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있는 시간이 끝나간다는 것, 그 순간을 알아차리는 일
시그리드 누네즈 '어떻게 지내요'
편집자주
치열한 경쟁을 버텨내는 청년들에게 문학도 하나의 쉼표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작품 중 빛나는 하나를 골라내기란 어렵지요. 소설집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으로 제55회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한 송지현 작가가 청년들의 '자연스러운 독서 자세 추구'를 지지하는 마음을 담아 <한국일보>를 통해 책을 추천합니다.

작년, 엄마와 나는 알래스카 한복판을 배를 타고 떠다니고 있었다. 창문도 없는 선실은 어둡고 어두워서 우리는 시차적응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정말이지 많이 잤다. 엄마는 여행에 별 취미를 두지 않았다. 낮동안의 관광 시간에 엄마는 대개 무기력하고 수동적이었다.
그 기억이 벌써 작년이고, 나는 그 이후로 엄마를 만난 적이 없다. 그러나 이렇게나 오래 만나지 못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다가, 며칠 전, 엄마가 전화로 그 사실을 언급하는 바람에야 알게 되었다.
엄마는 자기가 보고 싶지 않으냐고 물었고, 나는 당연히 보고 싶지, 하고 대답했다. 억지로 대답을 들은 것 같았는지 엄마는 입술에 침이라도 발랐느냐고 다시 물었다. 뭔가 민망해져서 요즘 강의를 많이 해서 입이 바짝바짝 마른다고, 건조하긴 하다고 답했더니, 엄마가 웃었다. 나는 갑자기 엄마가 작년의 여행을 즐겼는지가 궁금했다.
그 여행 중에 엄마는 내내 누군가의 안부를 궁금해했다. 단골 손님, 아래층 가게 주인, 가게 주인이 키우는 고양이, 동네 친구들의 안부. 그리고 제일 궁금해하던 것은 아빠가 키우는 개의 안부였다. 마침내 돌아가는 날, 엄마는 궁금해하던 모든 사람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간다는 생각 때문인지 쉽게 잠들지 못했다. 나는 그런 엄마를 위해 비행기에서 영화 보는 법을 알려주었다.
엄마가 영화를 보는 동안 꾸벅꾸벅 졸았다. 기내식이 나와서 잠깐 깼을 때, 엄마가 보고 있는 화면에 틸다 스윈튼이 나오고 있었다. 나는 밥을 먹자마자 다시 잠들었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엄마는 울고 있었다. 엄마는 우는 것을 들키자 민망해하며 영화가 참 재밌다고, 너도 보라고 했다. 나는 영화 제목을 대충 흘려들은 채 다시 잠들었다.
영화가 다시 생각난 건 오래도록 엄마를 못 보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나서였다. 영화를 보며 울던 엄마의 모습이 마지막 기억이라는 것이 떠올랐던 것이다. 나는 그제야 엄마가 말해준 영화를 찾아서 재생했다. 웃긴 일이다. 엄마가 보고 싶다면 엄마를 보면 될 것인데, 나는 엄마가 보고 있던 영화를 찾아 본다. 직접 만나지 않고도 어떤 시간을 따라갈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영화가 시그리드 누네즈의 '어떻게 지내요'를 원작으로 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나는 책을 다시 펼쳤다. 예전에는 죽음을 선택한 친구의 곁을 지켜주는 일이 중심 사건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이야기의 중심에 놓여 있는 것이 사건이 아니라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와 함께 있는 시간, 혹은 함께 있지 못해 그들의 시간을 궁금해하는 시간. 그 시간들 속에서 작가는 한때 젊었던 여자에 대해서, 혹은 늙어가는 고양이에 대해서 쓴다.
생각해보면 결국 관계란 거창한 사건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사소하게 흘러가는 시간들로 유지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안부를 끝없이 궁금해하고, 그 사람이 지나온 시간을 상상하고,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미리 걱정해보는 일. 때로는 그 시간 속에 함께 있고, 더 자주 함께 있지 못한 채로 그 시간을 짐작하는 일.
나는 아직도 엄마가 그 영화의 어느 장면에서 울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이제는 조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와 함께 있는 시간이 끝나간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혹은 이미 끝났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리는 순간 같은 것에서였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그런 순간들은 생각보다 자주 지나가고 있겠지.
나는 그걸 이제야 조금 알 것 같고, 이제는 진짜로 엄마를 보러 갈 시간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송지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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