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시대, 에너지의 흐름을 다시 묻다

손성호 한국전기연구원 미래전략실장 2026. 4. 26.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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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성호 한국전기연구원 미래전략실장

최근 독일에서 열린 하노버 산업 박람회 현장을 둘러보며 눈에 들어온 것을 정리해 보면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바로 디지털 기술이 이끄는 산업 전환이었다. 공장 자동화, 로봇, 디지털 트윈 등을 다루는 부스 대부분에서는 인공지능(AI) 적용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었다.

그런데 전시장을 한 바퀴를 돌며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이 수많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과연 무엇으로 움직일까”라는 의문 때문이었다. 결국 핵심은 전기였다. AI가 산업 현장에 더 깊이 들어올수록 전력 수요는 커지고 변동성도 함께 증가하기 마련이다. 하노버에서 마주한 미래 사회에서는 기술 혁신의 전면에 AI가 서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전력 시스템이 조용히 시험대에 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면 단순히 전력을 더 많이 생산해 공급하는 것만으로는 전력 시스템이 제 역할을 다했다고 보기 어렵다. 늘어나는 전력 수요는 예측하기 어려워지고, 변동성은 커지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얼마나 전력을 많이 만들 것인가를 넘어, 에너지 흐름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로 이동하고 있다.

독일 전역에 산재한 연구·개발(R&D) 집단인 프라운호퍼 연구소의 부스에서도 이러한 변화를 보여주는 단서를 찾을 수 있었다. 특히 프라운호퍼 태양에너지 시스템연구소(ISE)는 수소를 중심으로 전력과 산업 공정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된 모습을 시뮬레이션으로 구현하고 있었다. 여기서 수소는 단순한 에너지원이 아니었다. 남는 전력을 흡수해 저장하고, 필요할 때 다시 전력이나 열로 전환되는, 일종의 매개체이자 완충 장치로 기능하고 있었다.

인상적인 부분은 각각의 기술 그 자체보다 시스템적 흐름에 있었다. 언제 전기를 그대로 사용할지, 언제 수소로 전환할지, 그리고 그 수소를 어디에 투입할지를 정교하게 설계하는 문제였다. 특히 AI 기반 공장과 데이터 처리 수요가 증가할수록 전력의 피크 수요와 변동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이때 중요한 것은 에너지를 단순히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에 따라 유연하게 흐르게 하는 능력이다.

이는 기존의 에너지 논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는 그동안 태양전지의 효율, 배터리의 용량, 수전해 기술의 성능과 같은 개별 기술의 경쟁력에 집중해 왔다. 그러나 하노버에서 확인한 메시지는 분명했다. 탈탄소와 디지털 전환이 동시에 진행되는 시대에는 개별 기술의 성능보다 그것을 어떻게 연결하고 운영하느냐가 더 중요한 경쟁력이 된다.

AI가 산업을 바꾸고 있다면, 그 변화를 떠받치는 것은 결국 전력 시스템이다. 그리고 미래 전력 시스템의 경쟁력은 에너지를 얼마나 유연하게 연결하고 흐르게 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AI는 전기가 있어야 작동하며, 전력망 운영 방식의 변화를 요구하는 존재다. 이제는 에너지 시스템을 다시 설계해야 할 시점이다.

손성호 한국전기연구원 미래전략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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