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돌진' 열차에 669명 사상…"늦으면 망신" 압박에 초보 기관사 탈선[뉴스속오늘]
[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A씨는 제한 속도 시속 70㎞인 급커브 구간에서도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시속 125㎞까지 속도를 높이던 그는 뒤늦게 브레이크를 가동했으나, 열차는 이미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선로 바깥쪽으로 기운 상태였다. 결국 선로를 벗어난 열차는 시속 116㎞ 속도로 약 5m 거리 맨션아파트를 들이받았다.
열차 7량 중 5량이 탈선한 가운데 아파트와 직접 부딪힌 맨 앞 2량의 피해가 컸다. 1층 주차장으로 돌진한 1호차는 건물 깊숙이 처박혀 완파됐고, 2호차는 잭나이프 현상 탓에 옆면이 건물 벽에 부딪혀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잭나이프 현상은 열차 충돌 시 관성에 의해 뒤 객차가 V자 형태로 꺾이는 걸 말한다. 희생자 107명 중 99명이 1·2호차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기관사 A씨도 현장에서 숨졌다. 살아남은 열차 차장은 주변 열차에 '비상 정지' 신호를 보내려 했으나 사고 충격으로 전력 공급 장치가 끊긴 상태였다. 곡선 선로에서 사고가 난 탓에 근접하지 않고는 육안으로 사고를 확인할 수도 없었던 상황, 반대편 선로엔 이미 특급열차가 들어서고 있었다.
그러나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는 사고 배경에 오버런 등 과오를 범한 기관사에 대한 징벌성 일근 교육, 타사와의 경쟁과 수익 중심의 열차 운행 일정 등 효율만을 중시해 온 JR서일본의 고압적인 조직문화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앞서 1987년 옛 국철이 민영화되면서 적자 노선을 떠안게 된 JR서일본은 영업 실적을 위해 '출근 시간대 2분에 1대'라는 살인적인 열차 시간표를 편성했다. JR서일본은 빠른 속도와 정확한 도착 시각을 강점으로 내세우며 이를 지키기 위해 기관사들에게 막대한 압박감과 책임감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JR서일본은 실수한 기관사에게 징벌적 재교육, 일명 '일근 교육'을 일삼았다. 이 재교육의 목적은 사실상 망신 주기였다. 근무조에서 배제된 기관사는 면담에서 상사에게 온갖 모욕·비하 발언을 들어야 했고 승객들 앞에서 선로에 묻은 조류 배설물을 닦아내거나 막대한 분량의 사규를 깜지에 옮겨 써야 했다.
A씨 역시 입사 초기 일근 교육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일근 교육이 두려웠던 A씨가 사고 당일 도착 시각을 맞추기 위해 무리한 가속을 감행했고 탈선 위기의 급박한 상황에서도 지연 시간 회복에 미련을 놓지 못해 제동 타이밍을 놓치면서 결국 참사로 이어지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족들은 JR서일본의 안전관리 체제에 대한 제3자 평가를 요구하기도 했다. 그 결과 노르웨이에 본사를 둔 외국계 기업이 법령 및 안전방침 준수 여부 등 평가를 통해 JR서일본 내부 감사에 문제가 없었는지를 검증하기로 했다.
사고 이후 JR서일본은 '효율' 중심이었던 경영방침을 '안전' 중심으로 바꿨다. 사고 노선뿐 아니라 모든 노선의 열차 운행 시간을 조정해 기관사들이 한결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됐고, 신입 기관사의 경우 입사 3·6개월, 1·2년 등 간격으로 업무 역량과 심리적 불안요소 등을 체크하는 시스템도 도입했다.
열차가 충돌한 아파트는 철거됐지만 일부는 추모 공간으로 만들어졌다. JR서일본은 매년 사고 시각에 맞춰 이곳에서 희생자를 추모하는 위령식을 열고 있다.
김소영 기자 ks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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