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노믹스, 일본 경제 돌아올까

지난 3월19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오래전 아베 신조 전 총리가 했던 말인 ‘일본이 돌아왔다(Japan is Back)’를 외쳤다. 그러나 아베노믹스 이후 일본 경제는 여러모로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여왔다. 정부가 빚더미에 올라앉아 ‘한국에 반면교사’라는 목소리가 높은 한편 주가지수 상승 등 일본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일본은 오랜 디플레이션이 끝나고 인플레이션이 돌아왔으며 노사 협상 결과 명목임금도 상승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경제성장의 회복은 지지부진하고 실질임금과 민간소비는 정체 중이다. 트럼프의 보호무역에 따른 충격에도 직면해 있다. 2024년 일본 경제 성장률은 –0.2%로 침체를 겪었으나 지난해엔 1.2%로 회복되었다. 올해는 0.7%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다카이치 정부는 ‘경제 안보’를 강조하며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확장과 공공투자, 그리고 산업정책을 추진하며 경제성장을 촉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과연 아베를 계승하는 다카이치의 성장전략이 성공해 일본 경제가 부활할 수 있을까?
1990년대 초 버블 붕괴 이후 20여 년의 장기 불황과 디플레이션을 겪은 일본은 2013년부터 아베노믹스로 이를 극복하고자 했다. 당시 아베 정부는 양적완화 등 비전통적 통화정책, 기동적인 재정 확장, 성장전략이라는 ‘3개의 화살’로 불리는 정책을 시행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돈을 풀고 총수요를 확대해 물가를 높이려 했던 것이다.
아베노믹스 이후 일본의 거시경제
그러나 아베 집권 이후 경제성장의 회복은 미미했고 인플레이션 역시 2021년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실업률이 하락하고 노년층과 여성의 고용률이 높아지는 등 노동시장은 활황을 보였지만, 실질임금은 계속 정체되어 아베가 집권한 2013년부터 퇴임한 2020년까지 거의 오르지 않았다. 통화팽창으로 엔화 가치가 크게 하락하면서 대기업들의 수출과 이윤은 늘어났으나, 투자는 별로 촉진되지 않았다. 2016년 일본 은행은 마이너스 금리와 수익률곡선 통제라는 더욱 극단적인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도입했다. 이러한 금리 억압 덕분에 장기국채 금리(수익률)가 계속 낮아져 정부 부채의 이자 부담이 줄어들었다. 동시에 명목 GDP가 약간 증가하면서 이전 시기와 달리 경제성장률이 국채금리보다 높아졌다. 그 덕분에 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이 안정된 것은 이 시기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아베노믹스는 경제성장과 ‘인플레이션 회복’엔 성공적이지 못했다. 그러나 일본 경제가 오랜 장기불황의 터널에서 탈출할 가능성을 보여줬다. 특히 재정문제가 심각한 상황인데도 중앙은행의 비전통적 통화정책으로 적극적인 거시경제 운용을 실행한 점은 ‘절반의 성공’으로 평가될 수 있다. 물론 임금 상승 부진과 민간소비 정체로 성장률을 크게 높이지는 못했다. 하지만 일본 경제가 1990년대 중반부터 구조적으로 생산가능인구가 빠르게 감소하는 고령화의 충격 속에 놓여 있었다는 점은 잊지 말아야 한다. 실제로 1990년 이후 30년 동안 일본의 GDP 기준 경제성장률은 선진국 중 이탈리아를 제외하면 꼴찌 수준이었다. 그러나 생산가능인구 1인당 GDP의 성장률은 미국보다 낮지만, 대부분 유럽 선진국들보다 높았다. 노동생산성 상승도 다른 국가들보다 못하지 않았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면, 경제성장률 하락으로 나타나는 일본의 장기불황은 상당 부분 인구변화와 관련이 컸다. 따라서 아베 정부는 2016년 아베노믹스 2단계에서 ‘50년 후에도 인구 1억 명을 유지하겠다’는 목표 아래 ‘1억 총활약 계획’을 제시하며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청년들의 삶을 개선하려고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법제화와 노동시간 단축을 단행했으며, 이후에도 교육과 보육의 무상화를 확대하는 등 사회복지를 확충했다. 이는 인구문제가 경제와 재정에도 매우 중요하다는 깨달음에 기초한 것으로, 일본보다 더 빠른 고령화와 낮은 출산율 문제를 겪고 있는 한국에도 커다란 시사점을 던져준다.
2021년 10월 집권한 기시다 정부는 아베노믹스의 한계를 반성하고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실현하겠다며 ‘새로운 자본주의’를 의제로 제시했다. 이는 취약한 노동자들의 임금인상과 분배의 개선으로 성장의 과실을 널리 나누고 경제성장을 촉진하겠다는 진보적이고 포용적인 성장의 길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과도 비슷한 지향이라 할 수 있다. 기시다는 디지털 전환, 녹색산업 전환 등 산업정책에 기초한 성장전략과 더불어 임금인상 및 대·중소기업의 이윤 공유 같은 분배 전략을 동시에 강조했다. 또한 낮은 금융소득세율이 원인인 ‘1억 엔의 벽(연 소득이 1억 엔을 넘기면 실효 소득세율이 오히려 낮아지는 현상)’을 깨겠다고 약속했다. 기시다 내각은 ‘새로운 자본주의 실현 본부’를 설치하고 총리가 정기적으로 회의를 주최했다.
그러나 새로운 자본주의 역시 임금인상과 부자증세를 실현하지는 못했다. 당시 일본 경제는 대외적 충격으로 인한 거시경제 운용의 어려움에 직면해 있었다. 특히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와 식품 가격 상승으로 2022년 하반기부터 인플레이션율이 크게 높아졌다. 미국이 인플레에 대응해 2022년 금리를 빠르게 인상하면서 미·일 간 금리 격차가 확대되자 ‘엔저’ 현상이 심화되었다. 이는 물가상승의 가속화로 이어졌다. 실제로 2022년 말 일본의 인플레이션율은 약 4%까지 치솟았고, 이듬해(2023년)에도 3.2%에 달했다. 그러나 명목임금은 인플레이션만큼 높아지지 않아 실질임금 상승률은 2022년엔 –1%, 2023년 –2.5%를 기록한다. 실질임금이 오히려 하락한 것이다.

당시 일본 은행이 엔저를 막고 인플레를 억제하려면 금리를 올려야 했으나 경기둔화가 우려되었다. 일본 은행은 2024년 3월이 되어서야 마이너스 금리를 포기하고 정책 금리를 0.1%까지 인상했고 이후 점진적으로 금리를 높이고 있다.
일본에서 실질임금 상승이 정체된 이유는 무엇보다 노동조합의 협상력이 약하고 진보적인 정치세력이 미약해 아래로부터 임금인상 압력이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높아지는 인플레를 배경으로 2023년부터는 일본 사회 전반에서도 ‘임금인상이 필요하다’는 합의가 확산되었다. 2023년 춘투(春鬪) 결과, 명목임금이 3.6% 높아졌다. 2024년과 2025년에는 5% 이상 올랐다. 그러나 여전히 노조가 없는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의 임금인상은 지지부진해 경제 전반의 실질임금은 상승하지 못했다. 또 기시다 정부는 부자들의 반발과 주가 하락을 배경으로 금융소득세 인상에도 실패했다.
2025년 10월 집권한 다카이치 정부의 정책 지향은 기시다 정부와 대비된다. 다카이치 총리는 임금인상이나 포용적 성장을 위한 개혁보다 경제성장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하면서 투자 촉진을 강조한다. ‘경제 안보’라는 슬로건 아래 민관의 공동 노력으로 투자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그는 내각에 ‘일본 성장전략본부’를 설치하고 총리 주도로 일본 성장전략회의를 개최하고 있다.
다카이치노믹스는 전반적으로 아베노믹스를 계승하지만, 전략산업의 육성을 위한 산업정책이라는 관점에서 정부의 적극적 공공투자와 재정확장을 강하게 추진하는 것이 특징이다.
2025년 11월 집권 이후부터 다카이치 정부는 약 21조 엔에 달하는 재정확장 정책을 시행했다. 이 과정에서 다카이치는 ‘책임 있는 적극재정’을 내세우며 이전 정부보다 재정의 역할을 강조한다. 지난 3월10일 열린 일본 성장전략회의에서는 반도체, 인공지능(AI) 등 17개 분야의 전략산업을 설정하고 61개 제품을 민관 협력을 통해 발전시키겠다고 결의했다. 일본의 반도체 산업 부활을 위해 일본 정부가 민간 대기업들과 출자한 반도체 회사 라피더스가 구체적인 사례다. 일본 정부는 이 회사에 이미 출자와 보조금으로 약 3조 엔을 지출했다. 다카이치는 아베가 제대로 쏘지 못한 두 번째 화살인 재정확장을 핵심 정책 수단으로 성장을 촉진해서 강한 일본 경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현재 다카이치의 정책 기조는 ‘고압경제(high-pressure economy)’다. 정부가 재정확장을 통한 총수요 확대로 경기를 일부러 뜨겁게 만들어, 해당 국가 경제에서 원래 가능한 최대치(잠재생산)보다 많이 생산하는 상태를 일컫는다. 이는 미국의 바이든 정부 시기 재무장관 재닛 옐런이 추진한 방향으로, 이렇게 총수요 압력이 높으면 기업의 투자와 생산이 자극되고 기존에 일하지 않던 노동자들도 고용할 수 있다. 나아가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생산성과 잠재성장률도 따라서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된다. 즉 ‘수요 측 (demand-side) 정책’이다.
지금의 일본은 인플레이션이 이미 높아진 상태이며, 생산성이나 기술혁신을 위한 ‘공급 측 정책(supply-side)’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다카이치 정부는 최근 일본 은행의 정책심의위원회에 물가안정보다 경기부양을 강조하는 인사들을 임명하면서 총수요 확대의 의지를 확고하게 나타냈다.
다카이치 정부 성장전략에서 빠진 것
재정확장과 산업정책을 통해 투자와 성장을 촉진하려는 다카이치노믹스 앞에 놓인 질문은 ‘일본이 그렇게 할 만한 재정 여력을 갖고 있는가’이다. 다카이치 정부도 믿는 구석이 없지 않다. 실제로 일본은 2023년 이후 인플레이션 덕분에 명목 GDP와 세수가 높아져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이 크게 줄어들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25년 일본 정부의 재정적자는 GDP의 약 1.3%까지 하락했다. 재정수지만 보면, 독일을 비롯한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서도 재정이 건전한 상황이다. 게다가 일본 정부는 ‘GDP 대비 정부의 총부채 비율’은 매우 높지만, ‘정부 보유 자산’도 많기 때문에 순부채 비율은 높지 않다고 강조한다. 2026년 일본의 순부채 비율은 130%로 미국의 100%, 프랑스의 108%에 비해 별로 높지 않다.
하지만 이미 정부의 총부채 비율이 GDP의 약 230%인 현실에서 재정확장 추진은 재정적자 증가 및 이에 따른 투자자들의 우려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정부의 재정확장 발표 이후 일본의 장기국채 금리가 빠르게 높아졌는데, 올해 초에 약간 하락했다가 3월 들어 다시 올랐다. 달러화 대비 엔저 현상도 더욱 심화되었다.
앞서, 2022년 이후 달러화 대비 엔저의 심화가 미·일 간 금리 격차를 그대로 반영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런데 2025년 중반부터, 특히 다카이치의 집권 이후엔 미·일 간 금리 격차가 축소되는데도 달러 대비 엔화 가치가 하락 추세란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 정부의 기대처럼 재정확장이 명목 GDP를 높이는 효과가 크다면 재정 상태를 개선할 수 있겠지만, 이를 예단하기는 쉽지 않다.
무엇보다 다카이치 정부의 성장전략은 오랫동안 심각해져온 일본 경제의 구조적 불균형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 현재 일본 경제에 필요한 것은 임금인상과 소득분배의 개선이다. 가계소득 증가의 지체로 GDP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민간소비가 정체되면서 경제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1990년대 이후 30년 넘게 실질임금이 거의 높아지지 못했고, 이것이 ‘잃어버린 30년’ 불황의 중요한 요인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재정확장이 어느 정도 총수요를 확대할 수는 있을 터이다. 그러나 경기둔화를 막기 위해 매년 보정예산을 통해 경기부양책을 시행하는 양태는 ‘재정 중독’과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실제로 2018년부터 2025년 사이의 주요 지표를 보면, 임금과 민간소비는 제자리를 걷는 반면 재정지출과 물가지수는 크게 높아졌다. 그나마 올해 들어 인플레이션율이 1%대로 낮아지면서 실질임금을 높인 것은 다행이다.
물론 정부 주도의 공공투자와 민관협력을 통해 기업 투자를 촉진하려는 다카이치 정부의 시도는 의미심장하다. 아베노믹스 이후 기업들의 이윤 증가에도 투자는 지지부진했던 상황에 대한 성찰이 반영되어 있다. 이는 또한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후퇴하고 국가가 복귀하는 글로벌 경제질서의 흐름을 반영한다. 최근 일본 정부는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기업 거버넌스 코드 개정을 통해서도 주주의 이익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에 쌓인 이윤을 설비투자와 연구개발 지출로 돌리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러나 보호무역으로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큰 현실에서 기업들이 쉽사리 투자를 늘릴지는 두고 볼 일이다. 최악의 경우 정부의 기대와는 반대로 재정확장에 따른 인플레가 심화되는 반면 성장은 둔화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다카이치가 이끄는 일본 경제의 미래는 불확실성 속에서 그 전망을 두고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이강국 (리쓰메이칸 대학 경제학부 교수)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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