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반가음식…욕심 없는 담백한 마음을 담죠”
‘아시아 50 레스토랑’ 온지음 조은희 셰프

“지난해까지는 수상자에게 미리 귀띔을 해줬는데 올해부터는 규칙이 달라졌나 봐요. 제 이름이 불리기 전까지 정말 까맣게 몰랐어요. 그 바람에 진짜 깜짝 놀랐죠.”
한국인이 ‘아시아 최고의 여성 셰프’로 선정된 건 2020년 조희숙 셰프 이후로 두 번째다.
“부모님이 전라도 김제 출신이신데 두 분 모두 음식을 좋아하고 또 요리하는 걸 좋아하셨어요. 삼촌들이 ‘네 엄마 음식이 제일 맛있다’고 하시던 말씀이 생각나요. 덕분에 저는 어려서부터 음식을 먹는 일에 거침이 없었죠. 초등학교 때였나, 몸이 약했던 오빠를 위해 어머니가 건삼을 넣고 삼계탕을 끓이셨는데 그 냄새가 어찌나 좋던지 부엌에서 엄마 몰래 국자로 삼계탕 국물을 마냥 퍼먹던 기억이 있어요. 어린 애가 삼 냄새에 홀리다니요.”(웃음)
옷·공예 등 한국 전통문화도 함께 연구
그렇다고 요리사가 되는 꿈을 꿨던 건 아니다. 고교졸업 후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그가 갑자기 회사 앞 요리학원에 다니며 단번에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따고, 독학으로 양식조리사 자격증까지 딴 건 20대 중반의 일이다. 본격적으로 요리를 배우고 싶어 배화여대 전통조리과에 입학한 건 스물다섯 살 때다. 대학졸업 후에는 교수님 추천으로 궁중음식연구원에 들어가 국가무형문화재 제38호 조선왕조 궁중 음식 기능보유자인 한복려 선생에게 사사하며 궁중음식 이수자가 됐다.
“호텔 실습도 나가봤는데 저랑은 잘 안 맞더라고요. 혼자 조용히 있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 연구원으로 있는 게 더 좋았죠. 그렇게 궁중음식연구원에서 8년, 모교인 배화여대를 비롯한 대학 강단에서 8년을 보냈어요.”
말하자면 ‘온지음’이 조 셰프의 첫 직장이다. 온지음은 식당의 이름이자 한국의 전통문화를 연구하는 연구소의 이름이다. ‘옷공방’ ‘집공방’ ‘맛공방’이 3년에 한 번씩 큰 전시를 열고 책을 출판한다. 레스토랑 운영만으로도 힘들 텐데 전시에 책 출판까지, 곱절로 힘들지 않은가 물었더니 “좋아하는 ‘요리’와 ‘연구’를 함께할 수 있어 오히려 좋다”며 “때때로 집안 일이 더 힘들게 느껴진다”고 했다.
40대가 되어서야 처음 입문한 레스토랑 주방. 웬만한 사람이라면 버티기 힘들었겠지만 오히려 나이가 든 만큼 아이들은 이미 커서 엄마의 손길이 필요 없었고, 연구하고 강의를 할 때와는 달리 다른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내는 일’이 재밌어서 세월이 흐르는 것도 몰랐다고 한다.
초창기 ‘온지음’은 철저한 예약제로 원하는 손님에게만 음식을 만들어 제공하는 ‘원 테이블’ 레스토랑으로 운영됐다. 나머지 시간에는 직원들이 함께 전국으로 답사여행을 떠나 제철 식재료를 연구하고, 종가음식과 향토음식 대가들에게서 음식을 배웠다. 지금도 고조리서를 연구하며 현대인의 밥상에 맞는 한식과 메뉴를 고민한다.
“신선로를 하려면 굽이 높은 놋쇠그릇이 필요해요. 그런데 ‘꼭 기물이 있어야만 할까, 신선로에 담지 않으면 신선로가 아닌가’ 궁금증이 생겼죠. 옛 자료들을 찾아보니 신선로는 ‘열구자탕’이라고도 불렸어요. 조선시대 궁중에서 먹던 탕 요리로 ‘입을 즐겁게 하는 탕’이라는 뜻이에요. 그렇다면 놋쇠 기물이 없어도 된다는 거잖아요. 한식의 원형을 크게 변형하지 않으면서도 현대인의 밥상에 맞게 기물을 재해석해서 메뉴를 만들었더니 손님들도 다 맛있고 보기 좋다고 좋아해주셨죠.”

과거의 문헌 기록만으로 우리가 미처 몰랐던 음식을 재현하고, 온갖 식재료의 맛깔스러운 조합을 만들어내지만 정작 가장 자신 있고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김치”라고 한다. “저는 제가 만든 김치가 그렇게 맛있어요.(웃음) 매번 ‘온지음’ 식구들과 함께 직접 만드는데 손님들도 맛있다고 해주시니 혼자만의 착각은 아닌 것 같아요. 최근에는 20대 중반의 아들이 ‘엄마의 김치 맛을 배워야겠다’며 함께 김치를 담그고 있죠.”
후배 셰프들에게 전하고 싶은 조언으로는 “욕심 없는 담백한 마음”을 답했다. “단순하고 무던하게 한 길을 쭉 가다 보면, 다른 누구의 말보다 내 자신이 나를 인정하는 순간이 와요. 그러면 되는 거죠.”
서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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