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는 어떻게 기억을 깨우나
[센트&스토리] (8)
스쳐 지나가는 사람의 샴푸 향에서, 엘리베이터를 함께 탄 이름 모를 이에게 나는 향수에서 불현듯 오래된 기억이 되살아나는 순간이 있다. 특별한 이유도 없고, 떠올리려 애쓴 것도 아닌데 어떤 향기 하나가 과거를 데려온다. 잊고 지낸 누군가를, 그때의 감정을 기억과 함께 불러온다. 우리는 이 경험을 ‘프루스트 효과(Proust Effect)’라고 부른다.

이 말은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비롯됐다. 작품 속 주인공은 홍차에 마들렌을 적셔 먹는 순간,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되살아난다. 마들렌의 버터·바닐라 향과 홍차의 쌉싸름한 향이 뇌 속에 잠들어 있던 시간의 문을 연다.
이 문학적 장면은 과학적으로도 설명된다. 2004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냄새를 맡는 원리를 밝혀낸 연구에 수여됐다. 수상자는 리처드 액슬과 린다 벅. 두 과학자는 후각 수용체의 존재를 규명했다. 냄새 분자가 코의 후각 상피에 닿으면 전기 신호로 바뀌어 뇌로 전달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신호는 시상을 거치지 않고 감정을 담당하는 편도체와 기억을 관장하는 해마가 있는 변연계로 이어진다. 이 경로는 다른 감각과 다르다. 시각과 청각은 뇌의 중계 지점을 거치지만, 후각은 감정과 기억의 중심으로 곧바로 들어간다. 그래서 향은 생각보다 먼저 감정과 기억을 불러온다. 이를 ‘비자발적 기억(involuntary memory)’이라 부른다. 프루스트의 마들렌과 홍차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타임머신이었다.
향은 다른 감각보다 기억을 더 오래, 더 선명하게 남긴다는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특정 향과 함께한 경험은 시간이 지나도 생생하게 유지되며, 같은 향을 다시 맡을 때 그때의 감정까지 함께 되살아난다. 나는 강의 참석자들에게 눈을 감고 향을 맡게 하고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어릴 적 오랜만에 만난 이모가 안아주던 기억, 대학교 신입생 때의 첫사랑 등 다양한 추억을 듣게 된다.
이러한 특성은 향수 트렌드에도 반영되고 있다. 마치 서명처럼 자신의 개성과 정체성을 대변하기 위해 이용하는 ‘시그니처 향수’를 찾는 최근 흐름은 자신을 특정한 향으로 기억되게 하고 싶은 욕망과 맞닿아 있다. 사진은 장면을, 글은 생각을 남기지만, 향은 감정과 기억을 남긴다. 지금 뿌리는 향수는 현재를 장식하는 동시에 미래의 기억을 설계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아무 이유 없이 문득 나를 떠올리도록 준비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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