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전쟁’ 한 문장에 흔들렸던 정상외교

이하원 외교안보 에디터 2026. 4. 26. 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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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원 기자의 외교·안보 막전막후 <108회>]
2009년 MB 베트남 방문 직전 위기 맞아
베트남, 국빈 방문 11일 전에 ‘전격 취소’
국가유공자법 개정안의 표현 문제 삼아
유명환, 급히 하노이 날아가 “나도 몰랐다”
베 입장 반영해 가까스로 외교 참사 모면
2009년 10월 베트남을 국빈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하노이의 호찌민 묘소를 방문, 헌화하고 있다. 베트남 정부는 한국의 국가유공자 관련법 개정안에 항의하며 이 대통령 초청 취소를 통보, 양국 관계가 위기를 맞았다. 이 대통령 왼편에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베트남에 급파됐던 유명환 당시 외교부 장관이 보인다./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21일부터 3박 4일 일정으로 베트남을 국빈 방문하고 귀국했습니다. 이번 방문을 계기로 양국은 공급망 안정과 첨단 산업 협력 강화를 위해 반도체·배터리 분야 협력을 확대하기로 합의했습니다. 4800억원 규모의 호치민시 도시철도 차량 계약도 발표됐습니다.

청와대는 “베트남이 개혁 개방 정책 40주년을 맞아서 또 럼 당서기장 겸 국가주석의 강력한 리더십 하에 선진국을 향한 국가 발전을 본격 추진해 나가는 전환기적 시점에서 이루어졌다는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1960~70년대 베트남에서 부딪쳤던 양국은 1992년 12월 수교 이후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왔습니다. 한국과 베트남 간 교역 규모는 2025년 기준 약 945억달러 수준입니다. 산업통상부와 한국무역협회 자료에 따르면 베트남은 중국·미국에 이어 한국의 3대 교역국 중 하나로 자리잡았지만, 지난 34년간의 수교 기간이 모두 순탄했던 것은 아닙니다. 특히 2009년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베트남 국빈 방문이 직전에 취소될 뻔한 위기가 있었습니다.

베이징 출장 중 걸려온 ‘긴급 전화’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은 올 초 국립외교원 외교사연구센터가 출간한 회고록(오럴 히스토리)에서 이 대통령의 국빈 방문이 취소 위기를 맞은 상황을 남겼습니다. 이 회고록을 바탕으로 한 취재에 따르면, 당시 유 장관은 2009년 10월 10일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일 정상회의 수행을 위해 출장 중이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중일 정상회의를 마친 뒤 귀국해 10월 21일 베트남을 국빈 방문할 예정이었습니다.

유 장관이 이 대통령, 원자바오 중국 총리,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의에 배석하고 있을 때 휴대전화가 울렸습니다. 발신자는 주베트남 한국 대사였습니다. 회의장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으니 대사가 다급한 목소리로 “열흘 후 예정된 대통령의 국빈 방문을 베트남 정부가 취소하겠다고 한다”고 긴급 보고했습니다.

2009년 10월 10일 제2차 한중일 정상회의가 중국 베이징에서 열렸다. 이명박 대통령과 후진타오 중국 총리,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는 경제협력과 북핵문제, 국제경제 및 금융상황 대비, 세계적인 이상기후 변화 대응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청와대

유 장관이 깜짝 놀라서 “그게 무슨 얘기냐”고 하니, 우리 국회에서 베트남 전쟁 희생자 처우와 관련된 국가유공자 법안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데, 여기에 “공산주의 적대국과 싸우고”라는 문구 등이 들어간 것을 문제 삼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베트남 정부는 이 같은 표현을 매우 거북하게 받아들이며 여러 차례 시정을 요청해 오다가 이 대통령 초청 취소라는 강수를 두려고 한 겁니다. 그런데 유 장관은 이 같은 내용을 대사에게서 처음 들었습니다.

유명환, “그걸 보고라고 하느냐”고 소리 질러

유 장관이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도대체 그걸 보고라고 하느냐”고 질책했습니다. 평소 온화한 성품으로 알려진 김성환 당시 외교안보수석도 크게 분노했습니다. 현장에 있던 한 인사는 “김 수석이 그렇게 화를 내는 것은 처음 봤다”고 했습니다.

유 장관은 사태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유 장관은 불과 11일 앞으로 다가온 국빈 방문이 취소될 경우 국내 정치적으로 큰 파장이 불가피하고 외교적으로도 치명적인 오점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즉각 보고하기에 앞서 김성환 수석과 대응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이 대통령께서도 놀라실 것이니 베트남 정부에서 국빈 방문 취소하자고 통보했다는 얘기는 하지 말고 그냥 문제가 생긴 것 같다고 보고하기로 하자”고 했습니다.

유 장관은 한중일 정상회의 도중 이 대통령에게 보고했습니다. “베트남 국빈 방문 관련해서 오해가 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국빈 방문을 연기하자는 얘기도 나오는데, 제가 먼저 베트남에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베트남에 급히 날아가 “나도 잘 몰랐다”며 사과

유 장관은 베이징에서 귀국하자마자 12일 베트남으로 향했습니다. 그는 이럴 때일수록 솔직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베트남 외무장관과 총리를 만나 “장관인 나도 사실 잘 몰랐다”며 사과의 뜻을 표했습니다. 또한 문제의 표현을 수정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국가보훈처가 2009년 9월에 입법 예고한 ‘국가유공자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서 ‘월남(베트남)전쟁’과 관련한 문구를 삭제하기로 합의했습니다.

하노이 한복판에 위치한 노란색의 베트남 외교부 건물.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은 베트남을 외교의 중요성을 잘 아는 나라라고 평가했다./위키백과

이 개정안에는 원래 ‘세계 평화 유지에 공헌한 월남전쟁 유공자와 고엽제 후유의증 환자들’이라고 돼 있었습니다. 이는 베트남 전쟁을 미국 등과 싸워 나라를 지킨 것으로 규정한 베트남 사회주의 정부의 입장과는 배치돼 베트남 정부가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이를 발견한 주한베트남 대사관은 이에 대한 수정을 요청했으나, 이명박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 전까지 수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베트남 정부가 ‘국빈 초청 취소’라는 강수를 꺼내 들자 ‘월남전쟁’을 삭제, ‘세계 평화 유지에 공헌한 유공자와 고엽제후유의증 환자들’로 수정하기로 한 겁니다.

정상회담 예정대로 성사…극적 반전

유 장관이 직접 하노이로 날아가 사태를 진화한 후, 정상회담이 예정대로 개최되었습니다. 이 대통령은 응웬 밍 찌엣 베트남 주석과 정상회담 후, 만찬 중에 의기투합해 의형제를 맺고 두 정상이 각 테이블마다 다니면서 건배했습니다. 참석자 150여 명 앞에서 두 정상이 러브샷을 하기도 했습니다. 유 장관은 “만약 이 대통령의 국빈 방문이 취소됐으면 한·베트남 관계가 어떻게 됐을지 지금도 가슴이 서늘하다”고 했습니다.

유 장관은 정상회담과는 별도로 이 사건에 대한 진상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그 결과 외교부 내부의 구조적 문제가 드러났습니다. 보훈처가 해당 법안과 관련해 외교부에 의견 조회 공문을 보냈지만, 통상적인 관행에 따라 과장급 전결로 ‘이견 없음’ 회신이 이뤄졌습니다. 이 문제를 얼마나 베트남이 민감하게 여기는지 외교부에서 인식을 못 한 채 사건이 커진 겁니다.

유 장관은 “베트남 정부가 민감하게 생각하고 그 법안의 내용을 바꿔달라고 하면, 이해관계 단체와 보훈처와 상의해서 베트남을 불필요하게 자극하지 않는 방향으로 처음부터 처리했어야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외교부 시스템에 문제 있다”

또 “베트남 정부가 국빈 방문을 취소하자고 통보해 올 때까지 우여곡절이 있었을 것이 분명한데 장관한테도 보고가 안 됐고 외교안보수석도 몰랐다는 것은 우리 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는 “베트남이 이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제는 현지 주재 대사가 장관한테 전화를 하든지 친전 전보를 치든지 해서 문제를 부각시켜야 하는데 다소 안이하게 생각한 것 같았다”고 했습니다. 유 장관은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 당시 대사를 평소 임기보다 약 6개월 일찍 불러들였습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외국 국빈 방문이 외교부의 태만과 부주의로 취소될 뻔한 사안은 처음 있는 일인데 유 장관은 이를 일부러 자신의 회고록에 남겼습니다. 분명 자신의 지휘 책임도 피할 수 없는 사안인데 이를 공개하고, 기록으로 남겨 일종의 징비록(懲毖錄)으로 삼으려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P.S. “베트남은 외교의 중요성을 아는 나라”

유 장관은 회고록에서 베트남과 베트남 정부의 외교에 대해 인상적인 평가를 남겼는데, 한번쯤 생각해볼 만해 인용합니다.

“한·베트남 수교는 1992년 크리스마스 직전에 하노이에 가서 했어요. 그때 이상옥 장관을 모시고 하노이 가서 수교하고 나서 대변인으로서 기자단을 인솔하여 호찌민시, 즉 사이공을 갔는데, 그때 내가 상당히 놀란 것이 우리보다 베트남이 경제적으로 좀 낙후됐다고 그러지만 큰 활력을 느꼈어요.”

“하노이에서 외무장관 회담을 할 때 우리가 베트남 참전에 대해서 사과나 미안하다는 얘기하려고 그러니까 그런 언급은 말라는 것이지요. 지나간 역사이고 앞으로가 중요한데 쓰라린 과거는 자꾸 얘기해 봐야 아무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지요.”

“베트남 외무성을 보니까 바로 국회의사당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대통령궁 근처에 있는 독립 건물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베트남만 해도 외교가 성공하면 평화이고 외교가 실패하면 전쟁을 해야 했던 역사가 있지요. 프랑스와도 전쟁했고, 중국과도 전쟁을 했지요, 미국과의 오랜 전쟁을 해서 외교라는 것의 의미를 잘 아는 나라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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