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푸바오’ 된 늑구… 반복되는 동물 팬덤 현상, 왜?
푸바오에 이은 늑구앓이
대중이 열광하는 이유는
대전 오월드 동물원을 탈출한 늑대 ‘늑구’가 지난 17일, 탈출 9일 만에 무사히 생포돼 복귀하자 대중은 열광했다. 도심 인근에 맹수가 출몰한 데 따른 불안감은 어느새 사라지고 늑구의 안위를 걱정하는 여론이 주를 이뤘다. “고생했다”, “혼자 얼마나 무서웠겠느냐”는 위로가 쏟아졌고, 늑구가 소고기와 닭고기 특식을 먹었다는 소식에 흐뭇해하는 반응이 줄을 이었다.

늑구 사례는 2년 전 중국에 반환된 에버랜드의 판다 ‘푸바오’ 현상을 떠올리게 한다. 팬클럽인 ‘한국 푸바오 보호 연합’은 현재까지도 푸바오의 생육 환경 개선과 재반환 등을 요구하고 있다. 동물원 동물을 단지 구경거리로 보던 과거의 시선은 이제 특정 개체에 몰입하고 유대감을 형성하는 하나의 ‘팬덤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강아지 같은 늑대, 고양이 같은 퓨마
전문가들은 이번 ‘늑구 현상’의 기저에 갯과 동물에 대한 현대인의 친밀감이 자리 잡고 있다고 말한다. 포획 시도 중 겁에 질려 달아나는 늑구의 모습에서 대중은 ‘야생의 포식자’가 아닌 ‘길 잃은 대형견’을 떠올렸다는 것이다.
실제로 새끼 때부터 사육사 손에서 자란 늑대는 외형뿐 아니라 행동 습성이 반려견과 흡사한 경우가 적지 않다. 늑구 탈출 직후 소셜미디어에서는 5년 전 오월드의 늑대들이 고깔모자를 쓴 채 꼬리를 흔들며 개껌을 씹던 영상이 화제가 됐다. 늑구가 등장하는 영상은 아니었으나 대중은 이 모습에 “큰 강아지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

동물원 동물에 대한 이 같은 대중의 정서적 반응 양상은 이전에도 있었다. 2018년 탈출 4시간 만에 사살됐던 퓨마 ‘뽀롱이’ 사건 당시, 사육사가 실수로 문을 열어 놨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대중은 분노했다. “둥근 얼굴과 눈망울을 보니 우리 집 고양이 생각이 난다”고 했다. 퓨마는 대표적인 고양잇과 동물이다. 2023년 민간목장 우리에서 탈출해 1시간 여 만에 사살된 암사자 ‘사순이’의 경우도 비슷하다. 사살 당시 숲속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던 중이라는 사실에 과잉 대응 논란이 일었다.
곽금주 서울대 명예교수는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대하는 문화가 정착되면서 그 시선이 야생동물로까지 확장돼 맹수에 대한 경계심까지 허물었다”며 “민가에 피해를 주지 않고 야위어가는 늑구 모습이 ‘집 떠나 고생하는 사람’의 이야기로 치환되면서 대중의 동정심과 강력한 유대감을 불러일으킨 것”이라고 말했다.
◇동물 서사도 드라마처럼 소비
팬덤의 완성은 서사에 있다. 푸바오는 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다. 국내 최초 자연 번식으로 태어난 판다라는 ‘탄생의 기쁨’, 사육사와의 유대라는 ‘성장기’, 그리고 중국 반환이라는 ‘예정된 이별’까지 완벽한 드라마 구조를 갖췄다. 대중은 푸바오의 성장 과정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며 일종의 공동 양육자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했다.

늑구의 경우 사건 중심의 ‘실시간 서사’에 가깝다. 탈출 전까지 별다르게 알려진 사실이 없었던 늑구는 탈출과 추적, 귀환 과정이 X(옛 트위터) 등을 통해 중계되며 ‘탈출기’의 주인공이 됐다. 사파리 철조망 아래를 파고 나간 사연과 차량 블랙박스 등을 통한 간헐적인 목격담, 포획 실패는 대중의 주목도를 높이는 드라마적 장치가 됐다.
특히 동물원을 탈출한 동물은 대중이 감정을 이입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이 더욱 강하게 나타날 수 있다.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현대인의 욕망이 동물에 투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윤태 고려대 교수는 “이런 열망이 야생적인 삶을 사는 늑대의 이미지와 결합하며 ‘자유를 찾아 떠난 서사’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라고 했다. BBC 등 외신은 늑구 포획 직후 “한국에서 늑구가 갇혀 있기를 거부하는 자유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푸바오가 구체적인 사연이 축적된 ‘프로필 서사형’이라면 늑구는 사건 자체가 드라마가 된 케이스”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늘고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질수록 동물을 각각의 사연을 가진 주체로 대우하려는 경향은 더욱 강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동물을 구경거리로 치부하던 단계에서 벗어나 감정 교류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다.
다만 동물을 친근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자칫 맹수의 위험성에 대한 경계심이 무뎌지게 해 인명 사고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냉정한 판단을 방해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야생동물 전문가는 “동물을 존중하는 문화는 바람직하지만 불가피한 상황에서 인명 보호를 위한 단호한 대처마저 감정적 이유로 반대하는 것은 공공의 안전을 담보로 한 위험한 요구일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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