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논문은 왜 이렇게 많이 철회될까[김우재의 플라이룸](76)

2026. 4. 24.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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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생성 이미지. 김우재 제공

나는 초파리를 연구한다. 정확히는 초파리의 신경계와 행동의 유전적 기반을 탐구하는 기초과학자다. 임상 현장과는 거리가 멀고, 캐나다 의대에서도 근무해봤으며, 퇴행성신경질환 논문도 출판해봤지만, 여전히 내 정체성은 기초과학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의학 논문 생태계의 이상 징후를 오랫동안 지켜보며 불안감을 떨치지 못한 이유는, 언젠가부터 의학이 현대 생명과학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의학연구에는 심각한 구조적 문제가 놓여 있다. 그리고 어떤 문제는 그 영역의 외부에 있을 때 오히려 더 선명하게 보이는 법이다.

논문 공장의 산업적 범죄로 사상 최대 철회

2023년 한 해에만 전 세계에서 1만건이 넘는 논문이 철회됐다. 과학계 역사상 유례없는 기록이다. 더 주목해야 할 사실은 철회 논문의 절반 이상이 의학 및 생명과학 분야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의학은 전체 과학 가운데 가장 많은 논문을 쏟아내는 동시에 가장 많이 철회당하는 분야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온라인 데이터베이스 ‘리트랙션 워치’에 집계된 생물의학 분야 철회 논문은 지금까지 1만9000여편에 이른다. 2022년 한 해에만 약 2600건이 철회됐는데, 이는 2018년 대비 2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리트랙션 워치의 이반 오란스키는 현재 공식 철회율(1000편당 1편)이 실제 규모를 심각하게 과소평가하고 있으며, 실제로는 논문 50편 중 1편 정도가 조작이나 심각한 오류를 내포하고 있을 것이라 추정한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더 냉정한 숫자도 있다. 암젠과 바이엘 같은 글로벌 제약사가 고영향력 학술지에 실린 획기적인 암 연구 논문들을 독립적으로 재현해보니, 성공률이 11~21%에 불과했다. 임상 연구를 직접 수행하는 제약사 연구자들조차 학술 문헌의 상당 부분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현실을 이 숫자는 가감없이 보여준다.

철회 논문의 급증은 개인의 일탈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 배후에는 “논문 공장(paper mill)”이라 불리는 조직적 사기 산업이 있다. 논문 공장은 돈을 받고 가짜 데이터로 논문을 대리 작성하거나, 이미 게재가 확정된 논문의 저자 자리를 판매하는 영리 조직이다. 그 수법은 놀랍도록 정교하다.

종양학과 분자생물학 분야가 주된 표적이 된다. 실험 프로토콜이 표준화돼 있고, 이미지 조작이 상대적으로 용이하기 때문이다. 웨스턴 블롯이라 불리는 단백질 검출 실험의 사진을 오려붙이거나, 존재하지 않는 세포주로 실험 결과를 날조한다. 더 나아가 허위 리뷰어 계정을 만들어 자신들의 논문에 우호적인 동료 심사평을 직접 작성하는 방식으로 게재까지 관리한다. 최근 조사에서 암 연구 논문의 약 10%가 논문 공장과 연루된 징후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이것이 예외적 범죄가 아닌 구조적 오염임을 말해준다.

논문 공장의 피해는 학계의 신뢰 훼손을 넘어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다. 독일 마취과 의사 요하임 볼트의 조작 논문은 수술 중 환자에게 녹말을 주입하는 근거가 됐으나, 사후 조사 결과 녹말 주입은 오히려 신장 손상과 사망을 유발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유럽에서 심장병 환자에게 베타 차단제를 투여했던 관행 역시 조작된 데이터에 근거한 것이었으며, 영국에서만 연간 1만명이 사망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나왔다. 가짜 논문이 임상 지침의 근거가 될 때, 학문적 사기는 조용히 살인이 된다.

왜 하필 의학인가. 의학 연구는 다른 기초과학과 달리 압도적으로 자본집약적이다. 기초과학인 물리학이나 수학은 적은 비용으로 심오한 발견을 이룰 수 있다. 초파리 유전학도 비교적 저비용으로 운영된다. 그러나 신약 임상시험 한 편을 진행하는 데는 수백억원, 많게는 수천억원이 들어간다. 이 거대 자본은 대부분 제약회사에서 오며, 자본에는 반드시 기대 수익이 따른다. 분석 결과 제약사가 후원한 임상시험은 독립적 연구에 비해 자사 제품에 유리한 결론을 도출할 확률이 약 3.68배 높았다.

또한 기업 후원 연구는 약효를 과장하고 부작용은 축소 보고하는 경향이 내재해 있다. 부정적인 결과를 얻은 임상시험의 3분의 1은 아예 발표조차 되지 않는 “출판 편향”도 심각하다. 여기에 “출판이냐, 도태냐(publish or perish)”라는 학계의 압박이 더해진다. 병원에서 진료, 강의, 행정을 동시에 수행하며 논문 실적을 채워야 하는 구조 속에서, 연구 부정 사례의 72%는 지도교수가 원본 데이터를 직접 검토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리트랙션 워치 데이터에 따르면 가장 많은 논문을 철회당한 저자 상위 200명이 전체 철회 건수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하며, 이들 대부분은 대형 대학이나 병원의 선임급 연구자들이었다. 소수의 사기꾼이 아니라 이 구조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살아남은 자들이 문제의 중심에 있다는 뜻이다.

한국은 세계 3위의 철회 국가

한국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2010년부터 2023년까지 윤리적 위반으로 철회된 전 세계 의학 논문 177건 중 한국 연구자의 논문이 23건으로, 중국과 미국에 이어 세계 3위다. 연구 규모를 감안하면 매우 높은 수치다. 사유는 IRB 승인 미비, 환자 동의 무시, 동료 심사 조작 등 연구 윤리의 근간을 흔드는 것들이었다.

출판 후 철회까지 걸린 기간의 중앙값은 647일이었고, 11년이 지난 후 철회된 사례도 있다. 그 기간 동안 조작된 논문은 인용되고 후속 연구의 근거가 됐을 것이다. 최근 의료 사태로 교수들의 연구 시간이 급감하면서 성급하게 투고된 논문들이 향후 더 많은 철회 건수로 돌아올까 우려스럽다.

최근 한국에서는 의사과학자(MD-PhD) 양성이 화두다. 임상의사가 연구에 기여한다는 취지는 좋으나, 나는 이 기획을 바라보며 한 가지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논문 공장, 이해충돌, 재현성 위기 등 앞서 언급한 구조적 문제들에 대한 대비가 함께 설계돼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의사과학자는 임상이라는 자본과 권력의 세계 그리고 과학이라는 진실의 세계를 동시에 살아가야 한다. 그 접점에서 발생하는 유혹과 압박은 현재 의학계가 앓고 있는 문제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연구 진실성은 구호가 아니라 시스템이다. 원본 데이터를 검증하는 인프라, 독립적인 연구윤리위원회, 정량적 평가 체계의 근본적 재검토가 선행돼야 한다. 뿌리 깊은 논문 조작의 토양 위에 씨앗을 뿌린다면, 우리는 또 한 번 10여 년 뒤 그 결과물을 철회하는 수고를 반복하게 될지 모른다. 의사과학자 양성을 설계하는 자리에서 이 질문이 진지하게 다뤄지길 바란다.

김우재 낯선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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