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적한 사회는 어떻게 우리를 옥죄는가 [독서일기]
구마시로 도루 지음 이정미 옮김
생각지도 펴냄

“병원이 병을 만든다(이반 일리치).” “계몽이 광인을 만든다(미셸 푸코).”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질병이 있다(한병철).” 세 사람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병은 존재(본질)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의 문제의식이 모든 질병에 적용될 리 없겠지만 시대·지역·성별·문화에 따라 병명과 처방이 달라지는 정신질환에는 딱 들어맞다. 이 플래시 몹에 〈쾌적한 사회의 불쾌함〉(생각지도, 2026)을 쓴 구마시로 도루가 가세했다. 2000년대부터 크게 늘어난 아동 발달장애 환자에 주목한 그는 21세기를 발달장애의 시대라고 부른다.
1975년생 정신과 의사가 보기에 도쿄 거리에서 마주치는 요즘 아이들은 대체로 예의가 바르다. 아이들은 교통 규칙을 잘 지키고, 위험한 장난을 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아니, 그 이상으로 규칙을 잘 따르고 행실이 바르다. 쇼와 시대(1926~1989)에는 백화점에서 아이를 찾는 방송이 자주 흘러나왔지만 요즘 쇼핑몰에서는 그런 소리를 들을 수 없다. 마트에서 과자를 사달라며 울던 아이들도 눈에 띄지 않는다. “이 아름다움은 풍경과 질서를 지켜준다. 하지만 아름다움이 사회적 압력으로 작용해 그곳에 사는 우리를 ‘질서 정연’과 ‘예의범절’이라는 틀에 밀어 넣고 있는 것은 아닐까?” 쾌적한 사회는 예전 같았으면 자연스럽게 보아 넘겼을 아이의 행동을 의료 처치가 필요한 발달장애로 낙인찍는다.
아이들에게조차 이토록 엄격하다면 성인에 대한 잣대는 말할 것도 없다.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에서 2000년대 후반부터는 ‘성인 발달장애’가 부각되기 시작했고, 사회적 인식도 빠르게 확산되었다. 성인 역시 일상과 직장에서 질서에 맞지 않으면 낙오하거나 보호 대상이 된다. 이런 현상은 인간의 역사가 부자유(가문·신분·공동체)로부터 자유를 획득한 과정과 무관하지 않다. 이전에는 누구라도 예외 없이 공동체와 결부돼 있던 인간이 자유를 얻고부터는 낱낱이 되어 저마다 자신의 시장가치를 높여야 하는 자기개발의 주체가 되었다. 발달장애 시대는 효율성과 생산성에 저해되는 규격에서 벗어난 사람에게 교정과 치료를 권한다. 이 책에 흥미를 더하는 것은 “지난 30년 사이 사회는 점점 더 도덕적이 되었다”라는 지은이의 주장이다.
정의를 칼처럼 휘두르는 사람들
안도 슌스케는 〈정의감 중독 사회〉(또다른우주, 2023)에서 구마시로 도루와 동일한 문제를 제기한다. “정의를 칼처럼 휘두르며 화내는 사람이 많다. 무슨 일을 하든 남들의 생각과 다르면 비난받을지 모른다는 염려 때문에 몸을 사리는 사람도 많아졌다. 공무원, 교사, 상담원처럼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하는 이들은 조금이라도 오해의 소지가 없게 중립적이고 무색무취한 언어와 처신에 익숙해지고 있다. 전 국민이 풍기 단속반이 되어 서로를 감시하며 나쁜 짓은 하지 않는지, 잘못한 일은 없는지 살피고 있다. 그리고 무언가 발견하면 여봐란듯이 몰려와 정의의 심판을 내리는 것이다.”
안도 슌스케는 불확실한 미래와 경기침체로 인한 불안한 현실이 정의감 중독 사회를 만든다고 한다. 불평등과 열등감이 평소보다 많아졌으니 원래라면 그다지 신경 쓰지 않을 일에도 필요 이상으로 큰 분노를 느끼게 된다. 지은이의 설명도 일리가 있지만 정의감 중독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을 다른 데서 찾을 수도 있다. 구마시로 도루에 따르면 무질서하고 규격화되지 않은 타자에 대한 관용 없는 감시가 이 사회를 정의감 중독에 빠뜨린다. 예의와 공손함을 뜻하는 “중립적이고 무색무취한 언어와 처신”에서 벗어나는 걸 단죄하는 것이다.
스마트폰과 SNS가 대중화된 후, 정의감 때문에 분노를 마구 표출하며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행위가 급증했다. 인터넷이 갖고 있는 경로의존성은 다양한 여론을 차단하고, 사람을 독단적으로 만든다. 해나 아렌트는 이렇게 말했다. “나치즘을 추종한 사람들의 주요 특성은 고립과 사회관계의 결여다. 사회에 자기 자리가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이데올로기에 개인적 자아를 투영함으로써 목적의식과 자긍심을 되찾으려 한다.” 이것이 정의감 중독 사회의 그늘이다.
홍선기의 〈최소 불행 사회〉(모티브, 2026)는 1991년 경제 거품이 꺼지고 불황이 시작된 일본 사회와 현재의 한국 사회를 비교한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은 곧 한국이 겪을 ‘잃어버릴 30년’의 가장 정교한 미리 보기다. 세계 최고령 국가, 본격적인 인구 감소, 빈부 격차, 지방 도시 소멸, 연금 문제, 성장 동력 상실. 지금 우리 발등에 떨어진 문제 대부분이 일본에서 먼저 나타났다. 한국과 일본 모두 압축성장이라는 공통의 고도 경제발전 모델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대기업 위주의 경직된 산업구조, 부동산과 부채에 크게 의존하는 경제 생태계는 결국 두 나라에 유사한 구조적 취약점을 가져왔다.”

지은이는 이 책의 제목을 2010년 일본 총리 하토야마 유키오가 취임하면서 발표한 ‘최소 불행사회 실현’이라는 국정 목표에서 가져왔다. 1990년 최고의 호황을 맞았던 일본은 국민에게 ‘최대 행복 사회’를 약속하자마자, 향후 ‘잃어버린 30년’이 될 불황의 늪에 빠져들었다. 20년 동안의 추락 끝에 신임 총리는 “(국가가) 더는 행복을 약속할 수 없으니 최악의 불행이라도 막자”라며 체념을 선포했다.
국가가 국민에게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보장은 못하고, 대신 ‘너희가 알아서 불행을 최소화하도록 노력해봐’라고 책임을 회피했다. 국민들은 세대와 세대, 지역과 지역, 계층과 계층 간의 연대를 통해 불행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고민하지 않고 각자도생을 택했다. 가정 내 이혼(이혼하는 데 돈이 들기 때문에 생긴 현상), 원조 교제(개인의 도덕적 타락으로 오해되고 있지만, 경제위기 속에서 가족과 국가 모두가 청소년을 방치한 시스템 붕괴), 싸구려 잡화점, 청빈(무소유) 또는 달관, 미니멀 라이프(소비 줄이기), 옴진리교(초자연현상에 미혹됨), 소확행, 힐링 열풍, 베란다 텃밭 가꾸기, 생존 배낭 챙기기, 솔로 캠프(홀로 떠나는 캠핑), 덕후 되기(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미치기), 귀여움 소비(모에 열풍) …. 구마시로 도루가 위태롭게 바라보는 발달장애 환자의 양산과 안도 슌스케의 정의감 중독 사회 역시 국가가 국민의 행복을 증진하는 능력을 잃었을 때 생겨나는 각자도생의 또 다른 양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에서 일어난 사회현상들이 10~15년의 시차를 두고 한국에서도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겐 일본이 갖지 못한 무기가 있다. ‘선례’라는 이름의 답안지다.”
장정일 (소설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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