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영의 ‘지피지기’ 일본역사] 세차례 정략결혼 끝에 영부인 자리에 오르다…도쿠가와 이에야스 셋째 며느리의 파란만장 인생역정

2026. 4. 24.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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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고의 남편인 도쿠가와 막부 제2대 쇼군 도쿠가와 히데타다. [출처 : 야후재팬 화상]

고려의 창업자 왕건은 호족의 딸과 무려 스물일곱 번이나 정략결혼을 하며 이를 고려 건국과 왕권 강화에 활용했다. 중세 이후 유럽에서는 왕조 간의 혼인동맹으로 왕조의 안정을 도모하기도 했다. ‘거래의 도구’로서 이뤄진 정략결혼은 한 여성에게는 인생의 혹독한 질곡이 되기도 했다.

일본 전국시대에 횡행한 정략결혼

모략과 배신으로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는 일이 다반사였던 16~17세기 일본의 군웅, 오다 노부나가·도요토미 히데요시·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천하를 제패해 나가던 전란의 시대에는 지역 맹주인 다이묘 사이에 동맹과 복종의 증표로서 정략결혼이 횡행했다. 그 가운데서도 정략결혼을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한 인물은 노부나가였다. 노부나가는 세력 확대를 위해 이웃 미노(현 기후현)의 다이묘 사이토 도산의 딸을 부인으로 맞이하고, 오미(현 시가현) 북부의 맹주 아자이 나가마사에게는 당대 최고의 미인으로 손꼽힌 여동생 오이치를 시집 보내 동맹을 맺었다.

노부나가는 자기에게 굴복하지 않는 에치젠(현 후쿠이현) 다이묘, 아사쿠라 가게요시를 토벌하기 위해 에치젠 침공에 나서는데 이때 전혀 예기치 못한 사태가 발생했다. 매제인 나가마사의 군사들이 갑자기 노부나가를 배신하고 가게요시 측으로 돌아서 후방에서 노부나가 측에 협공을 가해 왔다. 선대 때부터 아사쿠라 가문과 동맹관계를 맺으면서 신뢰를 쌓아 온 나가마사는 의리와 혈연 사이에서 고심한 끝에 의리를 선택한 것이다.

고난의 어린 시절을 보낸 아자이 가문의 세 자매 차차, 오하쓰, 오고. [출처 : 야후재팬 화상]

천애의 고아 신세가 된 세 자매

구사일생으로 퇴각에 성공한 노부나가는 전열을 가다듬어 보복에 나서는데 나가마사와 그의 부친은 자결시키고 그의 아들 만푸쿠마루는 처형했다. 나가마사와 오이치 사이에서 태어난 차차와 오하쓰 그리고 오고 세 자매는 졸지에 부친을 잃고 집안은 멸문지화를 당했다. 이때 장녀 차차의 나이는 여섯 살, 차녀 오하쓰는 네 살, 막내딸 오고의 나이는 두 살도 채 되지 않은 갓난아기였다. 오이치는 노부나가 사망 후에 그의 가신, 시바타 가쓰이에와 재혼하게 되는데 그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와의 후계 경쟁에서 패배하면서 가쓰이에와 오이치 부부는 동반 자결하는 상황에 내몰린다. 재혼한 지 불과 1년 남짓 기간 사이에 벌어진 비극이었다. 모친과 계부를 잃은 세 자매는 졸지에 천애의 고아 신세가 되었다.

오하치는 자결을 앞두고 히데요시 앞으로 자필 탄원서를 보내 “세 딸은 당신의 주군이었던 노부나가의 혈육인 만큼 보호해 달라”고 간곡하게 요청했다. 히데요시는 그녀의 요청을 받아들여 세 자매의 후견인이 되었다. 히데요시는 노부나가의 조카딸 가운데 장녀인 차차에게 자신의 측실이 될 것을 요구한다. 차차는 “먼저 내 동생들의 혼처를 정해준다면 받아들이겠다”라며 조건부 수용 의사를 밝혔다. 일본 사회에서 측실은 정실부인이 인정한 남편의 여인이며, 첩은 정실부인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남편과 관계를 맺는 여인을 말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셋째 며느리 오고. 제2대 쇼군의 정실부인, 제3대 쇼군 모친, 고미즈노오 천황의 장모, 메이쇼 천황 외조모 등 쇼군가와 천황가 양쪽을 모두 아우르며 권위와 권력의 정점에 올랐다. [출처 : 야후재팬 화상]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망으로 인생 역전의 기회를 맞은 셋째딸 오고

히데요시는 셋째딸인 오고를 가장 먼저 결혼시키는데 배우자는 오고의 이모 아들 즉 이종사촌인 사지 가즈나리였다. 그런데 가즈나리가 경쟁자 이에야스에게 편의를 제공한 일이 발각되어 이에 격노한 히데요시는 결혼한 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은 오고를 강제 이혼시켰다. 그 이후에 오고는 히데요시의 뜻에 따라서 그의 조카 하시바 히데가쓰와 재혼하여 두 사람 사이에서 딸 사다코를 낳았다. 히데가쓰는 임진왜란 때 조선 침공에 참여하던 중에 거제도에서 병사했다.

3년 후인 1595년 이에야스를 신하로 복속시키고 도쿠가와 가문과의 유대를 강화하려는 속셈을 가진 히데요시의 명령에 따라서 오고는 이에야스의 후계자인 3남 히데타다와 혼인하여 이에야스의 셋째 며느리가 되었다. 오고는 히데타다보다 6년 연상에다가 세 번째 결혼이었기 때문에 이에야스는 이런 결혼이 내키지 않았으나 권력자 히데요시의 뜻을 거스를 수 없어 결국 이를 수용했다. 이후 첫째 딸 센히메를 비롯해 이에미쓰, 타다나가 등 2남 5녀를 두었다.

그런데 히데요시의 뜻에 따라 무려 세 차례에 걸쳐 정략결혼을 강요당하며 불우한 삶을 살던 오고에게 히데요시의 사망(1598년)은 인생 역전의 기회가 되어 찾아왔다. 1600년 도요토미 히데요시파와 도쿠가와 이에야스파 사이에서 벌어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시아버지 이에야스는 권력을 장악하며 쇼군 자리에 올라 에도막부를 열었다(1603년).

그로부터 2년 후에는 이에야스가 자신의 후계자인 3남 히데타다에게 쇼군 자리를 물려주자 히데타다의 정실부인 오고는 마침내 에도성의 안주인으로서 도쿠가와막부의 ‘영부인’으로 등극하게 되었다. 그 후에 아들 이에미쓰가 3대 쇼군이 되고 딸 가즈코는 고미즈노오 천황에게 시집가서 황비가 되었다. 가즈코의 딸은 부친의 양위에 따라서 메이쇼 천황으로 즉위한다.

이로써 오고는 2대 쇼군의 정실부인, 3대 쇼군의 모친, 고미즈노오 천황의 장모, 여성 천황 메이쇼의 외조모가 되어 천황과 쇼군 양쪽을 모두 아우르며 권위와 권력의 정점에 오른 여성으로서, 고난의 초년 인생에서 말년에 대운을 거머쥔 사례로 일본 역사에 기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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