었기 때문에. 살아 있는 것을 꼬집은 촉감에 놀라 벌레를 담요 위로 떨구었는데 그 충격만으로도 벌레는 터지고 말았습니다. 조금 전까지 고통으로 진동하던 몸이 마른 껍질처럼 속이 빈 조각들로 부서졌어요. 하루가 지났는데도 손가락 사이에 남아 있습니다. 나로 인한 격통의 기억이요. 숱하게 벌레를 죽이며 살아왔지만 이 잔흔을 지우기가 어려워 오늘 편지에 옮겨 적습니다.
2026년 1월11일 일요일
어떻게 지내시나요.
지난번 편지로 너무 갑자기 어두운 소식을 전해 걱정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버지 수리실 정리를 거의 마쳤습니다. 마지막 남은 창고를 지난주에 마저 정리했어요. 일곱 달이 지났는데 이제야 장례식을 다 치렀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긴 장례를 겪는 동안 여러 도움을 받았지만 그중에서도 세운상가 청소 관리자로 일하는 아저씨에게 저는 정말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아버지의 수리실과 창고들엔 안쪽으로 들어가 보지도 못할 정도로 물건들이 쌓여 있었어요. 사십 년 넘도록 가장 안쪽 선반에 쌓여 있던 기계들, 그리고 아버지도 어쩌지 못하고 입구 근처에 던져둔 사물들이 말입니다.

수리실의 사물이 세상으로 흩어졌다
수리실을 정리하면서 가장 두렵고 버거운 순간은 거기에 버릴 것이 너무나 많다는 생각에 짓눌릴 때였습니다. 뭐부터 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장갑을 끼고 입구에 그냥 서 있기만 했어요. 그러다 물건 하나를 꺼내 바깥에 내놓고 다시 하나를 꺼내 바깥에 내놓았습니다. 기계 부품을 저는 잘 몰라서, 몇 번인가 잡철과 비철, 고철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어설프게 봉투에 담아 내놓았더니 청소 관리 일을 하는 아저씨가 수리실을 방문해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내가 보기에 아가씨들이 80퍼센트는 잘 하고 있지만” 하면서 말입니다. 재활용이 되는 것과 되지 않는 것, 타는 것과 타지 않는 것 등을 각각 어디에 어떻게 담아 어떤 장소에 두어야 하는지, 궁금한 것이 있을 때에는 어디 있는 누구를 찾아가야 하는지를 그가 알려주고, 지나는 길에 한 번씩 들러 분류 작업을 도와주곤 했어요.
너무 깊은 데 두어서 틀림없이 아버지 자신도 잃어버린 온갖 부품들은 작은데 날카롭고 뾰족한 물건들, 잘 깨지거나 자칫 터지는 사물들이었습니다. 장갑을 끼고도 몇 번 찔리거나 베이곤 했는데, 처리하는 데 가장 애먹인 물건은 기계를 담았던 종이 상자들이었어요. 언제고 다시 쓸 생각이었는지 아버지는 그것들을 창고 구석에 모아두었습니다. 주말엔 수리실 앞 중정 바닥에 앉아 그 상자들을 펼쳤습니다. 종이 상자 겉에 두른 테이프를 다 떼어내고 상자 하나를 납작하게 누르는 데 이십 분 넘는 시간이 걸렸어요. 그렇게 포장한 사람들을 줄곧 생각했습니다. 안에 담은 기계를 보호하려고 시멘트 반죽을 사용해 종이 상자 안에 골판지를 붙인 사람도 있고 커다란 상자 속을 노란 석면 덩어리로 가득 채운 사람도 있었어요.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보호하려는 그 집요한 마음이 자주 밉고 싫었습니다.
한번은 그런 염오와 원망으로 쩔쩔매고 있을 때 청소 관리자로 일하는 아저씨가 다가와 돕겠다는 말도 없이 상자를 칼로 자르고 발로 밟아 눌러놓았어요.
슬프고 마음이 쓰라린 일을 겪어 예민해진 동생은 그가 고철이며 구리를 아무렇게나 가져가려 한다고 경계하곤 했지만, 그런 셈이 있었다고 해도 저는 그가 고마웠습니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장례지도사에게도 그런 도움을 받았어요. 상황에 압도되어서 갈피를 못 잡고 있을 때, 순서와 체계를 알려주고 당장 할 수 있는 일로, 당장의 삶으로 저를 당겨준 사람들입니다.
아버지의 사물들은 수리실 바깥으로 흩어졌습니다. 작고 가벼운 것, 작고 무거운 것, 작고 너무 많은 것, 크고 가벼운 것, 크고 무거운 것, 크고 너무 무거운 것 등등이 말입니다. 마지막 창고 열쇠를 임대인에게 넘기고 나오면서 아버지의 수리실이 이제 ‘사라졌다’고 저는 생각했지만 곧 그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했어요. 거길 채운 사물들이 세상 어딘가로 흩어진 것입니다.
제 아버지의 몸이었던 물질들도 세상으로 흩어졌습니다. 예전에 제가 읽은 몇 권의 책에서는 세상 만물을 원자의 조합으로 보고 생명의 죽음을 소멸이 아닌 원자의 상태 변화로 설명하고 있었어요. 저는 그 이론이 재미있고 반가운 동시에 왠지 낯익었습니다. 이 땅에 먼저 살다 간 이들에게 이미 들은 이야기 같았어요. 떡을 찔 때 떡갈잎을 깔고 짚신에 신갈 잎을 깔 줄 알았던 사람들. 그들도 아마 그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흙으로 돌아간다”라고 말하곤 했겠지요?
세상을 입자의 순환으로 보면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아요. 떠난 이는 세상 어딘가에 섞여 있습니다. 삶과 죽음을 이렇게 입자의 집합과 해산으로 생각하는 일은 그래서 언제나 작은 위안이 되고는 하지만 그래도 늘 한 조각 의심이 남습니다. 마음도 입자일까요? 마음은 다 어디로 가는 걸까요. 내 아버지는 “너무 지쳐서 멍하게 산다”는 말을 통신요금 고지서 뒷면에 남기셨어요. 그 피로를 글로 남긴 외로운 마음은 어디로 흩어진 걸까요.
2026년 2월13일 금요일
선생님, 계시는 곳은 오늘 날씨가 어땠나요.
저는 달리고 돌아왔습니다. 1월과 2월엔 너무 추워서 바깥을 달리지 못할 줄 알았는데 달릴 수 있을 정도는 되는 기온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어서 2월인데도 계속 달리고 있습니다. 달릴 수 있을까, 싶은 날씨에도 달리다 보면 달릴 수 있어요. 멈추면 그때부터는 몸이 식어서 너무 춥기 때문에 어떻게든 집까지 달려서 돌아옵니다. 니트 모자로 머리를 납작하게 누르고 장갑을 끼고 얇은 목도리로 목을 감싸고 아무런 생각 없이 앞을 바라보며 발을 딛습니다. 요즘은 일주일에 나흘 정도를 이렇게 달릴 수 있으면 그게 기쁩니다. 집에서 3킬로미터 떨어진 반환점에 제가 매번 인사를 건네는 버드나무가 있어요. 달려서 그 곁을 지날 때마다 안녕, 하고 말을 해봅니다. 뱀을 조심하라는 표지판이 그 나무 아래 있지만 뱀을 밟은 적은 아직 없습니다.

선생님의 이번 편지에서 생강초 이야기를 반갑게 읽었습니다. 생강초 혹은 설악초, 말고도 달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도 있지요? 그 풀에 붙은 예쁜 이름이 많아서, 오래전부터 그를 예쁘게 여기고 좋아했던 사람들 마음을 알 수 있는 풀이기도 하지요. 저도 무척 좋아합니다.
지난가을과 겨울에 저는 실은 짤막한 여행을 다니곤 했습니다. 정리해야 할 걱정거리가 있는 수도권을 벗어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다녀오곤 했어요. 창원, 구례, 광주, 오사카 등에 일부러 약속과 일을 만들어 다녀왔습니다.
가을이 끝날 무렵엔 동거인과 여든 넘은 노인을 모시고 셋이서 순천만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경기도에서 순천까지 기차를 타고 갔어요. 여러 해에 걸쳐 순천만의 겨울과 봄과 여름을 보았고 작년에 드디어 가을 순천만을 보았습니다. 만개한 갈대꽃을 노인과 보고 싶었는데 때가 조금 일렀는지 올해 습지에서 갈대꽃은 아직이었습니다. 그 대신 순천만 국가정원에서 가을 꽃을 많이 보았어요. 꽃을 둘러싸고 셋이서 찍은 사진을 나중에 보니 거의 구순에 이른 노인의 얼굴이 가장 맑고 예뻐 보였습니다.

생강초는 이 노인에게 받아 처음 안 풀입니다. 노인이 시장 산책하다가 주웠다며 제게 준 낮달맞이꽃 화분 구석에서 어느 날 자라기 시작했어요. 채송화 싹인가, 하고 두었는데 곧장 자라서 깨끗한 줄기 끝에 하얀 잎을 내더라고요. 바람 몇 번에 꺾일 것처럼 가느다란데 절대 꺾이는 법이 없어요. 만만치 않은 파주 바람에도요. 첫해엔 세 줄기를 보았고 거기서 떨어진 씨로 이듬해부터 화분 하나를 꽉 채워서 여름과 가을 내내 보고 있습니다.
빈 둥지를 향한 설렘은 향수 아닐까
그러고 보니 이번 순천에서 작은 나무처럼 자란 생강초를 보기도 했습니다. 잎은 틀림없이 생강초인데 줄기가 아무리 봐도 나무라서 생강초가 목본식물인지를 검색해보기도 했어요. 무슨 식물인지 지금도 모릅니다. 선생님에게 보여 대답을 얻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사진 찍는 일에 게을러서 남은 것이 없습니다.
지난 편지에 쓰신 것처럼 금방 봄이 올 텐데 그러면 많이 바쁘실까요? 식물이 바쁠 때 선생님도 더욱 바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이 일하는 모습을 생각하면 조끼를 입고 등산화를 신고 산을 돌아다니는 모습부터 생각납니다. 멧돼지가 새끼들을 데리고 놀러 나온다는 수목원 산책로를 눈치 보며 지나가는 모습도 떠오르고요.

그렇게 다니다가 주운 둥지를 실은 차지하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마침 매기 넬슨의 책 〈블루엣〉(김선형 옮김, 문학동네, 2025)에서 새들이 꾸민 번식지에 매혹되었다는 저자의 문장을 읽은 참이었습니다. 암컷을 꼬시려고 온갖 파란 사물들로 정원을 만들어 꾸민다는 수컷 새틴바우어 새의 습성을 말하는 부분이었어요. 파란 사물과 파란 열매즙으로 꾸민 파란 정원을 보면서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을 느낀다는 저자는 “혹시 내가 종을 잘못 타고난 게 아닐까(49쪽),” 고민을 한다고 적었습니다.
그 부분을 읽으면서 선생님의 이전 책에 실린 이야기를 생각했습니다. 밤에 만난 하늘타리 “꽃부리에 코를 묻고 있다가(〈나의 초록목록〉, 허태임, 54쪽, 2022)” 꽃가루로 변신해 씨방으로 내려가 수정에 성공하고 싶다는 욕망을 느꼈다는 “포유류”의 고백을 말입니다.
그리고 빈 둥지를 차지하고 싶었다는 선생님의 이번 욕망을 읽으면서 저는 다시 입자들의 집합과 해산을 생각했습니다.
매기 넬슨이 느낀 것처럼 “잘못 타고난” 것이 아니고 다른 집합의 흔적에 불이 켜진 것은 아닐지.
숲속에 남은 빈 둥지를 보고 오래전, 사람 말고 다른 자연의 입자였던 선생님의 일부가 익숙한 장소를 발견하고 설렌 것은 아니었는지.
그래서 아마도 그것은 오래전이나 직전 삶을 향한 향수가 아니었을지.
오늘 저녁엔 그런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파주에서, 정은
황정은 (소설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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