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호의 시보다 낯선] 캐러멜의 끈적임, 설탕물의 찰랑임… 입안에 도는 감각적 사랑

고선경의 세 번째 시집 ‘러브 온 더 락’은 지금 젊은 독자들에게 가장 뜨겁게 지지받는 시인이 동시대의 사랑을 어떤 감각으로 새롭게 쓰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집이다. “너에게 구체적인 사랑을 돌려주고 싶다”(‘고백’)는 고백과 함께 시작되는 이 시집에서 사랑은 분홍색 캐러멜의 끈적임, 복숭아 통조림 속 설탕물의 찰랑임 같은 감각적 이미지로 출몰한다. 그 감각들은 서로 뒤섞이고 으깨지고 번져 가면서, “뭔가 다른 모양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러브 온 더 락’)는 예감 속에서 자꾸만 다른 모양으로 변형된다. 그래서 고선경의 시를 읽고 있으면 사랑은 귀엽지만, 설명할 수 없는 강렬한 맛으로 번져가는 느낌의 사건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이 시집의 사랑은 마냥 달고 귀엽고 키치하기만 한 사랑은 아니다. 그 반짝이고 끈적이는 표면 아래에는 수치와 당혹, 욕망이 늘 함께 들끓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각각이었다가 하나가 되는/ 믹서기 속 풍경”(‘조립식 인간의 심신 수련’)을 그려내고, “손바닥에는 무른 딸기 냄새…… 짓이겨진/ 빨래를 털어 널 때는 우리가 충분히 함께인 것 같았다”(‘늦여름 동거’)고 느끼는 이 시집의 화자들은, 서로를 조금씩 망가뜨리고 끝내 한 덩어리의 감각으로 번져가는 “수치심보다 정교한 나의 사랑”(‘잠복’)을 살아내는 중이다.
눈여겨볼 것은 이러한 느낌의 사건으로 표출되는 고선경의 사랑이,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망가져버렸지만 끝내 멸망하지 않는 세계를 살아가는 감각과 맞닿아 있다는 점이다. “지구 어느 도시는 폭발음 없이도/ 붕괴”(‘아포칼립스’)되고 “햇살 조각들이 넘실거리는 종말의 아침 풍경”(‘누덕누덕’)이 찾아와도, 고선경은 입안에 도는 사랑의 감각으로 “입속에서 폭죽을 터뜨리고 싶다”(‘남자 친구가 정신과 약 먹는 여자를 싫어해요’)는 마음을 불러낸다. 사랑은 그렇게, 망가진 세계 속에서도 생을 다시 움직이게 하는 거의 유일한 충동처럼 남는다.
“다 녹은 바닐라아이스크림이/ 수많은 검은 알갱이와 엉기기 시작”하듯(‘싱싱한 바닐라 한 송이와 알레르기’), ‘러브 온 더 락’은 서로 뒤섞이고 부서지고 엉기면서도 이상하게 완전히 끝나지는 않는 사랑의 감각을 누구보다 생생하고 낯선 방식으로 밀어붙인다. 위스키처럼 조금은 독하고, 달콤하게 녹아내릴 것 같은 동세대의 사랑을. 온 더 락으로.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심장 박동기 달고 8번 수술에도 붓 안 놓은… “한국 최고의 모더니스트”
- 간만에 장편 소설이 본심에… 기발한 상상으로 현실 꼬집어
- 세종문화회관·서울시향이 앞다퉈 찾는 스무 살 작곡가
- [일사일언] 말하지 말고 함께 느껴 보세요
- [신문은 선생님] [사소한 역사] 신라 천마총·백제 무령왕릉에서도 나왔대요
- [신문은 선생님] [철학·인문학 이야기] ‘AI와 함께 인간은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 깊은 고민이
- [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벚꽃비 내리는 건 바람 아닌 식물 호르몬 때문이래요
- [제30회 LG배 조선일보 기왕전] 잡을 수 없었다
- [TV조선] 쌀밥 사랑과 소화불량
- 건설 현장 사고 줄인다… AI 통합 관제 시스템 개발 ‘속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