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 4년, 왜 산업현장 사망자는 늘어났나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2026. 4. 25.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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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한순구의 게임이론으로 읽는 세상]
위험 줄이려다 되레 키우는
펠츠만의 리스크 보상 이론
2021년 1월 8일 국회 본회의에서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이 가결되고 있다. /조선일보DB

방송에서 운전자의 과실로 차량이 인도로 돌진해 다수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무엇보다 무고한 희생자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컸다. 안전하다고 믿었던 인도를 걷다가도 불의의 사고를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특히 개인적으로, 차도와 인도 사이에 설치된 울타리인 펜스가 보행자들을 전혀 보호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인도를 걸으면서 철제 펜스를 보면 자동차가 인도로 돌진하더라도 이 펜스가 자동차를 막아 보행자들을 보호해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 펜스는 돌진하는 자동차 앞에서 종잇장처럼 구겨져 버릴 뿐 보행자를 보호하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런 무용지물인 시설물을 국민의 혈세로 설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지만 실제로, 이런 펜스는 교통사고 사상자 수를 획기적으로 줄인 매우 효과적인 교통안전 시설이다. 다만 펜스는 자동차를 막기 위한 것이라는 인식과는 달리 보행자들의 무단횡단을 방지하는 게 중요한 기능이다. 도로교통공단의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 삼각지에 펜스를 설치한 결과 연간 사고 평균 건수가 16건에서 8건으로 감소했으며 경주 근화여고 앞 도로에서도 연간 9.4건에서 4건으로 줄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자동차와 보행자 사이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하면 당연히 보행자의 피해가 훨씬 크다. 무단횡단을 하면 보행자가 큰 교통사고를 당할 확률이 커진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걸고 무단횡단을 하던 보행자들이 펜스가 설치되자 이를 뛰어넘는 게 귀찮아서 무단횡단을 포기한다면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결국 일부 보행자들에게는 낮은 확률의 치명적 사고 위험보다 펜스를 넘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더 크게 느껴진다는 뜻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3년이 지났지만, 건설을 비롯한 여러 산업 현장에서 사망·부상자가 오히려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실질적으로 산업 재해를 줄이는 것보다 사후 처벌에 중점을 둔 법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사진은 작업자의 안전모와 안전장갑 등이 놓여있는 인천의 한 건설 현장 모습. /오종찬 기자

스포츠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관찰된다. 미국 시카고대학의 경제학자 샘 펠츠만(Sam Peltzman)이 미식축구와 관련해서 발표한 ‘리스크 보상(Risk Compensation)’ 이론은 이를 잘 설명해준다. 미식축구는 전속력으로 달리는 두 선수가 정면으로 충돌해야 하는 위험한 경기이다. 그래서 1949년 미국 프로미식축구리그는 선수들의 안전을 위해서 마치 군인의 철모와 같은 강화 플라스틱 헬멧의 착용을 의무화했다. 그런데 의도와는 달리 강화 헬멧 도입 후 선수들의 부상이 오히려 증가했다. 보호 장비가 갖춰지자 선수들이 이제 더 강하게 상대 선수와 부딪쳐도 된다고 생각해서 이전보다 훨씬 강하고 빠른 속도로 충돌했기 때문이다.

강한 충돌로 인한 충격은 선수 개인의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선수 생명이 단축될 수도 있고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식축구 선수들은 어째서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상대 선수와 정면 충돌을 거듭하는 것일까?

경제학적으로 보면, 선수들은 부상 위험보다 과감한 플레이로 얻는 보상이 더 크다고 판단한다. 강하게 충돌한다고 해서 반드시 큰 부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인식 때문이다. 무단횡단이 사고 위험을 높이기는 하지만 그 확률이 아주 낮다고 여기는 보행자와 마찬가지로 미식축구 선수들은 위험한 플레이를 한다고 해도 실제로 자신이 치명적인 부상을 당할 확률은 무시해도 될 정도로 낮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반면 일정한 위험을 감수하면서 경기에 임하면 성적 향상과 함께 그에 따른 명성, 금전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이런 계산에서 선수들에게는 위험한 플레이를 하는 게 더 합리적인 선택이 된다.

무단횡단과 미식축구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인간의 생명과 관련된 경제 이론을 설명할 때 “생명의 가치를 돈으로 따지는 비인간적인 접근”이라는 비판을 자주 마주하기 때문이다.

소방청 발표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3년까지 3년간 등산 중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총 361명이다. 매년 평균 120명이 등산 중 실족 등의 이유로 사망한다. 만일 사람들이 자신의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행동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고 하면 어째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등산을 즐기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경제학자들은 사람들이 스스로의 생명 가치를 ‘금전으로 환산할 수 없는 무한한 것’으로만 여기지는 않는다고 보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산업현장에서 인명 사고를 줄이기 위해서 2022년 도입된 중대재해처벌법이 현실에서 효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고용노동부의 산업재해 현황 자료에 따르면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사망자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전인 2021년에는 248명이었는데 2022년에는 256명, 2023년에는 244명, 2024년에는 250명, 2025년에는 254명으로 법 시행의 효과가 관찰되지 않는다.

경제학은 그 이유를 중대재해 예방의 주체가 기업뿐만 아니라 노동자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찾는다. 교통사고가 운전자의 부주의뿐 아니라 보행자의 부주의에 의해서도 발생하듯이 산업 현장에서의 사고 역시 기업의 안전 조치 미흡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안전 규칙을 준수하지 않아 일어나기도 한다.

이처럼 사고 발생의 책임이 여러 주체에 얽혀 있는 상황에서 중대재해처벌법과 같이 기업 대표 등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게만 강한 처벌을 내리면 그 이외의 실무자나 노동자들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자신의 부주의에 대한 책임 부담이 경감되는 효과가 발생하고 이로 인해 이전보다 안전에 대한 주의를 덜 기울이게 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즉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사업주와 경영책임자들의 주의 수준은 높이겠지만 그 외 참여자들의 주의는 상대적으로 느슨해지면서 전체 효과가 상쇄됨으로써 사고의 발생 건수는 줄어들지 않게 된다.

물론 중대재해의 피해는 노동자에게 돌아간다. 하지만 무단횡단과 미식축구의 사례에서 보았듯이 사람은 자신의 생명을 해칠 수 있는 위험이 조금 증가하는 것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중대재해처벌법으로 기대했던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에만 치중하지 말고 보다 정교하고 균형 잡힌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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