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우당 떠난 지 23년, 바뀐 것 없어도 희망을 놓지 않는 이유
"이 땅의 모든 교회가 있는 모습 그대로 존재할 수 있는 공동체 되길"

[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23년 전, 열여덟 살이던 육우당(본명 윤현석)은 "내 한목숨 죽어서 동성애 사이트가 유해 매체에서 삭제되고 소돔과 고모라 운운하는 가식적인 기독교인들에게 무언가 깨달음을 준다면, 난 그것만으로도 나 죽은 게 아깝지 않다고 봐요"라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당시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국민일보> 등이 그를 비난하던 시기였다. 그의 유서에는 동료들에게 보내는 다른 바람 하나가 더 담겨 있었다. "지금은 어려운 일이 많지만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오리라 믿어요."


육우당이 떠난 4월 무렵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와, 목숨을 잃은 다른 성소수자들을 추모한다. 올해도 '혐오와 차별에 희생된 이들을 기억하는 추모 예배'가 4월 23일 서울 중구 서울제일교회에서 열렸다. 라이언(로뎀나무그늘교회)은 혐오와 차별이 계속되고 있는 현실을 애통해하며 예배를 열었다. 그는 "육우당이 고통스러워했던 교회의 모습은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하나도 바뀐 것이 없다. 교회는 여전히 우리들의 존재를 부정하며, 죄인으로 정죄하고, 저주를 쏟아 내며 자신들이 더 거룩하고 더 온전하다고 말한다"고 말했다.

김수산나 목사(섬돌향린교회)는 성소수자를 배제하는 현실 속에서도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기도했다. 그는 "사람이 만들어 온 선명한 경계들은 우리를 아프게 하지만, 당신의 창조는 우리의 생각과 경계를 넘어 하나님 보시기 좋았던 세상이었음을 기억한다. 태초의 그 창조처럼, 지금 이 땅 위에도 서로 다른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고 연결되는 세상이 오게 해 달라"고 말했다.

"저는 교회 안에서 나름 오랫동안 여성운동을 해 왔습니다. 결과와 상관없이 꾸준히 해 왔습니다. 법과 제도를 바꾸고 인식을 바꾸는 그런 일들입니다.
이런 투쟁들 속에서 기대와 희망을 구분하는 법을 저는 조금 배우게 된 것 같습니다. 상황과 조건을 바꾸는 일은 너무나도 느리게 진행됩니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바뀌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함께 싸우고 매번 그 일을 하는 이유는 당장 무언가가 바뀔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 아닙니다. 아파하는 이들과 함께 아파하는 일, 곧 하나님의 자리에 동참하는 일이기 때문에 함께합니다. 결국 희망 때문입니다."
홍보연 목사는 육우당을 단지 '잃어버린 청년'으로만 기억하지 말자고 했다. 육우당은 상처 속에서도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는 것이 어떤 것인지 말해 준 증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육우당이 겪은 고통뿐 아니라 끝까지 붙든 소망을 함께 기억하자고 말했다.

추모 메시지를 적어 붙이는 시간도 있었다. 그리워하는 이름들이 적힌 메시지가 단상에 가득 찼다. "OO님, 지금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으신가요", "OO, 안식하기를. 네 친구들과 함께 만나러 갈게. 곧"," OO아 네 이름을 20년 만에 불러 본다. 내가 너를 기억할게. 계속 기억할게. 하나님 품 안에서 잘 쉬고 있어".
예배는 공동 축도로 마무리됐다. 참가자들은 "이 땅의 모든 교회가 누구라도 있는 모습 그대로 존재할 수 있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란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나수진 sjnah@newsnjoy.or.kr
Copyright © 뉴스앤조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