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 식품’, 타고난 수명 늘려주진 못해도 건강 수명은 지켜준다
[정재훈의 먹다가 궁금할 때] (8)

블루베리를 한 줌 넣고,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오일을 두르고, 연어를 굽는다. 어딘가에서 읽었거나 들어본 조합이다. ‘롱제비티 푸드(longevity food)’, 이른바 장수에 도움이 된다고 팔리는 식품들이다. 의사이자 장수 관련 인플루언서인 피터 아티아는 체중 1㎏당 2g 이상의 단백질 섭취를 권하고, 저명한 심장전문의이자 노화 연구자 에릭 토폴은 적색육을 끊고 지중해식 식단을 유지하며 초가공식품을 ‘UFO(미확인 음식 물체)’라고 부르며 피한다.
여기에 ‘블루존 식단’이 더해진다. 내셔널지오그래픽 탐험가이자 작가 댄 뷰트너가 대중화한 이 개념은, 세계에서 비교적 오래 살고 건강하게 늙는 지역들의 식습관을 가리킨다. 이들 지역 식탁의 공통점은 동물성 식품을 줄이고 채소와 콩류 중심의 식사를 한다는 것이다. 일본 오키나와 사람들은 고구마와 두부를, 이탈리아 사르데냐 사람들은 콩류와 올리브오일을 많이 먹는다.
하지만 올해 8월 96세가 되는 워런 버핏은 그 어떤 롱제비티 푸드와도 거리가 멀다. 매일 콜라 5캔을 마시고 맥도날드에 들러 아침을 먹는다. 버핏은 포천지와 인터뷰에서 “하루 2700칼로리 중 4분의 1이 코카콜라에서 온다”고 밝히기까지 했다.
◇“수명 55%는 유전”… 와이즈만 연구가 던진 불편한 진실
그렇다면 이 음식들이 실제로 장수를 만드는 것일까. 지난 1월, 이스라엘 와이즈만 과학연구소의 유리 알론 연구팀이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그렇지 않아 보인다. 스웨덴 쌍둥이를 추적한 대규모 데이터를 분석한 연구에서, 연구진은 사고나 감염처럼 노화와 무관한 외인성 사망을 걸러내고 순수하게 노화로 인한 수명의 차이를 분석했다. 그 결과, 수명에 미치는 유전적 영향이 50~55%로, 환경적 요인을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전 쌍둥이 연구에서 유전적 영향을 25% 이하로 추정했던 것과 비교하면 두 배 이상 높은 수치다. 이런 차이가 나타나는 이유는 뭘까. 과거에는 디프테리아·콜레라 같은 감염성 질환으로 인한 조기 사망자가 많았지만 환경 개선으로 이런 외부 요인이 수명에 미치는 영향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사실 식단이 수명 자체를 크게 늘린다는 근거는 생각보다 약하다. 와이즈만 연구에서 알론은 건강한 습관이 수명에 더하거나 빼는 양이 5년 내외라고 계산했다. 시카고대 역학 명예교수 올샨스키는 이 연구에 대해 이렇게 논평했다. “수명을 단축하기는 쉽지만, 늘리기는 매우 어렵다.” 담배를 피우고 과도한 음주와 위험한 행동을 반복하면 단명하기 쉽다. 하지만 이번 연구는 아무리 운동을 열심히 하고 건강에 좋다는 음식만 챙겨 먹어도 유전적으로 80까지 살 사람이 100세까지 장수하게 될 가능성은 낮다는 점을 시사한다.
토폴은 이와는 정반대처럼 보이는 연구 결과를 제시한다. 그는 80세 이상이면서 암, 심혈관계 질환, 신경퇴행성 질환이 없는 이른바 ‘수퍼에이저(Super Ager)’ 1400명을 연구했다. 이들의 DNA 염기서열을 분석했더니 특별한 장수 유전자 표지가 발견되지 않았다. 오히려 생활 습관과 사회적 요인이 더 눈에 띄었다. 규칙적인 운동, 지중해식에 가까운 식단, 7시간 내외의 수면, 사회적 유대가 공통점이었다.
두 연구는 모순이 아니라 서로 다른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와이즈만 연구는 인구 집단 전체에서 수명의 차이를 유전이 얼마나 설명하는가를 물었다. 토폴의 연구는 건강하게 오래 산 사람들에게 특별한 장수 유전자가 있는가를 물었다. 그런 유전자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장수에는 유전의 영향이 크다. 마치 키 큰 사람들에게 공통된 특별한 유전자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키의 개인차 중 유전이 80%를 설명한다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앞서 소개한 두 연구를 합쳐 읽으면 그림이 더 선명해진다. 수명 자체는 유전이 상당 부분을 결정하지만, 주어진 유전적 상한선 안에서 건강하게 사느냐는 생활 습관이 결정한다는 것이다.
◇수명을 늘리기보다 고장을 늦춘다
그렇다면 음식은 어디에 어떻게 작용하는가. 블루베리가 유전적으로 80세까지 살 사람을 100세로 만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식단이 건강 수명에 미치는 영향은 다른 문제다. 염증을 줄이고, 심혈관계와 장내 미생물 환경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 음식은 분명히 작용할 수 있다.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 얼마나 잘 기능하느냐에 영향을 준다.
문제는 ‘롱제비티 푸드’라는 거창한 이름이 과도한 기대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블루베리의 안토시아닌이 산화 스트레스를 줄인다는 세포 실험 결과가 있고, 올리브오일의 폴리페놀이 염증을 억제한다는 관찰 연구가 있다. 하지만 이것이 곧 블루베리를 매일 먹으면 더 오래 산다는 뜻은 아니다. 루테인이 황반색소 밀도를 높인다는 사실이 시력이나 노안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특정 식품이 건강에 유익하다고 해서 곧 그 식품이 수명을 늘린다는 증거가 되지 않는다.
롱제비티 푸드를 찾아 그것만 집착하며 먹는 것이 오히려 음식의 즐거움을 빼앗을 수 있다. 블루존 사람들이 장수하는 것은 콩과 올리브유를 의식적으로 챙겨 먹어서가 아니다. 그들의 식단은 공동체의 삶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었다. 사르데냐 사람들은 식구들과 함께 콩을 먹고 와인을 마셨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배가 80% 찼을 때 젓가락을 내려놓는 ‘하라하치부(腹八分目)’를 의식이 아니라 관습으로 실천했다.
건강한 식습관의 목표를 수명 연장이 아닌 건강 수명 유지로 좁히면 오히려 자유로워진다.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마다 수명이 줄어든다고 겁낼 이유가 없다. 가끔 즐기되 매일 너무 많이 먹지 않으면 된다. 흡연이나 극단적 수면 부족, 만성적인 신체 활동 부재처럼 분명히 건강을 갉아먹는 것들을 피하는 편이 훨씬 확실한 투자다. 특정 음식을 골라 먹는 데 쏟는 에너지를, 잠을 충분히 자고 움직이는 데 돌리는 것이 더 현명하다.
와이즈만 연구의 결론을 뒤집으면 이렇게 된다. 유전이 상한선을 그어 놓은 삶에서, 식습관이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일은 그 상한선 근처까지 건강하게 살도록 하는 것이다. 이번 연구를 두고 역시 장수를 위한 가장 확실한 길은 장수 부모를 찾아 태어나는 거란 농담이 많이 나왔다. 그럴 수 없다면, 적어도 살아 있는 동안 밥상 앞에서 너무 심각해지지 않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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