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광주 양림동 (1) 버드나무 숲에서 ‘생명의 언덕’으로 [앵+글로 본 남도 세상]
김덕일 2026. 4. 26. 03:00

지명(地名)은 종종 그 땅이 품어온 시간의 결을 오롯이 드러낸다. 광주 남구 양림동(楊林洞)은 본래 그 이름처럼 '버드나무 숲'이 우거진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양촌과 유림을 합해서 양림이라 했다. 100여 년 전, 그 아름다운 이름 이면에는 짙은 슬픔이 배어 있었다. 마을 뒤편에 자리한 양림산은 전염병으로 목숨을 잃거나 일찍 세상을 떠난 어린아이들을 묻던 공동묘지였다. 당시 광주 사람들에겐 가까이 가기 꺼려지던 슬픔의 언덕이었다.





이 공간의 성격이 뒤바뀐 것은 20세기 초의 일이다.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이 이곳에 정착하면서 양림산 기슭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는다. 그들은 가장 낮고 소외된 땅이었던 이곳에 자리를 잡고 학교를 세워 글을 가르쳤으며, 병원을 세워 병든 몸을 치유했다. 죽음의 기억이 머물던 양림은 점차 교육과 의료의 중심지로 변화하며 어느새 '생명의 언덕'으로 다시 피어났다.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와 병원은 지역민들에게 새로운 세상의 빛이 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지식인을 배출한 민족정신의 산실 역할을 했으며, 김현승 시인의 맑은 시심(詩心)이 처음 싹튼 곳 역시 이 언덕배기다.



현재 양림산 중턱에 자리 잡은 호남신학대학교 교정은 그 눈부신 공간의 변천사를 묵묵히 증언한다. 광주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고즈넉한 캠퍼스를 거닐다 보면, 20여 명의 선교사와 그 가족들이 잠든 묘원에 다다른다. 한때 풍장의 묘지로 쓰이던 공간이 또 다른 형태의 '기억의 장소'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이 언덕은 양림동의 시간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언덕 위에 서서 그 자취를 굽어보노라면 이곳이 왜 '광주의 예루살렘'이라 불렸는지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


발길을 언덕 아래로 돌리면 붉은 벽돌이 빚어내는 이국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1910년대에 지어진 오웬기념각(오웬관)은 당시 광주 시민들이 서양 문물과 기독교 문화를 마주했던 경이로운 건축물이다. 남녀의 좌석과 입장하는 문이 엄격히 나뉘어 있던 그 시절의 흔적 앞에 서면 잠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정교하게 쌓아 올린 우일선(윌슨) 선교사 사택은 광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서양식 주택으로, 잿빛 일색이던 당시의 풍경 속에 무척이나 이색적인 생기를 불어넣었을 것이다.
양림동을 바라보는 첫 번째 앵글은 바로 이 '생명의 재생'이다. 이번 주말 양림동을 걸으며 버드나무 숲이 헌신을 통해 남도 근대화의 심장으로 박동하기까지, 양림산이 품어온 시간이 어떻게 인간을 치유하고 보듬었는지 깊이 느껴보시길 바란다.
김덕일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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