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츠 안에 흰 티셔츠, 비슷한 색과 다른 질감…‘한 겹 더’의 묘미[박민지 디자이너의 옷 잘 입는 공식]

평범하지만 신경 쓴 차림, 드러냄보다 조절
나에게 어울리는 목선의 흰 티셔츠 ‘기본’
같은 계열 색, 다른 소재 ‘깊이’ 더하기
‘옷을 잘 입고 싶다’는 생각은 언젠가 끝낼 수 있는 과제라기보다 오래 붙들고 가야 하는 숙제에 가깝다. 누구나 한 번쯤은 그런 마음을 품는다. 조금 더 말끔해 보이고 싶고, 세련돼 보이고 싶고, 무엇보다 내게 어울리는 방식으로 옷을 입고 싶어진다. 하지만 옷 입기는 정답을 외운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다. 계속 입어보고, 어울리는 것과 어색한 것을 구분하고, 자기 나름의 기준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가깝다.
가장 빠른 방법은 물론 있다. 새 옷을 계속 사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누구에게나 가능한 방식이 아니다. 게다가 많이 산다고 해서 곧바로 옷을 잘 입는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옷을 갖고 있느냐보다, 내가 가진 옷을 얼마나 정확히 이해하고 있느냐이다. 비슷한 셔츠 한 장도 어떻게 입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남성들에게 이 문제는 특히 어렵다. 선택지는 단순해 보이지만 그 안에서 차이를 만들어내는 일은 생각보다 까다롭다. 셔츠, 티셔츠, 니트, 팬츠, 재킷. 종류는 많지 않지만 멋과 평범함은 아주 작은 차이에서 갈린다. 셔츠 단추를 어디까지 열 것인지, 소매를 어느 높이까지 걷을 것인지, 바지 위로 자연스럽게 떨어뜨릴 것인지 말끔히 넣어 입을 것인지, 이너웨어를 받쳐 입을 것인지. 남성복은 화려한 장식보다 균형과 정돈이 먼저 보이는 세계다. 오히려 단순해서 더 어렵다.
특히 4월 중순을 지나며 날씨가 갑자기 훅 더워지기 시작하면 그 차이는 더 분명해진다. 두꺼운 재킷은 물론이고 가벼운 봄 겉옷조차 애매해지는 때가 있다. 아침에는 걸쳤다가도 낮에는 벗게 되고, 실내에 들어가면 손에 들고 있게 된다. 결국 하루 중 더 오래 보이는 것은 아우터, 겉옷이 아니라 그 안에 입은 옷이다. 초봄에는 코트와 재킷이 인상을 만들었다면, 지금부터는 셔츠와 이너, 얇은 니트 같은 한 겹, 두 겹의 조합이 그 사람의 취향을 말해준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작정 과감해지는 일이 아니다. 우리는 늘 유럽 남성복 화보 같은 장면을 보지만, 현실의 옷차림은 그와 다르다. 셔츠 단추를 깊게 풀어 헤친다고 해서 모두가 근사해지는 것은 아니다. 체형도 다르고, 생활도 다르고, 무엇보다 사회적 시선과 각자의 자리라는 것이 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드러냄보다 조절이다. 덜 노출하고도 답답해 보이지 않는 방법, 평범한 옷차림 안에서도 신경 쓴 듯한 인상을 남기는 방법이 중요하다.
가장 기본은 역시 흰 티셔츠다. 누구나 아는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바로 그래서 더 중요하다. 셔츠 안에 깨끗한 흰 티셔츠 한 장을 받쳐 입는 일은 너무 단순해서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상을 가장 확실하게 정리해준다. 셔츠 하나만 입었을 때보다 훨씬 단정해 보이고, 셔츠 단추를 조금 열어도 허술해 보이지 않는다. 피부가 직접 드러나는 대신 흰 티셔츠가 그 자리를 정리해주기 때문이다. 옷은 대개 기본일 때 가장 멋있다. 모두가 아는 방식이지만, 바로 그 기본이 가장 정확하게 지켜졌을 때 사람은 가장 깔끔해 보인다.
그다음은 자신에게 어울리는 목선을 고르는 일이다. 이너를 받쳐 입는다고 해서 모두 같은 인상을 풍기는 것은 아니다. 단정한 크루넥(라운드넥)은 안정감이 있고, 조금 더 열린 목선은 답답함을 덜어준다. 목과 쇄골 주변이 시원하게 열리는 편이 어울리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목 주변이 너무 비면 얼굴이 더 마르고 길어 보이는 사람도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유행하는 목선이 아니라 자기 얼굴과 어깨선, 목 길이에 맞는 균형이다. 그 균형을 알게 되면 셔츠 단추를 서너 개 더 풀어도 무리하지 않고, 한 겹을 더 넣어도 답답해 보이지 않는다.
이 기본에 익숙해지면 조금 더 섬세한 조합으로 나아갈 수 있다. 많은 사람이 톤온톤(tone-on-tone)을 떠올리지만, 현실적으로는 모든 옷의 색을 완벽히 맞추기 어렵다. 그래서 더 실용적인 것은 비슷한 계열을 나란히 두는 방식이다. 완전히 같은 색이 아니라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색이 부딪히지 않고 부드럽게 이어지는 흐름이다. 여기에 소재의 차이까지 더해지면 옷차림은 훨씬 풍부해진다.
이를테면 비슷한 브라운 계열이라도 겉의 셔츠가 약간 실키한 질감이고, 안에 받친 이너가 담백한 코튼이라면 인상은 단순한 단색 차림과 달라진다. 색은 차분하게 정돈되어 있는데, 소재가 달라지면서 표면의 깊이가 생긴다. 겉은 은은하게 흐르고, 안은 매트하게 받쳐주기 때문에 차림이 훨씬 안정적으로 느껴진다. 과장되지 않으면서도 분명한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같은 색을 입었는데도 밋밋하지 않고, 오히려 더 섬세하게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옷을 잘 입는 사람들은 대개 색을 요란하게 쓰기보다 이렇게 비슷한 색 안에서 소재와 결의 차이를 다루는 데 익숙하다.
회색 계열도 마찬가지다. 연한 그레이 셔츠 안에 좀 더 밀도 있는 회색 이너를 받치면 색의 대비는 크지 않은데도 차림이 한층 깊어보인다. 한 벌만 입었을 때보다 체형이 부드럽게 정리되고, 보는 사람에게는 담백하지만 신경 쓴 인상이 남는다. 레이어드는 대단한 기술이 아니라 이런 작은 차이에서 완성된다.
중요한 것은 너무 열심히 꾸민 것처럼 보이지 않는 태도다. 옷차림에서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것은 화려한 기술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균형이다. 셔츠와 티셔츠, 셔츠와 얇은 니트, 혹은 비슷한 색 안에서 다른 질감을 겹치는 방식은 모두 눈에 띄게 복잡하지 않다. 하지만 그런 차림은 막상 한 벌만 입었을 때보다 훨씬 안정적이고 성숙해 보인다.
옷을 잘 입는다는 것은 결국 대단한 비법을 아는 일이 아니다. 더운 날씨에도 허술해 보이지 않는 한 겹을 고르는 일, 같은 색 안에서도 소재의 차이를 이해하는 일, 그리고 자기에게 어울리는 선을 찾는 일이다. 더워질수록 한 겹이 중요해진다. 그리고 바로 그 한 겹에서 옷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가 드러난다.
▶박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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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공부하고 대기업 패션 브랜드에서 패션 디자이너로 20여년간 일했다. 패션 작가와 유튜버 ‘르쁠라’로 활동 중이다. 최근 세 번째 저서 <세계 유명 패션 디자이너 50인>을 펴냈다.
박민지 패션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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