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쿡, 최고의 기업을 만들고 미국의 위기도 낳다

서영민 2026. 4. 26.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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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적이지 않고 위대한 기업

기업은 민주적이지 않다. 1인 1표 원칙은 기업의 현관 앞에서 사라진다. 대신 1원 1표의 원칙이 지배한다. 화폐가치로 환산되는 실적만이 힘이고 목표다. 지배구조는 독재적이다. 상명에는 하복이다. 사장의 말은 법이고, 그 법은 절대왕정처럼 사장이 바뀔 때만 바뀐다. 불합리하다는 이유로 바꿀 수 없고, 바꾸려 하는 구성원은 쫓겨난다. 민주주의 사회의 치외법권이다.

과거 한국의 재벌 기업이나 그렇지 않냐? 반문하겠지만, 세계 최고의 기업도 별반 다르지 않다. 특히 애플이 그렇다. 기업가치가 무려 5천조 원을 넘는 이 기업은 폐쇄적인 경영으로 유명하다. 모든 것은 비밀이고 정보는 공유하지 않는다. 명령은 일방적이고, 해고는 순식간이다. 사내 구조 너머, 협력업체와 맺는 관계를 보면 이 기업이 내재화한 정신의 본질이 보인다. <애플 인 차이나>는 그 교본이다.

2017년, 애플은 에어팟 만드는 위탁 계약을 중국회사 럭스셰어에 준다. 조건은 놀랍다. 이 회사는 사실상 '이윤 없이 에어팟을 조립하는 조건'을 제시했다. 물건을 만들어주고는 이문을 남기지 않는다는 약속…. 믿을 수 없는 조건이지만, 애플과 계약을 하려면 더 한 것도 감당해야 한다.

애플은 공급업체를 극단적인 수준으로 통제하기 때문이다. 공급업체의 운영 비용과 관련된 모든 세부 정보를 요구한다. 노동자 임금, 기숙사 비용, 기계설비 비용까지 포함이다. 공급업체의 운영비용을 환히 들여다본다. 부품 생산에 필요한 기계와 원자재도 애플이 직접 구매해서 전달한다.

'부품과 장비와 돈'은 우리가 댈 테니, 돈 생각은 말고 오직 조립만 해라.


한국의 재벌들이 한창 위세가 당당할 때도 하청업체에 감히 이런 계약을 강요할 수는 없었다. 반면 애플은 2026년 현재도 그렇게 경영한다. 계약을 거듭할 때마다 더 가혹한 조건을 내건다. '물량이 많아졌으니, 이윤은 좀 더 줄여야지?' 이렇게 짜낸다. 그걸 '애플 스퀴즈'라고 부른다.

성장하게 해주겠다, 대신 무조건 따라라, 더 많은 주문을 발주할 테니 더 싸게 납품해라, 이견을 내비치지 마라. 적정 이윤은 우리가 정해준다. 자, 만들래, 말래?

이런 식으로 애플은 공급망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다. 전 세계를 뒤져서 가장 싸게, 가장 정교한 제품을 만들어낼 협력업체를 찾는다. 그리고 언제나 말도 안 되는 가격과 납기일과 품질을 요구했다. 이 기업이 커져서 통제가 어려워지면, 말을 더 잘 듣고 같은 일을 할 다른 기업을 발굴해 직접 키운다. 그게 세계 최고의 수익성으로 이어졌고, 최고의 기업을 만들었다.

모두 팀 쿡의 기획이었다.

■ 하늘에 있는 달이라도 따달라고 하세요

<애플 인 차이나>는 애플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이 이야기에 주인공이 있다면 그건 (스티브 잡스가 아니라) 팀 쿡이다. 책에 인용된 한 회의에서 팀 쿡은 공급망 관리 담당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절대...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걸... 두려워하지... 마세요. ...(중략)... 당신은 모릅니다! 공급업체가 실제로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어요. 그러니까 겁먹지 말고, 하늘에 있는 달이라도 따달라고 요구하세요. 원하는 건 다 말하세요. 필요한 것도 전부 요구하세요. 그들이 할 수 없다면 못 한다고 말할 겁니다."

애플 직원은 증언한다. "쿡은 자신이 정한 가격을 끝까지 밀어붙였어요. 거의 대장내시경 수준이었습니다."


사실 민주적 운영에 관심 없기로는 이 회사 창업주도 뒤지지 않았다.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편집증적으로 집착하고 폭력적으로 몰아붙이며 최고의 제품을 요구했다. 반발에도 아랑곳없이 의지를 비타협적으로 관철했다. 독선적 경영은 어쩌면 애플의 사풍이다.

다만, 그런 방식으로 사람들이 상상하지 못한 제품을 만든 '정신'은 잡스의 유산일지 몰라도, 그런 애플을 '물리적으로' 위대한 기업 자리에 올려놓은 것은 후계자 팀 쿡이었다.

그는 최고의 제품을 [엄청나게 싸게, 엄청나게 많이, 엄청나게 빠르게 만들어, 엄청나게 비싸게 파는 마술]을 부렸다. 짠 내 나는 공급망 경영을 비타협적이고 노골적으로 극단까지 밀어붙여서.

그러니까 팀 쿡을 인류 기업 역사상 최고의 후계자라 부르는 것은 전혀 과하지 않다. 파이낸셜타임스는 'The Greatest non-Founder CEO of All Time'(창업자가 아닌 사람 가운데선 역사상 최고의 CEO)이라고 칭했다.

■ 팀 쿡의 퇴장, 새로운 과제 앞에 선 애플

그런 팀 쿡이 애플을 떠난다. 올해 9월이다. 후계자도 지명했다. 존 터너스. 하드웨어 전문가인데 AI 시대에도 애플의 '해자 Moat'인 최종 단말기(현재는 아이폰) 경쟁력을 지켜내야 하는 임무를 맡았다. 외신은 이번 주 내내 이 소식을 집중 조명했다.


FT를 비롯한 외신들은 대체로 팀 쿡의 결정이 영리하고 시의적절했다고 평가한다. 우선은 '최고의 기업을 만든 순간에 떠났다'는 점에서, 그다음으로는 '새로운 도전'에 걸맞은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한 시점이란 점에서다. 이코노미스트지 역시 후계자의 과제는 AI 시대에 걸맞은 애플을 만드는 일이라고 짚었다.

사실 최근 애플은 테크 뉴스의 첨단에서 존재감을 잃었다. 얼마 전까지는 OpenAI가 주목받았지만, 중간에 구글과 Gemini가 주목받았고, 이제는 클로드의 Anthropic이 뜨겁다. 샘 올트먼에서 데미스 허사비스, 아모데이, 그리고 일론 머스크 같은 이름만 거명된다.

AI 때문이다.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어서 '인류의 미래'와 '미래 최고 기업의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AI 테크기업들만 주목받고 있다. 반면 애플은 이 경쟁을 하지 않는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애플이 '시리'를 더 똑똑하게 만들겠다는 약속을 거듭 지키지 못해 망신만 사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AI 회사를 사고 투자도 했지만, 결론은 '구글의 Gemini'를 시리에 접목해야 하는 처지다. 애플의 혁신적 디자인을 주도했던 조너선 아이브는 이제 OpenAI 진영에 합류했다.

애플의 위기다. 그리고 이 위기는 팀 쿡의 장기인 매니지먼트나 공급망 관리로는 극복할 수 없다. 아무리 싸게 만들어 비싸게 팔아 거대한 이윤을 남긴다 해도, 또 아예 원가 자체가 없는 서비스 Service를 팔아서 번 돈만 150조 원에 달한다 해도 소용이 없다. AI의 세계에서 존재감을 남기지 못한다면 미래는 불투명하다. 팀 쿡도 이를 알고 있고, 그래서 물러난다.

후계자 터너스의 임무는 다만 AI가 아니고 하드웨어로 보인다. 가장 지갑이 두툼한 소비자와 AI가 만나는 지점을 차지한 최종 단말기(지금은 아이폰이라고 부른다)가 미래에도 사과 로고로 장식되어 있게 하는 일이다. 그리하여 AI 시대에도 애플의 영광이 지속하게 만드는 것이다.

달성할 수 있는 과제인지 불확실하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지정학이다. 지정학이 애플의 운명을 제약할지도 모른다. 바로 팀 쿡이 애플을 성장시키는 과정에서 함께 키워버린 존재가 패권을 위협하는 상황 때문이다. 바로 중국이라는 제조 국가다.

애플의 하청국가 중국의 '도광양회'

팀 쿡은 애플을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만들었지만, 의도치 않게 (그러나 필연적으로) 중국을 세계 제조업의 심장으로 만들었다.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나는 게 앞서 언급한 럭스셰어다. 창립자 왕라이춘은 2017년 당시 '거의 이윤 없이 조립하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함께 한 가지를 요구도 했다. 팀 쿡이 공장 생산라인에 와서 사진을 찍어줘야 한다. 당장의 이익 대신 애플과 협력한다는 대외적 명성을 바탕으로 성장하겠다는 장기적 성장전략이었다. 럭스셰어는 이 계약으로 인해 중국 정부의 정치적 후원과 보조금을 얻었다. 그리고 공장 확장과 성장을 거듭해 굴지의 제조기업이 됐다.


럭스셰어는 2년 뒤인 2019년 애플 워치 조립을 시작하고, 2021년에는 중국 기업 최초로 아이폰을 제조한다. 애플과 협력한 7년 동안 매출은 1,400% 이상 증가했고, 이 중 애플의 비중이 3/4이었다. 애플로부터 직접적 이윤은 남기지 못했지만, 애플처럼 원가를 쥐어짜는 법을 배웠고, 완벽한 고성능 제품을 만드는 방법을 손끝으로 습득했다. 단순한 하청 공장이 아니라 자신의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럭스셰어는 한 사례일 뿐이다. 폭스콘, 비야디, BOE, CATL... 이름난 중국 제조 강자들의 상당수가 애플의 공급망 안에서, 혹은 그 주변에서 애플에 협력하면서 학습한 기업과 그 기업 출신 엔지니어들에 의해 강해졌다. 애플이 설계한 '공급업체 쥐어짜기'의 시스템 안에서 생태계가 형성되었고, 그 생태계가 중국의 제조업을 압축적으로 성장시켰다는 말이다.

■ 애플의 전략, 미국의 위기가 되다

중국의 제조 굴기를 상징하는 신3양(新三樣)은 그 결과를 상징한다. 태양광 패널, 배터리, 전기차. 이 세 분야에서 중국의 기술력과 생산력은 이미 전 세계를 압도한다.

내수 부진에 빠진 중국 경제의 버팀목이자, 미국과 유럽이 관세 장벽을 세워가며 막아서려 하는 바로 그 분야다. 태양광 패널은 세계 시장의 80% 이상, 전기차 배터리는 60% 이상, 전기차 완성차 역시 세계 1위 수출국의 자리를 중국이 차지하고 있다. 미국은 필사적으로 막으려 하지만 '미래 산업'의 핵심 고지를 중국은 이미 선점했다. 압도적으로 싸고 성능도 월등하다.

출처: OECD Magic DB·IEA·SNE Research (2023 기준), Claude 시각화


중국이 이 모든 것을 스스로 해냈는가? <애플 인 차이나>의 작가 패트릭 맥기의 답은 분명하다.

"아닙니다, 애플이 20년에 걸쳐 이식한 것입니다."

애플은 실제로 수십 년에 걸쳐 미국과 한국, 일본, 대만에서 습득한 엔지니어링 노하우를 중국 공급망에 쏟아부었다. 매년 수천 명의 애플 엔지니어들이 중국 공장에 상주하며 생산 공정을 설계하고, 품질 기준을 이식하고, 정밀 가공 기술을 가르쳤다. 부품과 장비와 돈을 대고 중국 협력업체의 조립을 지휘했다. 그 '조립'을 7년, 10년 반복하면서, 중국 기업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정밀 제조 노하우, 즉 암묵지를 체화했다.

아이폰을 만들던 엔지니어들이 전기차를 만들고, 정밀 부품을 공급하던 업체가 배터리 셀을 만든다. 애플 공급망은 중국 제조 굴기의 인큐베이터였다.

***

팀 쿡은 애플을 역사상 가장 가치 있는 기업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같은 시기, 같은 손으로, 그는 미국 제조업의 기반을 태평양 건너편으로 옮기는 작업을 완수했다. 애플 주주들에게는 역사상 최고의 경영자였지만, 미국이라는 국가의 산업 기반에는 돌이키기 어려운 구조 변동을 남겼다.

'민주주의 사회의 치외법권'이 민주사회의 존속에 이렇게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주주 외에 누구의 동의도 구하지 않는 한 기업의 결정이 패권을 놓고 경쟁하는 사이가 될 한 국가의 산업 기반을 20년에 걸쳐 성장시켰다. 그렇게 성장을 시작한 중국은 세계 제조의 최첨단을 모조리 장악했다. 이제는 애플마저도 속박당한다. 후임인 존 터너스가 새로운 하드웨어로 AI 시대에도 애플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중국 제조의 힘이 반드시 필요하다.

지금 떠나는 팀 쿡이 남긴 것은 무엇인가. 중국 제조의 시대가 지속하는 한, 이 질문의 뒷맛은 그리 개운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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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민 기자 (seo01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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