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과 바람은 호르무즈 해협에 갇히지 않는다

이송희일 영화감독 2026. 4. 25.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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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송희일의 견문발검]

[미디어오늘 이송희일 영화감독]

▲ 2026년 4월1일 서울 영등포구 서민민생대책위원회(서민위)에서 열린 이란 전쟁의 진실과 호르무즈해협 봉쇄에 관한 토론회에서 호르무즈해협 지도가 화면에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호르무즈 해협은 일종의 송유관이다. 전 세계 원유와 가스의 5분의 1이 통과하고 요소, 나프타, 헬륨과 같은 원료들도 이 좁은 관을 흐른다. 한국도 원유의 70%와 천연가스의 20%를 여기로부터 수혈받는다.

3000여 척의 선박이 발이 묶인 채 호르무즈에 도열해 있는 풍경은 글로벌 자본주의가 얼마나 화석연료에 지배당하는지를 보여주는 치명적인 장면이다. 한국은 물론이고, 지정학적 충격파가 세계 전역에 파열음을 내고 있다.

도처에서 비상사태가 선언되고 인도, 필리핀, 아일랜드 등에서는 성난 시위가 파도친다. 그 와중에 대형 석유-가스 기업들은 매시간 3000만 달러의 추가 수익을 퍼올리고 있다. 한쪽에서는 비명이, 다른 쪽에서는 잭팟의 환호성이 터진다. 이 추세라면 식량 가격 상승으로 많은 이들이 굶주릴 것이고, 엑손모빌 등 거대 석유 기업들은 올해에만 대략 1000억 달러 이상의 떼돈을 벌 것이다.

해협 하나에 매달려 전 세계가 비명이다. 사정이 이러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교훈을 얻지 못했다는 자책이 응당 흘러나온다. 몇몇 나라의 예외 사례를 호명하느라 분주하다.

먼저 유럽에서는 덴마크와 스페인이 거론된다. 덴마크는 국가 전력의 80% 이상을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고, 전체 가구의 54%가 열 펌프와 바이오매스 기반의 지역난방에 연결돼 있다. 애초부터 화석연료 영향을 차단하는 구조다. 스페인도 2019년부터 태양광과 풍력 발전에 정부 투자를 대규모로 진행하면서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렸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속도가 더 빨라졌다. 그 결과 2025년에 전력 생산량의 56%가 재생에너지에서 나왔다.

이란 전쟁 발발 후 유럽 전역에서 가스를 이용한 전력 생산 비용이 50% 이상 상승했지만, 스페인은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여 가스와 전력 가격간의 연결고리를 이미 끊어 놓은 터다. 최근 스페인 산체스 정부가 가장 큰 목소리로 반트럼프 메세지를 발화하는 데는 이처럼 재생에너지에 대한 자신감이 뒷받침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파키스탄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부지런히 태양광을 설치했다. 태양광 발전 비중이 2022년 약 5%에서 2025년 25%로 껑충 비약했다. 이로 인해 2026년 2월 기준, 약 120억 달러 규모의 석유와 가스 수입 비용을 절감했다. 파키스탄 시민들이 먼저 각자의 집에 패널을 설치하면서 시작된 이 '태양광의 혁명'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교훈을 발빠르게 새긴 사례로 회자되는 중이다.

그런가 하면, 우루과이는 가장 실제적인 모범답안을 제시한다. 20년 전만 하더라도 에너지 빈국이었다. 낡은 화석연료 전력망으로 인해 잦은 정전에 시달렸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풍경이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98%에 달한다. 풍격, 태양광, 수력, 바이오매스에서 생산되는 전력이 남아 돌아 이제는 이웃 국가에 판매할 정도다. 2008년 금융위기와 그에 따른 유가 상승 고통을 경유하며 좌파정부가 단기간에 추진한 에너지 혁명의 결과다. 우루과이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를 가장 덜 겪었다. 당연히 이란 전쟁도 마찬가지다.

▲ 풍력발전소. 사진=gettyimagesbank

2008년 금융위기 때도, 우크라이나 전쟁 때도 많은 나라들이 재생에너지 전환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대부분 미국산 가스에 의존하면서 흐지부지됐다. 교훈은 없던 일이 됐다. 그리고 호르무즈 해협 봉쇄. 이처럼 화석연료 에너지는 간헐적이고 취약하다.

언제나 석유와 가스는 지정학과 분쟁의 대상이었다. 보다시피 또다시 지정학의 인질 신세다. 하지만 태양과 바람은 호르무즈 해협을 자유롭게 통과한다. 미국의 군함도, 이란의 드론도 막지 못한다. 재생에너지는 그렇게 에너지 자립과 평화의 밑천이 될 수 있다.

이란 전쟁을 거치며 또다시 전 세계가 이구동성으로 재생에너지 전환을 주장하며 서둘러 로드맵을 제출하는 상황이다. 공교롭게도 이달 말 콜롬비아에서는 '탈화석연료' 국제회의가 열린다. COP(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의 무능과 위선에 대응해 실질적인 재생에너지 전환을 도모하기 위한 최초의 국제회담이다. 이란 전쟁과 맞물리며 그 시의성이 여실히 증명됐다.

하지만 한국은 참가국 명단에 없다. 부끄러운 일이다. 또 이재명 대통령은 얼마 전 “재생에너지로 신속하게 전환해야 한다”고 밝혔지만, 실제적이고 과감한 로드맵이 전무하다. 조기 탈석탄 지연, 탄소시장 확대, 반도체 산단과 송전탑 건설, 데이터센터와 LNG 발전소와 같은 기후부정의와 화석연료 기반의 정책들만 즐비하다. 과연 재생에너지 비중이 10%도 안 되는 기후악당국답다.

호르무즈 해협에 갇힌 건 석유과 가스뿐만이 아니다. 화석연료와 성장주의에 중독된 우리의 마음도 감금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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