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분 거리’ 구급대원, 5시간 지나도 6살 힌드에 닿지 못한 이유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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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29일, 이스라엘이 하마스 퇴치를 명분으로 가자지구에 대규모 대피령을 내린 날, 탈출하던 하마다 가족의 자동차에는 이스라엘군이 쏜 335발의 총탄이 박혔다. 이 총격으로 가족은 몰살당했다. 유일한 생존자는 여섯살 난 어린이 힌드였다.
힌드는 이후로 다섯시간을 더 살아 있었다. 가족들의 시신에 둘러싸인 상태였다. 그 시간 동안 힌드는 팔레스타인 적신월사 활동가들과 통화를 이어 갔다. 아이는 수화기 건너편의 어른들에게 “제발 나를 데리러 와주세요”라고 간청했다. ‘행복한 어린이’ 유치원 ‘나비’ 반에 다니던 힌드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곧 도착하겠다는 어른들이 끝내 나타나지 않는 이유를 납득하지 못했다.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건 활동가들도 마찬가지였다. 힌드가 갇혀 있는 곳으로부터 불과 8분 거리에 대기하고 있는 구급대원들이 있었다. 하지만 사방에 이스라엘 점령군이 깔려 있는 상황에서 힌드가 있는 장소를 향해 구급차가 이동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군과 이동 경로를 조정해야만 했다. 여기저기로 전화가 오가는 데만도 몇시간씩 걸리는 일이다.
카우사르 벤 하니야의 ‘힌드의 목소리’는 처음 힌드와 통화가 연결된 때부터 계속 이어지는 급박한 ‘조정’의 과정을 따라간다. 우리는 영화가 그저 허구이기를 바라지만, 벤 하니야는 시작부터 분명하게 밝힌다. “이 목소리는 실제 통화를 녹음한 기록이다.”
그렇다,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할 뿐만 아니라 현실의 기록 그 자체를 영화 이미지에 이어 붙인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영화적 재현을 이미 흘러간 사건에 덧붙여 역사를 만들고, 그 역사가 전달되는 시간을 지속시키고자 한다. 전쟁과 죽음의 이미지가 일상처럼 흐르지만 두려움과 고통은 빠르게 휘발되어 버리고, 도대체 무엇이 현실인지 분간하기도 어려운 인공지능(AI) 생성 이미지의 시대에, 벤 하니야는 영화가 시간의 매체이자 목격의 매체로서 할 수 있는 바를 다하고자 한다. 물론 힌드의 목소리는 유가족들의 적극적인 지지 덕분에 영화에 사용될 수 있었다.
가자로부터 8천㎞ 떨어진 서울의 한 극장에 앉아, 가능하면 타인의 고통으로부터 고개를 돌리고 싶은 나로서도, 달리 도망칠 구석이 없다. 우리는 꼼짝없이 “가족들은 다 죽었어요”, “나에게 총을 쏘고 있어요”, “무서워요”라고 말하는 힌드의 목소리와 만나야만 한다. “도대체 내가 무엇을 듣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이내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들어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전환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입술이 바싹바싹 마르는 다섯시간의 조정 끝에 드디어 구급차가 출발했을 때, 영화 속의 인물들도 영화 밖의 관객들도 절박한 기도를 하게 된다. “부디 구원하소서.”
그러나 일은 여전히 뜻 같지 않다. 이동이 만만치 않은 것이다. 이스라엘의 무분별한 폭격으로 길은 이미 초토화되었고, 지도상으로 멀쩡해 보이는 도로도 현실에서는 완전히 폐허가 되어버렸다. 건물의 잔해를 피하기 위해 단 50m라도 합의된 이동 경로에서 벗어나려면 다시 이스라엘군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조정’이라는 이름의 야만이 그렇게 눈앞에 펼쳐진다.
적신월사는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부상을 당했거나 죽음의 위기에 놓인 팔레스타인인을 구하기 위해 다시 이스라엘군과 협상하고, 경로를 조정하며, 이동을 허가받아야만 하는 곤란을 헤쳐 나가야 한다. 조정 따위는 개나 줘버리라며, 어떻게든 아이 먼저 구해야 하지 않겠냐고 울부짖는 활동가와, 적신월사의 구급대원의 생명 역시 중요하다며, 절차를 지키지 않으면 이스라엘에 살상의 빌미만을 줄 뿐이라고 막아서는 활동가 사이에 벌어지는 다툼을 보는 것은, 곤혹스럽다. 누구의 편도 들 수 없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구급차가 겨우 힌드에게 도달했을 때, 한 줄기 희망이 보이는 바로 그 순간, 우리에게 들려오는 것은 또 다른 총격 소리다. 그리고 힌드의 목소리는 거기에서 멈춘다.
‘힌드의 목소리’는 인도에서 상영 금지당했다. 인도와 이스라엘의 외교 관계 때문이다. 벤 하니야라는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스타’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브래드 핏, 호아킨 피닉스, 루니 마라, 알폰소 쿠아론, 조너선 글레이저, 스파이크 리, 마이클 무어 등의 유명인들이 총괄 제작에 나섰지만 여전히 이 영화를 상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다.
여섯살 힌드는 끝내 구조되지 못했다. 사건 발생 12일 뒤, 민간 방위대가 하마다 가족의 자동차를 찾았을 때, 그 안에는 힌드와 여섯명의 가족이 죽어 있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50m 떨어진 곳에선 종잇장처럼 구겨진 구급차와 구조대원 2명의 시신이 산산조각 난 채로 발견되었다. 끔찍한 일이지만, 영화에도 나오는 말처럼, 가장 끔찍한 일도 아니다.
얼마 전 이재명 대통령이 이스라엘군의 잔혹 행위를 규탄하면서 세계적으로 이목을 끌었다. 그러나 정작 팔레스타인 평화 항해에 나서려 했던 한국인 평화 활동가 ‘해초’는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여권 효력이 정지됐다. 외교부는 신변의 안전을 이유로 들었지만, 오히려 평화운동 참여자를 무국적자로 만들어 탄압하는 아이러니를 초래했을 뿐이다. 힌드의 목소리에서 우리는 무엇을 들어야 하는가? 그건 우리 시대의 가장 급진적인 요청, 즉 평화를 요구하는 목소리일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를 함부로 막아서선 안 된다.
손희정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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