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바로티 잇는 ‘음악 재벌’…벌어들인 자산 400억원 훌쩍
한정호의 클래식 수퍼스타즈
![지난 2월 이탈리아 밀라노 산시로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밀라노 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랑랑이 공연하고 있다. [연합뉴스]](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25/joongangsunday/20260425000243038jtqs.jpg)
블랙핑크 로제, 싸이 등 K팝 스타와 협업
그의 수익 구조는 전형적인 클래식 스타의 범주를 넘어선다. 오케스트라 협연과 리사이틀 개런티를 기본으로, 중국과 세계 각지의 기업 행사 및 국가 이벤트 출연료, 전속 레이블 도이치그라모폰 음원의 선급금과 로열티, 스타인웨이, 오데마 피게, 디올 등 명품 브랜드 광고 계약이 복합적으로 작동한다. 영국 타블로이드 ‘더 선’은 2024년 기준 그의 자산을 약 2370만 파운드(현재 환율 기준 약 470억원)로 추정했다.
음악 경력으로 보면 세계 오케스트라의 양대 축인 빈 필하모닉과 베를린 필하모닉 정기 연주회 무대에 모두 오른 최초의 중국인 피아니스트로 쇼팽, 차이콥스키, 리스트로 이어지는 핵심 레퍼토리에서 확고한 성과를 이뤘다. 56회, 57회 그래미상 시상식에 연거푸 출연해 메탈리카, 퍼렐 윌리엄스와 공연했고 블랙핑크 로제, 싸이 등 K팝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통해 활동 반경을 대중문화로 확장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중국에도 윤디 리, 유자 왕처럼 연주를 잘하는 피아니스트는 많지만, ‘현상’을 만들어내는 피아니스트로 랑랑만큼 뚜렷한 인물이 없다. 자국에서 열린 2008 베이징 올림픽 개회식에 이어, 2026 밀라노 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 개회식 무대에도 오를 만큼 세계적 인지도를 입증했다. 단순한 연주 역량을 넘어, 등장 자체가 사건이 되는 음악가다.
랑랑의 궤적은 ‘21세기 프란츠 리스트’에 비견할 만하다. 리스트가 단독 리사이틀 형식을 정착시키고, 피아노 배치와 무대 연출까지 재구성하며 오늘날 콘서트의 시각적 문법을 창안했다면, 랑랑은 무대 등장 순간부터 고유의 세리모니를 통해 특유의 오라를 형성한다. 객석이 환호로 맞이하면, 랑랑은 한 손을 가슴에 얹고 상체를 숙이거나, 한 발을 내디디며 관객을 향해 예를 표한다. 정치인의 유세를 연상시키는 과시적 제스처로 보일 수 있지만, 외부의 열광과 무관하게 연주에 집중하기 위해 스스로를 정렬하는 일종의 루틴이다.
실제 공연에서 랑랑의 음악은 ‘몸’에서 출발해 ‘이미지’로 완성된다. 즐겨 연주하는 드뷔시 작품에서 두드러지듯, 랑랑은 악보에서 읽어낸 감정을 단순히 소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손가락에서 손목, 팔꿈치, 어깨로 이어지는 관절이 유기적으로 이완되며, 신체의 유연성이 음상의 질감으로 전환된다. 공연 전체가 악보 연주를 넘어, 신체와 소리가 결합되는 방식을 보여주는 ‘마스터클래스’에 가깝다. 크고 부드러운 손, 이를 지탱하는 전신의 움직임이야말로 어린 시절의 초인적인 연습량 뒤에 가려져 있던 랑랑 음악의 본질적 기반이다.
랑랑의 매력은 프란츠 리스트 레퍼토리에서 극대화되는 동시에, 비평적 논쟁을 촉발한다. 조성진이 리스트 피아노 소나타에서 설정의 흔적을 지우며 자연스러운 기교를 지향했다면, 랑랑은 리스트의 언어를 자신의 제스처와 문법으로 ‘재구성’한다. 위험할 정도로 질주하며 소용돌이치듯 밀어붙이는 폭포형 화음과 트릴, 양손 옥타브의 연쇄는 강렬한 시각적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진면목은 속주를 거두어낼 때 더욱 또렷해진다. 음형을 스포이드로 떨어뜨리듯 선명하게 조형하고, 미세한 질감을 정밀하게 조율하며, 정제된 터치를 구현하는 능력은 독보적이다. 폭주에 가까운 에너지와 세밀하게 조형된 디테일 사이를 가로지르는 힘은, 무엇보다 자신만의 속도를 잃지 않는 데서 비롯된다.
청년 시절의 랑랑은 음악적 성취만큼이나 논란의 중심에 서 있기도 했다. 2013년 1월 도쿄에서 리사이틀을 열 예정이었으나, 돌연 공연을 취소하며 구설에 올랐다. 일본 주최 측은 “급성 위장염으로 입국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지만, 같은 시기 중국 휴양지에서 가족과 식사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산됐다. 1995년 13세에 센다이에서 열린 주니어 콩쿠르에서 입상하고, 부모와 함께 도쿄 디즈니랜드를 찾아 해방감을 느꼈다고 밝혀온 터라 일본 팬들이 체감한 배신감은 컸다. 하지만 중·일 외교 관계가 경색될 때마다 방일 공연 일정을 조정하며 관계 회복에 공을 들였고, 점차 신뢰를 회복해갔다.
![랑랑과 그의 부인 지나 앨리스. [중앙포토]](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25/joongangsunday/20260425000244325zjqw.jpg)
가난 겪어, 빈궁한 아이들 ‘연주 배움’ 후원
1997년 필라델피아 커티스 음악원에 입학해 게리 그라프먼을 사사하던 랑랑이 세계적 스타로 도약한 출발점은 1999년이었다. 멘토인 지휘자 크리스토프 에셴바흐의 공연에서, 앙드레 와츠를 대신해 무대에 올라 단숨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와 유사한 장면은 2017년에도 반복된다. 사이먼 래틀이 이끄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한국 공연에서 랑랑이 출연을 취소하자, 협연을 대신한 인물이 조성진이었다. 두 사람은 도이치그라모폰 소속으로 같은 시기에 레코딩 레퍼토리를 전략적으로 분산시키는 방식으로 서로를 존중했고, 동시대 아시아 피아니즘을 대표하는 위치를 확고히 했다.
랑랑은 중국 내에서 하나의 사회적 아이콘으로 작동한다.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제작 당시 그의 손에 약 4억원 규모의 보험이 설정될 만큼 상징적 가치를 인정받았고, 약 4000만 명이 클래식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흐름을 중화권 언론은 ‘랑랑 효과’로 명명했다. 활동 반경 역시 장르를 넘어선다. 소셜미디어에는 테일러 스위프트, 네이마르와의 투샷이 오르지만, 동시에 바티칸 교황과 찰스 3세의 공식 초청 행사나 대관식에 참석하며, 클래식 음악가를 넘어선 세계적 명사의 위상을 드러낸다. 업계 역시 랑랑에게 중국과 국제 활동에 영향을 줄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는 질문 자체를 자제하는 분위기다.
![2025년 발표한 ‘피아노 북2. 앨범. [사진 유니버설뮤직]](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25/joongangsunday/20260425000245619lvnj.jpg)
공연이 없는 날 스파이더맨으로 변신해 아들과 시간을 보내는 랑랑의 모습은 ‘클래식 수퍼스타’의 또 다른 얼굴이다. 그런데 차세대 피아니스트들 사이에서 ‘제2의 랑랑’을 꿈꾸는 경우가 드물다. 그의 길이 얼마나 예외적인지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수퍼스타 랑랑은 서구 클래식 시장의 아시아 확장 전략, 클래식 선진국을 지향하던 중국의 정책적 욕망, 도이치그라모폰 전속 계약이 부여한 프리미엄, 중국식 엘리트 트레이닝의 극단이 한 시점에 맞물린 결과다. 기준이 되었지만, 동시에 반복되기 힘든 예외다. 결국 랑랑이라는 이름은 한 시대에 단 한 번 등장하는 사건에 가깝다.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