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광기·탐욕의 시대…처칠도 카메오

2026. 4. 25.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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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
앤드류 로스 소킨 지음
조용빈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제사(題詞)부터 불길하다. “인간은 경험에서 교훈을 얻을 만큼 오래 살지 못한다”는 아인슈타인의 말이다. 본문 앞에 넣은 작가노트에서는 헤밍웨이의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속 유명한 대화로 이를 구체화한다. “당신은 어쩌다 파산했나요?” “두 가지 방식으로요. 서서히, 그러다 갑자기.”

이 책은 그렇게 경험에서 배우지 못하고, 서서히 금이 가다 갑자기 붕괴돼 대공황의 서막을 알린 ‘주가 대폭락’의 전말을 1929년 2월부터 1933년 6월까지 시간순으로 재구성한다. 대공황에 관한 책은 많지만, 수치와 데이터에 의존한 경제학자들 것과는 달리 인물 중심의 서사를 펼친다.

1929년 대폭락 이후 영업을 중단한 은행 지점 밖에 군중이 모여든 모습. [사진 웅진지식하우스]
미국의 정·재계는 물론 학계, 언론계의 많은 인물들이 등장해 한 편의 인간 드라마를 이어가는데, 당시 방미 중이던 윈스턴 처칠도 카메오로 출연한다. (호텔마다 열고 있던 증권사 부스를 보고 놀란 그도 그 열기에 휩싸였다가 전 재산 7만5000달러를 잃는다.) 이밖에 별자리로 주식운을 봐줘 인기가 높던 점성술사 이밴절린 애덤스, 월스트리트 정보통으로 유명했던 구두닦이 팻 볼로냐 등 감초들이 재미를 더한다.

다분히 흥행을 염두에 두고 쓰여진 이 논픽션 드라마의 주인공은 뭐니뭐니해도 내셔널시티컴퍼니 회장 찰스 미첼이다. 그는 1920년대 공격적 투기를 주도해 구식은행이었던 내셔널시티뱅크를 월스트리트의 강력엔진으로 탈바꿈시킨 인물이다. 미첼은 회사 영업사원들을 맨해튼의 고층빌딩 꼭대기에 있는 뱅커스클럽에 초대해 점심을 먹이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저 아래 있는 600만 명의 소득을 합치면 수십억 달러야. 저들은 자기 돈을 어떻게 투자할지 모르고 있어. 맛있게 먹고 내려가서 저들에게 알려주라고.”

그 방법은 다름 아닌 ‘빚’이었다. 10달러만 있으면 나머지를 빌려 100달러짜리 우량주를 살 수 있었다. 당시 흔했던 사례대로 주가가 1년에 2배가 되면 20%의 이자를 내고도 820%의 수익률을 올릴 수 있었다. 뉴욕증권거래소 앞에 매일 아침 사람들이 장사진을 쳤다. 자기 돈이 불어나는 것을 보여주는 시세판이 있는 객장의 명당자리를 잡으려는 이들이었다.(이들은 나중에 뱅크런으로 장사진을 친다.)

그들의 일확천금 꿈은 성장이 지속돼야 가능한 것이다. 자동차와 세탁기, 특히 라디오라는 신기술이 그것을 가능하게 할 것처럼 보였다. 집단적 투기에 우려와 경고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미첼 같은 이들은 반문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왜 오늘 미국에서 이뤄지는 엄청난 이익 창출에서 소외돼야 합니까?”

미첼의 상대역은 카터 글라스 상원의원이다. 연방준비제도(FRB)의 초석을 놓았고, 은행과 증권 업무를 분리한 글라스-스티걸법을 통과시킨 인물이다. 시장 과열을 막기 위해 노력해온 그에게 미첼은 공적자금을 투기에 악용하는 범죄자였다. 글라스는 월스트리트의 탐욕에 대항하지만 시대의 광기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뉴욕타임스 금융 칼럼니스트인 저자는 두 사람의 이면을 들여다보며 재평가를 시도한다. 특히 미첼에 대해 “당시 지위와 상황에서 대다수가 했을 법한 행위보다 훨씬 더 나쁜 짓을 저질렀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하는데, 거품을 부풀리고 확산시킨 주범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한 시각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재앙의 더 큰 책임은 인간의 본성에 있다는 저자의 말이 틀리지 않기에 더욱 불길하다. “집단적 열기 속에서 인류는 반복해서 이성을 잃을 것”이라는 저자의 단언이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장면처럼 보여서다.

이익이 있다면 벼랑 끝에 이를 때까지 브레이크를 밟는 법이 없는 게 자본주의의 속성 아닌가. 추락하기 전에는 위험을 느끼지 못한다. 2차 대전으로 이어진 대공황의 시작인 1929년 ‘검은 화요일’이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그해의 10대 뉴스에 끼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훈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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