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대한박물관’에 중국 당나라 도자기 전시?…민원 폭탄 정체불명 박물관 [세상&]

김도윤 2026. 4. 25.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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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 한옥마을 內 정체불명 박물관 논란
겉은 ‘대한박물관’, 내용은 中 문화 의심
주민 민원 늘자 서울시-구청 현장 실사
논란 커지면서 운영주체 경찰 고발당해
지난 20일 오후 5시께 서울시와 은평구청 관계자들이 서울 은평구 연서로 일대에 있는 ‘대한 박물관’ 현장 확인을 하고 있다. 김도윤 기자.

[헤럴드경제=김도윤 기자] “대한박물관이라고 했을 땐 전통 박물관이 들어오려나 보다 했어요. 무늬만 한국 박물관이고 내용은 중국박물관이란 얘기가 여기저기서 들려요.” (은평구 주민 A씨)

지난 20일 오후 북한산과 한옥마을이 어우러진 서울 은평구 연서로 일대에 오가던 주민들의 시선이 ‘코리아 뮤지엄(KOREA MUSEUM) 대한박물관’이라는 현판이 내걸린 건물로 집중됐다. 겉으로는 한국을 내세웠지만 정작 내부 전시물은 중국 역사에 관한 것들이고 운영 목적도 중국 역사 소개에 맞춰져 있다는 소문이 주민들 사이에서 퍼지고 있다.

4층 높이의 해당 건물은 개관을 앞두고 막바지 공사를 하고 있었다. 1층 주 출입문 앞엔 붉은 안전 차단 띠가 둘러쳐져 있고 내부엔 사다리와 박스, 공사 자재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건물 앞 대형 표지석엔 붉은색과 파란색 태극 문양 형태의 로고가 새겨져 있었다. 얼핏 보기엔 우리 민속 문화재를 전시하는 공간인 것처럼 보였다. 창으로 내부를 들여다보니 황갈색 계열의 말 조형물도 보였다.

은평구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이 시설이 뜨거운 감자다. 중국 하나라(중국 고대왕조로 알려진 국가)부터 춘추전국시대, 청나라까지 시대별 유물을 소개한다는 안내문을 찍은 사진도 게재됐다. 항목마다 청동기, 도자기, 옥기, 석기, 병마용 등 전시 예정 유물 종류를 소개하고 하단에는 ‘한국, 일본 및 세계 각지의 예술품도 일부 전시됩니다’라는 문구도 포함돼 있다.

기자가 이곳을 찾았을 때는 문제의 안내판이 철거된 상태였다.

커뮤니티에선 “중국인들이 폐업된 빈 건물을 사서 대한박물관이란 상호를 붙여 중국 상고시대 예술품을 전시하는 것 같다”, “서울시에서 만든 박물관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어떤 시설로 구청 허가를 받은 것인가?” 같은 반응들이 올라왔다.

은평구 주민들이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글엔 은평한옥마을에 새로 생긴 박물관 정체가 궁금하다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은평구청에서도 민원을 접수해 지난 17일과 20일 두 차례 시찰을 나갔다. 박물관 정문에 ‘중국 시대별 도자기 예술품이 전시된다’는 내용의 안내문이 붙어있다. [은평구청 제공]

‘뭐하는 곳이냐’ 주민 민원…행정당국 예의주시

은평구청에 따르면 지난 20일 기준 관련 민원 7건이 접수됐다. 주민들은 ‘대한박물관’이라는 이름과 달리 중국 유물 전시가 주를 이루는 것 아니냐며 정체성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시에도 비슷한 취지의 민원이 10건 정도 접수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구청과 시 관계자들이 현장 실사를 벌이기도 했다. 현장에서 기자를 만난 한 관계자는 “당장 제재는 어렵지만 운영 실태를 자세히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해당 건물은 현재 ‘제2종 근린생활시설’로 분류돼 있다. 주택가 인근에서 주민 생활 편의를 위해 설치되는 시설 용도로, 서점·학원·일반음식점·사무소 등이 여기 해당한다. 반면 박물관·미술관·과학관 등은 일반적으로 ‘문화 및 집회시설(전시장)’로 분류된다.

문성호 서울시의원은 지난 23일 이 시설의 운영 주체를 서울경찰청에 고발했다. 건축법상 무단 용도변경,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위반,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위반 혐의가 있다고 봤다.

시와 구청은 박물관 관계자에게 여러 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반응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은평구는 “미등록 사설 박물관인 해당 시설이 개관하는 즉시 현장 확인을 실시하고 박물관·전시관 용도로 사용이 확인될 경우 건축법 및 지구단위계획에 따른 시정명령 등 행정 절차를 신속히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서울 은평구 연서로에 들어서는 대한박물관 표지석. 김도윤 기자.

구청 관계자는 “현재는 개관 전 단계인 만큼 운영 실태와 법적 요건 충족 여부를 계속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15년째 서울 은평구 진관동에 거주 중인 한윤희(69) 씨는 “박물관 자리가 원래 인심 좋은 빵집 사장님이 있던 자리였는데 아프셔서 문을 닫고 세를 논 것으로 안다”며 “박물관이 들어온다고 해 좋아했는데 막상 가보니 민속적인 느낌은 안 들고 무늬만 한국박물관이고 중국박물관 같다는 느낌이 들어 속상하다”고 말했다.

은평 한옥 마을에 거주 중인 구모(67) 씨는 “박물관 주인이 중국에서 온 사업가인데 경매 사업을 한다고 들었다”며 “어떤 성격의 박물관인지 박물관이 맞긴 한 건지 너무 궁금하다”며 “지금은 소문만 무성한데 외국인 관광객들이 봤을 땐 한국 문화유산을 알리는 문화공간처럼 느낄 것 같다”고 말했다.

“외국인들에게 잘못된 정보 전달될 수 있어”

전문가들은 ‘박물관’이라는 명칭이 단순한 상호 수준으로 가볍게 사용돼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박물관은 특정 국가와 지역의 역사·문화·정체성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공적 성격의 공간. 왜곡된 정보나 상업적 목적이 앞설 경우 사회적 혼란을 키울 수 있다는 취지다.

서울의 한 공립박물관 관장은 “박물관은 단순 전시장이 아니라 역사와 문화에 대한 공신력을 전제로 하는 공간”이라며 “국가 정체성이나 민족 고유의 역사 인식을 훼손하는 내용이 담긴다면 문제의식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지역에서 잘못된 정보가 전달될 경우 한국에 대한 왜곡된 인식으로 이어질 수 있어 우려스럽다”고 했다.

사립박물관 제도 역시 일정 요건을 갖춰야 한다는 설명도 나왔다.

서울의 한 공립박물관 관계자는 “사립박물관은 유물 100점 이상, 수장고·연구실 등 시설을 갖춘 뒤 지자체 심사를 거쳐 등록할 수 있다”며 “등록 시 관리·감독받는 대신 정부 지원 신청 자격이 주어진다”고 설명했다. 다만 현행법상 등록은 의무가 아닌 선택사항이다. 등록하지 않은 채 박물관 명칭을 사용하는 경우 행정 대응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편미정 은평한옥마을 공동체 대표는 “개인의 사유지에서 운영되는 공간인 만큼 운영 방식 자체를 단정적으로 말하긴 어렵다”면서도 “은평한옥마을은 북한산과 진관사, 한옥 경관, 기존 문화시설이 어우러져 형성된 지역인 만큼 마을의 역사성과 정체성에 맞는 공간이 들어서길 바라는 주민들이 많다”고 말했다.

지난 20일 오후 2시께 은평 한옥마을 일대에는 한옥마을과 북한산을 구경하기 위해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김도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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