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절벽을 오르는 염소처럼

[골프한국] 유라시아와 아프리카 동부에 서식하는 아이벡스는 거의 수직에 가까운 벽을 오른다. 깎아지른 듯한 암벽을 뛰어다니고 수력발전소의 콘크리트 댐 벽을 타고 올라가 벽틈으로 새어 나온 소금을 핥는다. 미네랄이 부족하면 생존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미끄러지면 끝이지만 필요하기 때문에 오른다.
모로코의 염소들은 나무에 오른다. 관광 상품이 아니라 생존의 기술이다. 땅에는 먹을 풀이 부족하고, 나무 위에는 아르간 열매가 있다. 떨어질 위험을 감수하고 가지 끝까지 올라가는 이유는 단순하다. 먹어야 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나무 오르기'는 묘기가 아니다. 간절함이 만든 기술이다. 아르간 열매는 헤어관리용품 등 다양한 건강제품의 재료로 쓰인다.
연습장에 가면 많은 골퍼들이 "어렵다!"고들 말한다. 고난도 숏게임, 페어웨이 벙커샷, 3m 파 퍼트, 바람을 거스르는 낮은 탄도 컨트롤 샷 등등이.
대부분은 이렇게 말한다. "그건 프로들이나 하는 거죠." 하지만 질문을 바꿔보자. 그 샷이 정말로 필요한 상황이라면? 그 기술이 없으면 라운드가 무너진다면? 그 한 샷이 당신의 스코어, 자존감을 무너뜨린다면?
기술은 재능이 아니라 필요에서 탄생한다. 아이벡스는 암벽 등반가가 아니다. 염소는 체조 선수가 아니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 곡예를 일상으로 만들었다.
골프도 다르지 않다. 벙커가 두려우면 벙커를 피하는 플레이를 한다. 숏게임이 약하면 그린을 크게 공략한다. 퍼트가 약하면 "오늘은 감이 안 좋네"라며 넘긴다. 그렇게 우리는 스스로의 약점을 피해 다닌다. 피하는 한, 절벽은 오르지 못한다. '할 수 있으면 좋겠다'와 '해야만 한다'의 차이가 이렇게 크다.
고난도 기술은 욕망만으로는 잘 익혀지지 않는다. 필요가 절실해야 몸이 바뀐다. 로브 샷을 못해 우승을 놓친다면? 1.5m 퍼트를 넣지 못해 팀에 민폐가 된다면? 바람 속 컨트롤 샷을 못해 싱글 진입이 영원히 멀어진다면? 그 순간, 연습의 밀도가 달라진다. '연습해야지'가 아니라 '이걸 못 하면 안 된다'가 된다.
간절함이 환경을 설계한다. 우리는 생존 위기에 놓여 있지 않다. 그래서 일부러 절벽을 만들어야 한다. 연습 라운드에서 일부러 어려운 핀을 공략해 보기, 벙커 탈출 실패 시 벌타를 추가하는 훈련, 퍼트 10개 연속 성공 못 하면 연습 종료 금지, 약점 샷만으로 30분 구성하기 등.
나는 골프를 배우기 시작한 무렵, 벙커샷을 익히기 위해 밤늦은 퇴근길에 한강 미사리의 모래 채취장을 찾아 공 10여개로 벙커샷 연습을 하고, 동해안 해변가에서 벙커샷 연습을 하기도 했다. 환경이 간절함을 만들고, 간절함이 반복을 만들고, 반복이 기술을 만든다.
염소는 두려움을 없애서 나무나 암벽, 댐의 수직 벽을 오르는 게 아니다. 생존을 위해 두려움 속에서도 균형을 잡는 발굽을 발전시켰다. 골퍼도 마찬가지다. 긴장감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긴장 속에서 재현 가능한 루틴을 만드는 것이다. 기술은 안정에서 나오지 않는다. 불안정 위에서 다져진다.
모로코의 염소는 나무 위에서 먹이를 찾는다. 유럽의 아이벡스는 수직 벽에서 소금을 얻는다. 그들은 위험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필요하기 때문에 오르는 것이다.
골프에서 당신이 오르지 못하는 절벽은 무엇인가. 정말로 간절히 필요하다면, 당신의 몸도 그 절벽을 오르는 법을 배울 것이다. 아마도 우리는 기술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간절함이 부족한 것인지 모른다.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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