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살맞은 비틀기, 능청스런 외설”… 역사 극화 붐 일으킨 만화가 고우영
2005년 4월 25일 67세

1955년 고교생 고우영(1938~2005)은 추동성이란 필명으로 만화계에 데뷔했다. 다니던 학교 동성고에서 필명을 땄다. 요절한 둘째 형 고일영이 추동식이란 필명으로 그린 만화 ‘짱구박사’를 이어 그리며 인기를 끌었다.
1972년부터 스포츠신문에 연재하며 선보인 ‘사극 시리즈’는 고우영 신드롬을 일으켰다. ‘임꺽정’을 시작으로 ‘수호지’ ‘삼국지’ ‘초한지’ 등으로 이어졌다.

“성인 독자를 겨냥한 색다른 형식의 만화가 최근 새로운 대중 오락 수단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이 극화는 작년 말 ‘고우영 수호지’로 첫선을 보인 후 이미 6종의 극화 시리즈가 시판되고 있으며 그중 인기가 높은 것은 10만 부를 돌파하는 등 전례 없는 극화 붐을 일으키고 있다.”(1974년 5월 21일 자 5면)
당시 신문 광고는 고우영 극화를 일본 만화와 비교하며 자부심 넘치는 어조로 차별점을 서술했다.

“고우영 극화 문학은 일본 극화의 상투 수법인 섹스와 서스펜스를 최대의 적으로 삼고 있습니다. 독자들은 극화 ‘수호지’에서 고대 중국 문학이 비장한 깊은 휴매니티를, 극화 ‘임꺽정’에서 이조 사회사의 의미 있는 단면을 발견하면서 또 한 번 하이브로우 작가 정신과 그것을 표현한 작가의 사회적 사실주의 터치에 감동하게 됩니다.”(1974년 3월 27일 자 1면 광고)
고우영 역사 극화는 18년간 이어졌다. 고우영은 훗날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18년을 연재하면서 소재를 얻기 위한 노력은 24시간도 모자랐을 정도였다”면서 당시 일화를 회고했다.

“다른 작품은 자료라도 풍부했지만 77년 1년 동안 시작한 ‘일지매’는 아무리 사료를 뒤져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구전으로 전해지던 몇몇 얘기가 전부였지만 일지매는 내 스스로 얘기를 꾸며가며 1년을 연재했다. 또 ‘삼국지’ 연재 시절도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가 있다. 보통 신문 만화는 이틀 전에 원고를 보내는 게 일반적. 79년 10월 24일,모사 방통의 죽음을 봉황이 떨어지는 장면으로 그려 보냈다. 그리고 만화가 게재된 26일 오후 박 대통령 서거 소식을 들었다. 그려 보내면서도 “봉황은 대통령을 상징하는데…” 하고 찜찜했는데,정작 일이 생겨버린 것이었다.”(1999년 11월 24일 자 23면)

고우영은 원전에 등장하는 인물을 비틀고 각색해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했다. ‘삼국지’ 유비는 어리숙한 인물로 새롭게 해석했다. 원전 ‘수호지’에선 존재감 없던 인물 무대를 못났지만 진심을 다하는 인물로 그렸다.
“익살맞은 비틀기, 걸쭉한 입담, 능청스런 외설. 그의 재주는 만물상 같은 고전 속 인간 군상들을 독특하게 각색해내는 인물 해석에서 특히 빛났다. ‘수호지’의 무대(武大)는 한국 만화에서 가장 빼어난 캐릭터로 꼽힌다. 리본으로 묶은 머리, 삐져나온 앞니에 단춧구멍만 한 눈을 하고서 요부 반금련과 어울리지 않는 커플을 이뤘다. 냉대받으면서도 선의와 진심을 잃지 않는 무대는 ‘반(反)영웅’으로 떠올라 대학마다 팬클럽이 결성될 정도였다.”(2005년 4월 27일 자 A30면)

2002년 갑작스럽게 대장암 진단을 받았다. 스포츠와 여행을 즐기면서 건강을 자신하던 게 화근이었다.
““미국에 사는 아들을 만나려고 출국하기 며칠 전, 저녁에 생선회를 먹은 뒤 심한 복통이 왔어요. 화장실에서 혈변이 나오는 것을 보고, 여름에 회를 잘못 먹어 생긴 출혈성 대장염이구나 싶었죠.” (…) 암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그는 의사에게 “악성 종양이우?”라고 농담까지 건넸다. 당연히 “아뇨”라는 대답을 기대하면서. 하지만 의사는 “예, 뭐 하나 있는데요”라고 답했다.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2003년 9월 17일 자 D2면)

대장암 발병 이후에도 일을 멈추지 않았다. ‘삼국지’ 무삭제 완전판을 내고 ‘수호지’ 완간에 몰두했다. 타계 1년 전에는 한자 학습 만화도 냈다.
“사실 착수한 건 3년 전인데, 암이란 놈하고 싸우느라 많이 늦어졌지요. 그래도 작업하다 잠깐 누워 쉬고, 또 일어나선 그려댔어요.”(2004년 5월 6일 자 A26면)
고우영은 1992년 ‘나의 활력’이라는 조선일보 기고 글에서 “펜대 하나만으로 깨작거리는 직업이지만 그것이 엄청난 체력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안다. 기력이 없으면 두뇌 회전도 멈춰버리고 그림도 그려지지를 않는다. 그런 증세가 예고되면 나는 여행을 나선다”(1992년 10월 6일 자 23면)고 했다.

하늘로 떠난 여행도 활력을 되찾기 위한 길이었을 것이다. 2005년 4월 25일 별세 후 불과 4년 만에 16종 50권이 다시 복간됐다. 2009년 ‘고우영 일지매’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가 방영됐다. 2012년 부천 만화박물관은 ‘고우영 기념관’을 꾸몄다. 2021년 아들 고성언씨는 ‘고우영 삼국지’ 올 컬러 완전판을 냈다. 20주기인 2025년 ‘고우영 서유기’도 복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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