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포장재 만든다면서 멸종위기종 서식지 벌채”

'탄소중립 포장재'를 만드는 과정에서 멸종위기 오랑우탄이 사는 열대우림이 벌채됐다. 숲을 훼손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기업에서 벌어진 일이다. '친환경'을 내세우고 뒤에서는 환경을 훼손하는 사례가 반복되면서, 글로벌 공급망 전반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펄프·제지 기업 아시아 심볼(Asia Symbol)은 '산림벌채를 하지 않겠다'는 정책을 내세우면서 글로벌 기업에 포장재를 공급해왔다. 이 회사는 싱가포르 기업 로얄골든이글(RGE)의 중국 계열사다. 파나돌과 센소다인 등을 보유한 영국 헬스케어 기업 헤일리온 등 주요 기업에 제품을 납품해왔다.
그러나 프랑스 통신사 AFP와 탐사보도 매체 게코프로젝트(Gecko project) 공동 조사 결과, 이 '탄소중립 포장재'에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에서 벌채된 목재가 쓰인 정황이 확인됐다.
이 목재는 대규모 산업형 플랜테이션에서 생산된다. 플랜테이션은 자연림을 밀고 그 자리에 아카시아와 유칼립투스 같은 빨리 자라는 산업용 나무를 키우는 농장이다.
이렇게 생산된 목재는 펄프 공장으로 보내져 잘게 분해된 뒤 종이의 원료인 펄프로 가공된다. 이후 펄프는 중국에 있는 아시아 심볼 공장으로 보내져 종이, 포장재, 섬유 원료 등으로 만들어진다.

'산림벌채 없다'던 기업...공급망 들여다 보니
핵심 연결 고리는 보르네오 북부(북칼리만탄)에 위치한 펄프 공장 피닉스 리소스 인터네셔널(PRI)이다. 조사에 따르면, 이 공장은 2025년 1월부터 펄프를 중국에 있는 아시아 심볼 공장으로 보냈다.
2024년 10월부터 2025년 9월까지 이 공장에 들어온 목재의 약 3분의 1은 열대우림을 벌채해 만든 플랜테이션에서 공급됐다. 여기에는 오랑우탄 서식지를 대규모로 개간한 업체도 포함돼 있다.
아시아 심볼 모회사인 싱가포르 대기업 로열 골든 이글(RGE)는 2015년 '무산림벌채(No deforestation) 정책'을 선언하며 친환경 경영을 강조해왔다. 2024년에는 10억 달러 규모의 지속가능성 연계 대출도 받았다. 같은해 RGE 경영진은 "우리 공급망은 100% 산림벌채와 무관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조사에서는 과거 대규모 벌채 이력이 있는 플랜테이션(Industrial Forest Plantation)에서 나온 목재가 제품 생산 과정에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플랜테이션의 벌채 면적은 2016년부터 2024년까지 약 3만 헥타르에 달한다. 서울시 면적의 절반 수준이다.
게코프로젝트는 이를 '그림자 통합(Shadow Integration)'이라 설명했다. 겉으로는 산림벌채와 무관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별도의 생산 주체를 통해 원료를 조달하는 방식이라는 뜻이다.
'탄소중립 포장재'를 사용해온 헤일리온은 이번 조사 결과에 대해 "매우 우려스럽다"며 해당 공급처와 거래를 중단하겠다고 AFP를 통해 밝혔다.
아시아 심볼은 이와 관련해 지난 22일 공식 성명을 내고 "무산림벌채 정책을 유지하고 있으며, 유럽산림전용방지규정(EUDR)·산림관리협의회(FSC)·책임프레임워크이니셔티브(AFI) 기준에 맞춰 공급망 전반에 대한 실사를 강화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보도에서 언급된 '탄소중립 포장재'는 국제 기준(ISO 14068-1:2023)에 따라 인증을 받은 것이라 강조했다.
특히 원료 조달에 대해 "강화된 실사 과정에 따라 현재 집중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RGE는 펄프 공장(PRI) 및 관련 플랜테이션을 소유하거나 통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좌표까지 요구하는 산림 보호 규제...현실은 여전히 '깜깜이'
공급망 투명성과 환경 기준 충족 여부는 글로벌 시장의 중요한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이 가운데 유럽연합은 2023년 '유럽산림전용방지규정(EUDR)'을 채택했다. 2026년 말을 시작으로 기업은 실사 자료와 함께 원료 생산지 좌표를 제출하고, 산림전용과는 무관하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FSC 등 기존 인증제도가 관리 체계를 중심으로 했다면, EUDR은 개별 원목 단위까지 추적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규제가 한층 강화됐다. 이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브라질, 콩고 등 주요 열대 목재 생산국에 영향을 줄 전망이다.
다만 이러한 규제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공급망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실제 현장에서 환경·인권 보호 기준이 잘 이행되고 있는지를 검증하기는 여전히 어렵다는 우려도 있다. 특히 관련 기준이 기업의 자율적 관리에 의존하는 부분이 남아 있어, 실질적인 감독과 제재에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
소비는 우리나라, 피해는 남의 나라
우리나라 역시 공급망과 관련된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탄소중립 정책의 일환으로 확대된 바이오에너지의 공급망 리스크·산림파괴 관련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한국은 일본과 함께 세계 최대 목재펠릿 수입국 중 하나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에서 생산된 펠릿을 발전용 바이오매스 연료로 사용하고 있다. 특히 베트남산 비중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공급망이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책임이 분산된다는 점이다. FSC나 지속가능바이오매스프로그램(SBP) 같은 인증 제도도 실제 산림 훼손 여부를 완전히 확인하기는 어렵다. 펠릿은 가공 과정에서 압축돼 원산지 추적도 쉽지 않다.
특히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제도에 따라 바이오매스를 활용한 발전이 보조금을 받으면서, 발전사들이 상대적으로 값싼 수입 펠릿을 선호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이로 인해 생산지에 부담을 떠넘긴다는 비판도 나온다.
바이오연료도 비슷하다. 정부는 2015년부터 '신재생연료 혼합의무제도(RFS)'를 통해 디젤에 바이오연료를 혼합하도록 하고 있다. 이로 인해 바이오디젤 수요가 늘었고, 원료인 팜유 수요도 늘었다.

국내 기업 가운데 포스코인터네셔널은 인도네시아에서 약 15만 헥타르 규모의 팜유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GS칼텍스와 함께 현지에 정제 공장을 세워 바이오연료 원료 가공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포스코인터내셔널의 파푸아 지역 플랜테이션 사업을 둘러싼 논란도 있었다. 국내외 시민단체들은 해당 사업 과정에서 토착민의 사전 동의 절차(FPIC)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고, 지역 주민 생계 위협, 수질 오염, 공동체 갈등 등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2019년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 위반 등을 이유로 한국 NCP에 진정을 제기했다.
소비는 선진국에서 이뤄지고, 환경 부담은 생산국에 집중되는 '위험의 외부화' 구조가 반복되면서 공급망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이에 글로벌 시장에서는 지속가능한 공급망 관리가 핵심 과제로 떠오르며, 규제 강화를 요구하는 흐름이 확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