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당이냐 월급이냐…반도체가 다시 부른 ‘100년 논쟁’

헨리 포드. 미국 포드(Ford)사 창립자죠.
'자동차의 왕'으로 불렸을 정도니, 업적이 한둘이겠습니까만, 1914년 파격 선언은 그중에서도 손꼽힙니다.
"직원 월급을 두 배로 올리겠다."
하루 임금을 2.3달러에서 5달러로 올립니다. 근무 시간은 9시간에서 8시간으로 줄입니다. 직원 입장에선 속칭 '개꿀', 반대로 동료 자본가들에겐 '뻘짓'이었겠죠.
"포드는 미쳤다."
월가는 포드를 맹비난합니다. 사회주의적 발상이라고 몰아붙입니다.
누가 옳았을까요. 역사의 평가는 비교적 분명합니다.

임금 인상은 중산층을 만들었고, 이들은 당시 '국민차'였던 모델T를 샀고, 포드사 매출은 급성장합니다. 역사는 '선순환'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는…사실 잘 알려진 대목인데요.
오늘은 그 이후 뒷얘기입니다. 2026년 한국에, 헨리 포드를 소환하는 이유도 여기서 출발합니다.
■ 닷지 대 포드, 100년짜리 판결
닷지(Dodge). 낯선 분도 적지 않겠지만, 꽤 유명한 미국 자동차 브랜드입니다. 고출력 고성능, 일명 '머슬카'의 대명사입니다.

포드보다 3년 빠른 1900년, 닷지는 자동차 부품 회사로 먼저 문을 엽니다. 설립 초기 두 회사는 긴밀했습니다. 동시에 독한 악연이었습니다.
닷지를 창업한 닷지 형제가 포드의 2대 주주였는데요. 포드가 직원 월급을 두 배 올리자 닷지 형제는 '뚜껑'이 열립니다. 그럴 돈이 있으면 주주 배당부터 늘리라고 소송을 겁니다.
그렇게 시작된 닷지 대 포드(Dodge vs. Ford Motor Company) 재판.
"자동차 가격을 낮춰, 더 많은 미국민이 자동차를 타도록 하겠다.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노동자들이 자동차를 살 수 있게 하겠다."
포드는 회사 이익보다는 매출과 고용이 더 중요하다는 입장을 폅니다.
닷지는 "주식회사의 본질은 주주의 이익 극대화"라고 맞섭니다. 포드식 경영은 자본주의 근간을 흔든다고 비판합니다.
자, 당신은 어느 쪽에 더 끌리시나요? 누구 손을 들어주시겠습니까?
1919년, 미시간 대법원은 닷지의 손을 듭니다.
"회사는 주주의 이익을 위해 운영돼야 한다"는 취지로 판결합니다. 주주 중심 경영의 대표적 판례가 됩니다.
이를 계기로 '주식회사의 주인은 주주'란 원칙은 더 단단해집니다. 그야말로 100년짜리 판결이었습니다.
■ 2026년 한국, 배당이냐 성과급이냐
지난해 1차 상법 개정 당시,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가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재계는 반대했지만, 상법은 바뀌었습니다.
이사는 주주에게 충실하라고 굳이, 입 아프게, 명시한 이유가 뭐겠습니까. 그만큼 '회사의 주인은 주주'라는 법리는 현행법상 명확합니다.
이 논리를 좀 더 넓혀볼까요. 회사가 할 일은 자명합니다. 주주부터 챙기는 겁니다.
마치 '의심스러울 땐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사가 판결하듯, '애매할 땐 주주의 이익으로' 회사는 결정하면 됩니다.
그런데…
'초호황' 반도체 투톱에서 전에 없던 일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반도체 슈퍼 사이클로 역대급 돈을 벌었고, 그 천문학적 이익을 어떻게 나눌 지가 현안이 됩니다.
[연관 기사] 성과급이 배당 추월…‘회사 주인 누구냐’ 불붙다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544332
도화선은 SK하이닉스였습니다. 지난해 9월, 하이닉스 노사는 이렇게 합의합니다.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으로 주고, 액수 상한도 없앤다. 이 원칙을 10년간 유지한다.'
파격이었습니다.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고정적으로, 상한액도 없이, 그것도 현금으로 전 직원에게 보상하는 정책은 성과급의 원조 격인 미국에서도 드뭅니다.
미국 빅테크들도 성과급 액수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지만, 주로 주식으로 지급합니다. 잘한 직원과 못한 직원의 격차도 상당합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으로 47조여 원을 벌었습니다.
노사가 합의한 산식에 대입하면, 성과급 총액은 약 4조 7천억 원. 하이닉스 직원 3만 4천여 명이 차차 나눠 받습니다. 직원 개개인의 성과 평가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직원 1인당 평균 1억 3천~4천만 원꼴입니다.
하이닉스는 주주 환원에도 적극적이었습니다. 현금 배당 총액은 2조 천억 원. 배당받을 개인주주는 118만여 명(2025년 말 기준, 기관 등 대형 주주 제외) 입니다.
성과 보상도 파격, 주주 배당도 파격. 문제는 격차였습니다.
내 잔이 찼느냐도 중요하지만, 옆 사람 잔이 더 큰 지도 중요합니다. 고약한 본능이지만, 누구도 자유롭지 않습니다.
1인당 액수든 총액이든 성과급이 배당을 추월했습니다. '직원이 주주보다 우선이냐'는 반발이 첫발을 뗍니다.
물론, 배당과 성과급을 1:1로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습니다.
주주는 배당 말고도 돈 벌 통로가 더 있거든요. SK하이닉스 주가가 무섭게 우상향하면서 많은 주주가 큰 시세차익(혹은 평가차익)을 거뒀을 겁니다. 회사가 12조 4천억여 원어치 자사주를 소각한 호재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왜? 주주들은 화가 났을까요.

삼성전자 노조는 여기에 더 불을 붙입니다.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으로, 상한도 없애달라'고 요구합니다. 사측이 거부하자, 5월 21일부터 18일 간 파업을 예고했습니다. 실현된다면 창사 이래 최장 파업입니다.
현대차 노조도 '순이익의 30%를 성과급으로 달라'고 사측에 요구했습니다.
[연관 기사] ‘4만 명 집결’ 삼성전자 총파업 초읽기, 반도체 멈추나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544331
■ "주주가 전부가 아냐" 100년 만의 반기
이쯤 되면 좀 이상할 수 있습니다. 회사의 주인은 주주인데, 뭘 고민하지? 당연히 주주를 더 챙겨야지?
닷지 대 포드 판결 이후 꼭 100년 만인 2019년, 정반대의 깃발이 나타납니다.
"모두가 기업의 주인이다."
미국 주요 대기업 CEO 180여 명이 모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BRT). '주주 우선주의' 원칙은 시효가 다했다고 공식 선언합니다.
"기업의 목적은 주주 가치 극대화에만 있지 않다. 고객, 직원, 공급업체, 지역사회, 그리고 주주까지 모든 이해관계자의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주주가 안 중요하다는 게 아니라, 주주만 중요한 게 아니라는 선언. 주주 자본주의 본산에 가까운 미국에서, 애플·아마존 등 자본주의 최첨단의 회사가 대거 동참했다는 점에서 파장이 컸습니다.
100년 전 "배당 주느니 월급을 더 주겠다"고 나섰다 무참히 깨진 헨리 포드의 신념이 복권된 순간이었습니다.
■ 반도체가 소환한 '100년 논쟁'
구구단도 안 뗐는데, 미적분을 풀어야 한다면 어떨까요. 난감하겠죠.
혹은 기초공사도 안 끝났는데, 옥상부터 올리는 상황이라면 어떻습니까. 정말 머리가 아프겠죠.
지금 한국의 자본시장이 딱 그렇습니다.
엄밀히 말해, 한국은 주주 중심의 경영을 제대로 해 본 역사가 일천합니다. 주주 이익 침해 사례는 모래알처럼 수두룩합니다.
그런데 주주 이외의 당사자들도 공정하게 챙겨야 한다는 요구까지 거세지고 있습니다.
주주 자본주의도 다 못 뗐는데,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까지 벼락치기를 해야 할 판입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하려면 합당한 주주 환원은 필수입니다. 닷지 대 포드, 100년 전 판결조차 우리는 아직 다 이행 못 했습니다.
동시에 핵심 인재를 실리콘밸리에 안 뺏기려면, 투명한 성과 보상도 필요합니다. 핵심 인재를 놓치면 실적이 무너지는 게 반도체 산업입니다. 그렇다고 주주 희생을 강요하는 성과 보상은 지속하기 어렵습니다.
돈 먹는 하마인 반도체 산업 특성도 살펴야 합니다. '팹'이라고 부르는 최신 반도체 공장, 라인 1개에 보통 30조~50조 원 정도입니다. 벌어둔 돈도 많지만, 투자할 돈도 천문학적인 게 분명합니다.
결국, 질문은 하나로 모입니다.
회사가 번 돈은 누구의 몫일까요. 어떻게 나눠야 공정할까요. '황금 비율'은 있을까요.
2026년 봄, 반도체 초호황이 던진 이 질문은 한국 자본주의가 더 성숙하기 위해 꼭 넘어야 할 문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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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범 기자 (jbki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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