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전증 필수약 수급 불안·세노바메이트 등 혁신 신약 급여도 지연 심각”
저가 약가 구조에 필수약 생산 중단·응급 치료 공백 우려 확대
신약 비급여 장기화·수술비도 수백만원…치료 접근성 양극화 심화

신원철 강동경희대병원 신경과 교수(대한뇌전증협회 부이사장)는 24일 국회에서 개혁신당 이주영 의원 주최, 한국뇌전증협회 주관으로 열린 뇌전증 정책 관련 토론회에서 "한국의 약가 수준이 OECD 평균의 약 42%에 불과해 글로벌 제약사들이 한국 시장을 기피하는 '코리아 패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신 교수는 "뇌전증 치료는 약물치료를 기본으로 식이요법, 수술, 뇌 자극 치료 등 다양한 치료법이 발전하고 있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발작을 완전히 없애 환자가 정상적인 사회생활로 복귀하는 것"이라며 "발작이 반복되면 뇌 손상과 외상 위험이 증가하고, 특히 소아·청소년의 경우 학습 능력과 인지 발달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뇌전증 치료는 통상 1차 및 2차 항경련제 투여를 통해 약 60% 환자에서 발작이 효과적으로 조절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들 약물에도 반응하지 않는 약물저항성(난치성) 뇌전증 환자가 약 30~35%에 달하며, 국내 환자 기준으로는 약 11만 명이 약물로 충분한 치료 효과를 보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들 환자에게는 수술이나 신경자극술 등 비약물 치료가 고려되며, 동시에 새로운 기전의 신약 도입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치료가 적절히 이뤄지지 않을 경우 반복되는 발작으로 인한 돌연사 위험 증가, 뇌 손상, 인지기능 저하 등 심각한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치료 환경을 뒷받침해야 할 약물 공급 체계가 붕괴 위기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현재 뇌전증 치료에 사용되는 상당수 약물은 1940년대부터 개발된 저가 의약품으로, 대표적으로 페니토인은 약 80년간 사용돼 온 필수 치료제다. 그러나 장기간 약가가 사실상 동결되면서 제약사들의 채산성이 악화됐고, 결국 생산 중단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실제로 글로벌 공급망 문제까지 겹치면서 일부 벤조디아제핀 계열 약물의 국내 수급이 중단되는 사례도 발생했다. 구체적으로 종근당의 리보트릴정 0.5mg(클로나제팜)은 2025년 4월 삼성서울병원 원외약국 공급중단 공지가 났고, 인근 약국 재고도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 마역류 원료 이동량 승인이 지연되고 그로 인해 국내생산에 차질을 빚는 것이다. 정부는 제네릭 의약품으로 대응하고 있으나, 예고 없는 생산 중단에 대한 대비 체계는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현재 수급 불안정 의약품은 2025년 1월 기준 2899 품목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원인으로는 낮은 채산성, 원료 공급 문제, 노후된 생산 설비 등이 꼽히며, 이 중 상당 비중이 저가 약가 구조와 직결된 것으로 분석된다. 약가가 지나치게 낮아 설비 투자나 생산 유지 자체가 어려운 구조라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더욱이 응급 상황에서 사용되는 주사제까지 생산 중단 위기에 놓이면서 문제는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신 교수는 국가필수의약품이자 경련이 지속되는 뇌전증 지속상태(SE)의 1차 핵심 응급 약제인 삼진디아제팜 주사제도 원료수급 문제와 채산성 악화로 공급불안이 반복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이에 대해 삼진제약 측은 올해 초 주사제 공장 이전 이슈로 일부 품절이 있었으나, 현재는 디아제팜 주사를 원활하게 공급중에 있다고 밝혔다.
2차 치료제인 페니토인 주사제(삼진페니토인나트륨주사)는 생산 중단 가능성이 제기된 상태다. 대체 약물인 쎄레빅스 주사(포스페니토인) 역시 해외 의존도가 높아 안정적 공급이 어려운 상황이다. 주사제 부재로 뇌전증중첩상태의 치료공백이 생길 경우 발작이 멈추지 않거나 경구 투여가 불가능한 환자(NPO)에게 영구적 뇌 손상이나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신 교수는 프로-에파누틴 등 해외 제품의 신속한 도입과 항시 재고 비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뇌전증 지속상태는 사망률이 40%에 이를 수 있는 신경과적 응급질환으로, 적시에 약물을 투여하지 못할 경우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럼에도 일부 마취제와 응급용 항경련제까지 수급 불안이 발생하면서 실제 임상 현장에서 치료 공백이 발생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와 함께 해외에서 널리 사용되는 응급용 미다졸람 비강·구강 제형은 국내 제도상 도입이 제한되는 등 접근성 문제도 지적되고 있다.
신 교수는 "저가 약가 구조로 인해 필수 의약품 생산 기반이 무너지고 있으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에게 전가되고 있다"며 "신약 도입과 기존 필수 약물의 안정적 공급을 동시에 담보할 수 있는 근본적인 약가 정책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항경련제 신약의 국내 도입 지연과 접근성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대표적으로 브리바라세탐은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널리 사용되고 있음에도 국내에서는 약가 협상 실패로 장기간 비급여 상태에 머물러 왔다.
해당 약물은 2016년 출시 이후 미국(2017년)과 유럽에서 사용이 확대됐고, 국내에서도 2019년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았지만, 약가를 인정받지 못하면서 사실상 환자 접근이 제한됐다. 이로 인해 환자들은 수십만 원에 달하는 비용을 전액 본인 부담으로 감당해야 했고, 일부 경제적 여력이 있는 환자를 제외하면 실제 사용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국내 개발 신약 역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세노바메이트(상품명 엑스코프리)는 국내 기업 SK바이오팜이 개발한 뇌전증 치료제로, 2019년 미국 FDA 승인, 2021년 유럽 승인 등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효과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허가 및 급여 절차 지연으로 약 6년간 환자들이 활용하지 못한 상황이다. 반면 이미 영국과 캐나다, 스코틀랜드의 HTA(의료기술평가)에서는 급여 권고가 났다. DRE 환자의 미충족 수요를 충족하고, 발작 소실 효과가 있으며, 수용가능한 비용효과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현재 희귀의약품으로 도입돼 일부 사용이 가능하지만 여전히 비급여 상태이며, 건강보험 등재를 위한 협의가 진행 중이다. 전문가들은 해당 약물이 발작 소실률 측면에서 기존 치료제 대비 우수한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보고 있으며, 미충족 수요가 큰 약물로 평가하고 있다.
이처럼 글로벌 표준 치료제가 국내에서는 약가 정책과 협상 구조로 인해 도입이 지연되면서, 환자들이 치료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실제로 일부 환자들은 해외에서 처방을 받아오는 '원정 처방'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난치성 소아 뇌전증 치료에 사용되는 에피디올렉스(칸나비디올 제제) 역시 높은 비용 부담이 문제로 지적된다. 해당 약물은 보험 적용 이후 환자 부담이 일부 경감됐지만, 여전히 월 수십만 원 수준의 비용이 발생하며, 다른 항경련제와 병용되는 경우가 많아 전체 치료비 부담은 상당한 수준이라는 설명이다.
신 교수는 "우리나라 약가 수준이 OECD 평균 대비 낮은 구조로 인해 글로벌 신약 도입이 지연되거나 배제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며 "결과적으로 환자들이 치료 기회를 잃고 비용 부담을 떠안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수술 치료 접근성 문제도 언급했다. 최근 난치성 뇌전증 환자를 위해 뇌전증 발생 부위를 정밀하게 찾아내는 SEEG 검사와 로봇 기반 수술 등이 활용되고 있지만 상당수가 비급여라는 것이다.
신 교수는 "SEEG 검사와 로봇 수술을 진행할 경우 환자 본인 부담이 500만~700만원 수준"이라며 "경제적 이유로 수술을 포기하는 환자도 적지 않다"고 밝혔다.
고가 신약과 수술 비용 부담이 맞물리면서 치료 접근성의 양극화가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해외 원정 치료나 희귀의약품센터를 통한 약물 확보 등 대안이 존재하지만, 높은 비용으로 인해 일부 환자에게만 제한적으로 적용되는 현실이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신 교수는 정부 약가제도 개편 방향에 담긴 이중 약가제 도입과 함께 위험분담제 확대 등을 제안했다.
그는 "표시 가격은 글로벌 수준을 유지하되 실제 계약 가격은 별도 협상하는 이중 약가제 등을 통해 글로벌 가격 체계와의 충돌을 줄일 수 있다"며 "희귀·난치질환 치료제의 경우 위험분담제를 적극 활용해 신약 도입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또 "환자 수가 많지 않은 난치성 뇌전증 수술의 경우 국가가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며 "선진국 수준의 치료 환경을 구축하지 못한다면 치료 격차는 더욱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수술 치료 역시 환자 수가 제한적인 난치성 질환의 특성을 고려해 보장성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장기간 약물치료에도 반응하지 않는 환자에서 수술은 사실상 유일한 치료 옵션임에도, 비용 부담으로 접근이 제한되는 것은 문제라는 것이다.
신 교수는 "치료할 방법이 있는데도 약이 없거나 제도 때문에 쓰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며 "대한민국의 경제 수준과 국격에 맞는 의료 정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