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대만)’ 네 글자 속 한국 외교의 딜레마[4강의 시선]

2026. 4. 25.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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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치는 국제 상황에서 민감도가 높아진 한반도 주변 4개국의 외교, 안보 전략과 우리의 현명한 대응을 점검합니다.

그러나 국익이 하나가 아닐 때 즉 중국과의 관계도 관리해야 하고 대만과의 협력도 포기할 수 없을 때, 한국 외교는 어떤 선택을 하는가.

미중 전략 경쟁이 격화되고 대만해협의 긴장이 고조될수록, 중국은 한국에 더 선명한 선택을 요구하게 된다.

'중국(대만)' 네 글자를 둘러싼 소란이 실은 한국 외교 전략의 근본적 딜레마를 압축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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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편집자주
요동치는 국제 상황에서 민감도가 높아진 한반도 주변 4개국의 외교, 안보 전략과 우리의 현명한 대응을 점검합니다.
상황만 악화시킨 '항목 삭제'
전술이 반복되면 신뢰만 훼손
외교전략부터 재설계할 필요
게티이미지뱅크

칸트는 말했다. 도덕적 행위란 결과가 아닌 원칙에서 나온다고. 외교에서 원칙이란 대체로 국익이다. 그러나 국익이 하나가 아닐 때 즉 중국과의 관계도 관리해야 하고 대만과의 협력도 포기할 수 없을 때, 한국 외교는 어떤 선택을 하는가. 전자입국신고서의 한 줄짜리 표기 논란은 그 질문을 정면으로 던지고 있다.

사건의 시작은 단순했다. 지난해 2월 도입된 한국의 전자입국신고서가 '직전 출발지'와 '다음 목적지' 항목에서 대만을 '중국(대만)'으로 표기했다. 대만 정부는 즉각 반발했고, 라이칭더 총통까지 나서 한국에 시정을 촉구했다. 대만 외교부 정무차관은 "한국은 대만에 대규모 무역 흑자를 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비우호적 조처를 하는 것은 좋은 움직임이 아니다"라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경제적 압박을 외교적 언어로 포장한 것이었다.

한국 정부의 해법은 영리했지만, 그 영리함이 오히려 문제의 본질을 드러냈다. 입국신고서의 표기를 '대만'으로 바꾸지도 않고, '중국(대만)'을 유지하지도 않았다. 대신 해당 항목 자체를 통째로 삭제했다. 정부는 이를 "방문객 편의 증진을 위한 행정적·기술적 조치"라고 설명했다. 중국도, 대만도 어느 쪽도 정면으로 자극하지 않겠다는 계산이었다.

외교가에서는 이를 두고 "모두를 달래려다 아무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전형적인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중국은 곧바로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적절히 처리하라"고 요구했고, 왕이 외교부장의 방한 일정도 당초 1분기 목표에서 소리 없이 밀렸다. 왕이 부장은 한국 대신 평양을 먼저 찾았다. 한국 외교부는 "대만 표기 삭제와 방한 지연은 무관하다"고 해명했지만, 단순한 우연으로 치부하기에는 시점이 공교로웠다.

외교에서 부인은 때로 인정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이번 사안의 핵심은 표기 문제가 아니다. 행정 실수 하나가 중국과 대만 양쪽으로부터 동시에 압박을 받는 구조적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노출시켰다는 점이다. 한국은 중국과 수교하면서 '하나의 중국' 입장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동시에 대만과는 비공식 실질 협력 관계를 유지하며 반도체 공급망과 무역에서 긴밀히 얽혀 있다. 이 두 관계는 본질적으로 긴장 상태에 있다. 그 긴장을 전략적 모호성으로 관리해온 것이 한국 외교의 오랜 방식이었다.

문제는 그 모호성의 공간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중 전략 경쟁이 격화되고 대만해협의 긴장이 고조될수록, 중국은 한국에 더 선명한 선택을 요구하게 된다. 사드 보복이 그랬고, 이번 전자입국신고서 논란이 그 연장선에 있다. '중국(대만)' 네 글자를 둘러싼 소란이 실은 한국 외교 전략의 근본적 딜레마를 압축하고 있는 것이다.

항목 삭제라는 해법이 당장의 불을 껐을지 모른다. 그러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다음 번 유사한 상황에서 한국은 또 무엇을 삭제할 것인가. 외교에서 '삭제'는 전략이 아니다. 결정을 회피하는 전술일 뿐이다. 전술은 반복될수록 신뢰를 잃는다. 중국에도, 대만에도, 그리고 한국 스스로에게도.

전략적 모호성은 선택을 유보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관리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설계된 입장이어야 한다. 어느 지점까지는 유연하게 대응하고, 어디서부터는 분명한 기준을 세울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다. 한국은 지금 그 설계를 다시 해야 할 시점에 서 있다. 입국신고서 한 줄의 교훈이 그것이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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