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도구로 길러진 여성, 악랄한 가짜 예언자… 허구와 현실의 지옥도 [정주행의 이유]

강유빈 2026. 4. 25.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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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과 통제에 맞선 여성들의 이야기
디즈니플러스 시리즈 '증언들'
넷플릭스 다큐 '나를 믿으라: 가짜 예언자'
편집자주
매주 뭐 볼까 고민하다 지친 당신에게 한국일보 대중문화팀 기자가 정주행을 부르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를 소개합니다.
디즈니플러스 시리즈 '증언들'의 주인공 애그니스(체이스 인피니티)는 전체주의 국가 길리어드에서 예비 신부로서 순종적인 삶을 강요받으며 자란다.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캐나다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가 구축한 디스토피아의 정점, ‘길리어드’의 서늘한 풍경을 담은 드라마가 다시 돌아왔다. 가상의 전체주의 국가인 이곳에서 여성은 모든 재산과 권리를 빼앗기고 출산을 위한 도구로 취급된다. 더 끔찍한 건 지옥 같은 길리어드가 누군가에겐 현실과 다를 바 없었다는 점이다. 디즈니플러스 픽션 시리즈 ‘증언들(The Testaments)’과 넷플릭스 논픽션 다큐멘터리 ‘나를 믿으라: 가짜 예언자(Trust Me: The False Prophet)’를 통해 여성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통제 시스템과 균열의 과정을 들여다봤다.


빼앗긴 줄도 모르던 소녀들의 각성

길리어드 세계관을 배경으로 한 '증언들'에서 리디아 이모의 학교에 다니는 소녀 '플럼'들이 애그니스의 초경을 축하하고 있다.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8일부터 디즈니플러스에서 공개 중인 드라마 ‘증언들’은 엘리자베스 모스 주연의 드라마 ‘핸드메이즈 테일’(2017~2025)의 결말로부터 4년 후 이야기를 다룬 스핀오프다. 두 작품 모두 애트우드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데, 2019년 출간된 소설 ‘증언들’은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부커상 공동 수상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드라마 핸드메이즈 테일 역시 수상 이력이 화려하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작품 최초로 받은 최우수작품상을 포함해 에미상 15관왕을 휩쓸며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길리어드 세계관의 여성들은 지배계급인 사령관의 아내, 임신이 불가능한 아내들을 대신해 출산만 하는 시녀, 사령관의 딸과 시녀를 교육·감시하는 이모(아주머니), 허드렛일을 도맡는 하녀 등 네 계급으로 살아간다. 옷의 색과 모양도 계급에 따라 다르다. 전편이 체제 전복과 함께 모든 것을 잃은 성인 여성의 고통과 저항, 생존에 초점을 맞췄다면, ‘증언들’은 체제 안에서 내가 무엇을 잃었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자라난 소녀들의 각성에 주목한다. 특정 신념이 절대적이라고 교육받으며 세뇌된 사람들이 서서히 진실을 마주할 때 밀려오는 혼란, 두려움, 수치심, 해방의 여정이 화면 위로 펼쳐진다.

디즈니플러스 시리즈 '증언들'의 주인공 애그니스(왼쪽·체이스 인피니티)와 데이지(루시 할리데이).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주인공은 두 10대 소녀 애그니스(체이스 인피니티)와 데이지(루시 할리데이)다. 최고위 사령관의 수양딸로 길러진 애그니스는 리디아 이모의 학교에서 자신보다 나이가 두 배 이상 많은 고위급 사령관의 아내가 되기 위한 신부 수업을 받는다. 여자아이이기 때문에 달력을 가질 수 없고, 글도 읽고 쓸 수 없다. 그저 월경이 시작하는 날만 기다리며 수예나 차 따르기 등을 연마한다. ‘진주 소녀’(개종한 이방 소녀를 뜻하는 말)를 가장해 학교에 들어온 데이지는 사실 저항단체의 스파이다. 데이지는 체제에 저항하는 사람을 죽여 매달거나 끔찍하게 고문하는 길리어드의 참상을 목격하며 깊은 충격과 혐오감을 느낀다.

애그니스가 데이지의 학교생활을 안내하는 역할을 맡게 되며 두 소녀는 점점 가까워진다. 동시에 애그니스는 자신이 알고 있는 유일한 삶의 방식인 길리어드 체제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회차와 시즌을 거듭할수록 소녀들의 깨어남과 연대, 체제에 대한 저항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핸드메이즈 테일’에 이어 ‘증언들’의 각본을 맡은 쇼러너 브루스 밀러는 이같이 예고했다. “길리어드는 길리어드를 무너뜨릴 수 있는 여성들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들은 친구가 되고 자신만의 도덕적 기준을 갖는 등 길리어드가 금지한 모든 것을 해냈죠. 애그니스는 길리어드를 완전히 짓밟아 버릴 겁니다.”

증언들
장르: 드라마, 미스터리 스릴러
제작: 브루스 밀러
출연: 체이스 인피니티, 루시 할리데이 등
구성: 10부작
로튼토마토 지수: 88%

부부의 잠입 취재가 무너뜨린 현실판 길리어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를 믿으라: 가짜 예언자'에서 FLDS의 가짜 예언자 새뮤얼 베이트먼에게 접근해 그의 통제 아래 살아가는 여성들을 구하려 애쓰는 사이비종교 전문가 크리스틴 마리. 넷플릭스 제공

길리어드가 가상의 지옥이라면 4부작 다큐멘터리 ‘나를 믿으라: 가짜 예언자’는 현실의 지옥도를 보여준다. 다큐멘터리는 미성년자를 유인해 성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징역 50년형을 선고받은 미국의 일부다처 사이비종교 ‘FLDS(The Fundamentalist Church of Latter Day Saints)’ 분파 지도자, 새뮤얼 베이트먼의 검거 과정을 따라간다. 기존 지도자인 워런 제프스가 유사한 범죄로 종신형을 받고 사라지자 스스로 그를 계승한 예언자라 주장하며 유타주의 작은 공동체 쇼트 크리크 안에서 세를 모아온 인물이다.

‘나를 믿으라’는 사이비종교 전문가인 크리스틴 마리와 그의 남편 톨가 카타스가 쇼트 크리크로 이주한 뒤 베이트먼 주변에 잠입해 촬영한 영상 위주로 구성돼 있다. 다큐 속 다큐 형식인 셈. 베이트먼은 부부의 다큐멘터리가 자신의 메시지를 전 세계에 홍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믿고 촬영에 적극 협조했지만, 가까이서 그의 범죄를 보고 듣게 된 부부는 조용히 영상과 증언을 모아 미 연방수사국(FBI)에 건넸고 수사의 핵심 증거로 활용됐다. 사이비종교, 성 착취 등 자극적인 소재를 다룰 때 흔히 동반되는 선정적인 연출은 하나도 없다. 부부의 첩보 활동을 보는 것만으로 손에 땀을 쥐게 된다.

가짜 예언자 행세를 하며 미성년자를 포함한 스무 명의 아내를 착취한 새뮤얼 베이트먼. 넷플릭스 제공

베이트먼은 스무 명의 아내를 거느리고 다녔다. 일부다처제를 인정하는 FLDS 신도들조차 경악게 하는 규모로, 그중 상당수는 미성년자였다. 남성 추종자들은 재산은 물론 사촌과 딸, 아내들까지 베이트먼에게 바쳐 충성심을 증명하려 했는데, 피해자 중에는 아홉 살 남짓의 어린아이도 많았다. 베이트먼은 이들을 외부인은 물론 가족들과도 단절시킨 뒤 좁은 집에 몰아넣고 불복종을 영적 죄악으로 규정하며 끊임없이 억압했다. 노동 착취, 성 착취도 일상이었다. 극심한 세뇌 속 안전을 위협받는 아내들은 베이트먼이 예언자이자 천국으로 가는 유일한 관문이라고 굳게 믿을 수밖에 없었다.

베이트먼 집단의 신뢰를 얻은 크리스틴과 톨가는 그 신뢰를 배신함으로써 아내들을 구해낸다.피해 여성들도 용기 내 연대함으로써 베이트먼의 몰락을 견인했다. 남편의 강요로 딸들을 베이트먼에게 보내야 했던 엄마 줄리아는 비밀리에 크리스틴과 접촉해 범죄 목격담을 전했고 베이트먼의 공범인 남편의 자백을 이끌었다. 한때 베이트먼의 가장 헌신적인 아내였던 나오미와 미성년 피해자들은 법정에서 베이트먼의 유죄를 한목소리로 증언했다. “베이트먼의 옆을 지키던 그 소녀(자신)가 제3자처럼 보인다. 그건 완전한 공포였다”는 게 나오미의 고백이다. 미국의 가장 폐쇄적이고 폭력적인 공동체, 현실판 길리어드는 그렇게 법의 심판을 받았다.

나를 믿으라: 가짜 예언자
장르: 범죄 다큐멘터리
감독: 레이첼 드레친
출연: 크리스틴 마리, 톨가 카타스 등
구성: 4부작
로튼토마토 지수: 100%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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