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 한 달, 먼저 갈라진 건 ‘노(勞)-노(勞)’였다
협력사 내부 대화방에선 “하청 간에도 차등 필요”…이해충돌 분출
(시사저널=이태준 기자)
노란봉투법 시행 한 달, 정작 먼저 갈라진 것은 사(社) 측과 노(勞) 측이 아니라 노동계 내부였다. 첫 시험대는 포스코에서 펼쳐졌다. 포스코는 4월8일 포항·광양제철소 협력업체 노동자 7000여 명을 순차적으로 직고용하는 로드맵을 발표했다. 노란봉투법 통과 이후 대기업이 내놓은 협력업체 노동자에 대한 첫 대규모 직고용 방안이었다.
이 결정에 가장 먼저 제동을 건 쪽은 기존 정규직 노조인 한국노총 포스코노조였다. 이들은 4월8일 "기존 조합원의 희생을 전제로 한 정규직화가 진행된다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 투쟁할 것"이라고 즉각 반발했다. 반대편에 선 하청노조원들은 이번 별도 채용 방식을 '중규직'으로 규정하며 기존 정규직과의 완전한 동등 처우를 요구하고 나섰다.

양대 노총, 교섭 주도권 쥐기 위한 경쟁도
갈등의 골은 4월21일 한층 깊어졌다. 포스코 포항·광양제철소 상생협의회가 4월20일 협력사들에 '직고용 로드맵 및 근로 조건'을 담은 공식 안내문을 내려보내면서다. 로드맵의 최대 쟁점이었던 임금체계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안내문에 따르면 직고용 대상자들은 기존 P(경영엔지니어)·R(연구)·E(생산기술) 직군과 구분되는 신설 'S직군(조업시너지직군)'에 편입된다. 임금도 이에 맞춰 새로 설계된 S직군 임금체계가 적용된다. 업적급은 연 400%를 매월 33.3%씩 분할 지급하고, 설과 추석에는 각 100만원의 명절 상여가 더해진다. 경영성과급은 영업이익 흑자 시 최소 800%가 보장된다. 외형만 놓고 보면 직고용 대상자들이 포스코 정규직에 준하는 처우를 공식 문서로 보장받은 셈이다. 그러나 이 지점이 기존 정규직 노조가 가장 경계해온 대목이다. 조합원 풀이 단숨에 7000명 규모로 확대되는 동시에, 성과급·복리후생 재원을 함께 나눠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직고용 대상으로 묶인 하청노조 내부에서도 신경전이 감지된다. 4월20~22일 사흘간 포스코 협력사 관계자들의 익명 카톡방에서는 직고용 관련 대화가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이어졌다. 협력사 관계자 A씨는 "B사는 자체적으로 임금협상을 한다. 포스코와 직접 교섭하는 것도 아닌 것으로 안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이어 또 다른 관계자 C씨는 "B사보다는 (임금을) 더 받아야 한다. 우린 당당한 직영 아닌가"라며 맞받았다. 대화방의 다른 관계자들 역시 "맞다"고 호응했다. 같은 7000명 직고용 대상 안에서도 협력사별 서열에 따라 차등 대우가 필요하다는 정서가 공유되고 있는 셈이다.
대화방에서는 "하청에서도 누가 인소싱(회사 내부 직고용) 대상인지 빨리 결과를 알려줬으면 한다"는 토로도 이어졌다. 사 측이 직고용 인원 규모는 공개했으나 구체적 명단은 아직 내놓지 않은 탓이다. 자신이 직고용에서 빠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협력사 직원들 사이에 팽배했다. 실제로 또 다른 관계자 D씨는 "직고용이 확정되지 않은 사람들은 이직 준비라도 할 수 있게 해야 하는 것 아니냐. 기다리는 것도 지친다"며 답답함을 드러냈다. 그러자 대화방의 다른 관계자들은 "우리(협력사)끼리 싸우지 말자"며 서로를 다독였다.
이를 지켜보는 포스코 재직자들의 분위기도 술렁이기는 마찬가지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의 포스코 게시판에는 이번 직고용 방침을 성토하는 글이 잇따르고 있다. 한 재직자는 "이런 기준이면 모두 직고용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 보좌관과 국회의원, 간호조무사와 의사도 따지고 보면 관련 업무를 하는 만큼 통일시키는 게 맞는 논리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재직자는 "아웃소싱(외주업체 위탁)을 시켰는데 이제는 인소싱을 해달라는 격"이라며 "(협력사 관계자들이) 들어오면 좋을 것 같은가. 인건비 부담이 늘어나는 만큼 영업이익이 날 수 없는 구조"라고 비판했다.
노사 갈등에 더해 노조 간 경쟁도 격화하는 흐름이다. 복수 노조 체제가 적용되는 사업장에서는 상황이 한층 더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양대 노총이 나란히 자리 잡은 사업장에서는 교섭 주도권을 쥐기 위한 경쟁이 노동위 단계부터 불붙는 모양새다. 단적인 사례가 4월16일 인천지방노동위원회가 현대제철 자회사 현대ITC 노조의 교섭단위 분리 신청을 받아들인 결정이다. 인천지노위는 한국노총 금속노련 소속, 민주노총 금속노조 소속, 상급단체가 없는 노조 등 3개 단위로 분리해 교섭하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현대제철은 세 노조와 각각 교섭 테이블을 따로 차리게 됐다. 상급단체가 다른 노조들이 한자리에 앉을 경우 교섭 대표 선정과 의제 조율 단계에서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점이 결정의 주된 근거로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하청과 복수 노조를 둘러싼 갈등이 전방위로 번지는 배경에는 현행 교섭 제도의 구조적 한계가 자리 잡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성우 노무사는 "지금 드러난 갈등은 노란봉투법이 새로 만들어낸 문제라기보다, 복수 노조 사업장에서 교섭 창구 단일화 절차를 거쳐 다수 노조가 교섭권을 사실상 독점하는 현행 제도에서 파생됐다"고 진단했다.

"소수 노조, 교섭권 없어 단체행동도 불가능"
교섭 창구 단일화 제도는 2010년 복수 노조가 전면 합법화되면서 도입됐다. 한 사업장에 여러 노조가 있을 때 교섭 창구를 하나로 묶어 다수 노조에 교섭권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사용자가 모든 노조와 마주 앉아야 하는 부담을 덜기 위한 절충안이었다. 해외에서는 사례를 찾기 힘든 한국식 설계여서, 시행 직후부터 소수 노조의 헌법상 단체교섭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실제로 이 제도는 헌법재판소 심판대에 여러 차례 올랐다. 가장 최근 판단인 2024년 6월27일 결정에서는 재판관 9명 중 4명이 위헌 의견을 냈으나 위헌 결정 정족수 6명에 미치지 못해 합헌으로 결론이 났다.
이번에 시행된 노란봉투법 역시 완전히 새로운 제도는 아니다. 박 노무사는 "그간 노동위원회 판정과 법원 판례를 통해 실질적 사용자인 원청에 대한 교섭권이 인정돼온 흐름을 법제화한 성격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쟁점은 원·하청 교섭에서도 교섭 창구 단일화 절차를 거쳐야 하느냐였다. 이에 관한 명문 규정은 법에 없지만, 고용노동부는 이 경우에도 창구 단일화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해석했다. 그 결과 기존 사업장 단위 교섭에서 창구 단일화가 빚어낸 문제점이 원·하청 교섭 국면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게 박 노무사의 진단이다.
특히 소수 노조가 처한 현실은 더 녹록지 않다. 노조는 노동 3권(단결권·교섭권·단체행동권)이 함께 보장돼야 실질적 의미를 갖지만, 현 제도에서 소수 노조는 출발선부터 교섭권을 확보하기 어렵다. 박 노무사는 "교섭권이 없으니 단체행동에 나설 수도 없고, 임의단체 수준의 사내 모임에 머무르게 된다"며 "그렇다 보니 노조끼리 조합원을 빼앗으려는 다툼이 벌어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위헌 소지가 있는 제도인 만큼, 교섭 창구 단일화 자체를 손보는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는 한 노조 간 갈등은 계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제도가 그은 경계는 작업복 색깔을 넘어 식당과 휴게실도 갈라놓았다. 같은 사업장에서 일하는 하청노동자들이 소속 협력사의 규모에 따라 처우가 엇갈리면서, 연대의 대상이던 동료가 비교의 상대로 바뀌고 있다. 노동자 보호를 목적으로 입법된 노란봉투법이 대형 하청과 영세 하청의 간극을 오히려 벌려놓았다는 비판은, 결국 이 현장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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