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이데올로기’ 시대,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환상의 실재와 대면하기[서영채의 인문 디톡스]

2026. 4. 24.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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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영채의 인문 디톡스 - (5) 터보 장착 정신분석학;지젝의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
무의식 다루는 ‘정신분석학’ 태생부터 불온한 존재
인간의 이성을 넘어 움직임을 만드는 ‘이데올로기’
현실 자체를 무서운 꿈으로부터의 도피처로 제공
가짜는 거룩해도 가짜… 현실 제거하면 공허·침묵만
모든 문제를 자본주의 탓으로 돌리는 것도 비판 대상

1.정신분석학은 태생부터 불온한 존재였다. 무의식을 다루는 학문이라는 점에서 그랬다. 의식이란 있거나 없거나 하는 것이지, 무의식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은 대체 무슨 말인가. 프로이트는 이런 반응에 대해 꿈이라는 텍스트를 들이밀었다. 당신의 꿈은 누가 연출한 것인가. 당신 자신인가 유령인가. 이에 대해 프로이트가 제시한 답이 곧 무의식이었고, 그것을 다루는 학문이 심리학과 구분되는 정신분석학이었다.

무의식은 그 존재 자체가 문제적이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또 다른 내가 내 안에 존재하고 있다는 프로이트적 발상은, 이성을 지닌 자율적 존재라는 근대적 인간상에 치명적인 타격이 되는 까닭이다.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라캉은 구조주의 언어학 및 서구 철학의 주류와 접합시킴으로써 프로이트 이론의 묵직한 타격감을 또 다른 방식으로 증폭시킨다. 라캉에 따르면, 무의식이 만들어 내는 정신적 문제들은 치료가 필요한 특별한 증상이기보다는 그 자체가 인간 일반의 존재 조건이 된다.

지젝은 라캉의 이론에 사회 비판적 문제의식을 더함으로써 정신분석학의 불온함에 터보 엔진을 달아 놓는다. 지젝이 구사하는 이론의 두 바퀴는 라캉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이고, 두 바퀴의 연결축은 헤겔 철학이다. 지젝의 헤겔은 프로이센 왕국의 국가 철학자 헤겔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다. 라캉주의와의 접합이 헤겔을 철학적 힙스터로 만드는 까닭이다. 유사-진화론처럼 하늘을 향해 올라가던 정반합의 행로가 바닥을 향하기 시작하고, 부정성과 함께 머물고자 하는 주체의 의지가 절대성의 거룩함으로 변모한다.

거인들의 사상을 바라보는 지젝의 독창성은, 통념을 뒤집어 놓거나 겹쳐 놓음으로써 새로운 이론적 울림을 만들어 낸다는 점에 있다. 터보 엔진의 질주가 풍경을 새롭게 한다. 생생해진 철학은 거꾸로 정신분석학을 사회 비판의 도구로 소환함으로써 독자들을 독특한 이론의 광야로 인도한다. 그런데 그곳에 꽃밭이 펼쳐진다. 대상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 응시의 심연이 만들어 내는 꽃밭.

2.‘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은 지젝이 40세에 영어로 낸 첫 책으로, 그를 사상계의 총아로 만들어 준 저작이기도 하다. 그는 현재까지 50여 권이 넘는 책을 펴낸 다작의 저술가이지만, 사상의 기본 틀은 이 책에 예비되어 있다. 포스트이데올로기 시대 사상의 존재 방식을 라캉주의 정신분석학의 틀로 비판함이 곧 그것이다.

책의 첫머리는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프로이트를 마르크스 위에 겹쳐 놓는 것으로 시작한다. 증상의 발견자는 프로이트가 아니라 마르크스였다는 라캉의 말이 모티프가 된다. 정신의학자가 아니라 정치경제학자가 증상의 발견자라고? 지젝은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겹쳐 놓는다. 둘 모두 불세출의 저작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자본주의와 인간의 무의식 사이의 거리가 가깝다고 할 수는 없다. 둘은 어떤 점에서 겹침의 대상이 되는가.

상품 분석과 꿈 분석 사이의 상동성은 각각의 형식에 있다 함이 지젝의 대답이다. 그는 상품 생산의 일반 형식과 꿈의 문법 일반을 겹쳐 놓음으로써 상동성의 핵심에 도달한다. 상품이 있기 위해서는 시장과 교환이 있어야 하고, 꿈이 있기 위해서는 꿈 만들기의 공통 기법이 있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구체적인 꿈의 내용이 아니라 꿈을 만드는 무의식 일반의 틀이다. 상품 역시 마찬가지다. 상품이라는 일반 구조물을 만드는 등가교환의 형식이 핵심이다.

인간의 무의식과 자본주의 정치경제학이 병치됨으로써, 의학 용어인 증상은 개인 병리의 차원에서 사회적 증상으로 도약한다. 잉여 가치를 향한 시장의 갈증은 자본주의 생산 양식을 가동시키는 원인으로 작동한다. 만족을 모르며 끝없이 대상 주변을 배회하는 잉여 향락은 인간 욕망의 기본 연료가 된다. 잉여가 없으면 가치도 향락도 존립할 수 없다. 이 둘이 포개지는 곳에서, 잉여 가치를 향한 공동체의 잉여 향락이 작동한다. 무의식이 개인의 차원을 넘어 근대성의 정치경제적 레짐 속에서 작동하는 공동체의 무의식으로 전화되는 것이다.

바로 이런 대목에서 이데올로기의 작동 방식에 대한 지젝의 분석은 힘을 발휘한다. 그에 따르면, 이데올로기는 인간의 의식이나 이성의 차원이 아니라 몸과 무의식, 정동의 움직임이 만들어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분석도 당연히 그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3.헤엄치지 못하는 전갈이 개구리에게 등에 태워 강을 건너 달라고 했다. 개구리는 독침에 찔릴까 무서워 싫다고 했다. 전갈이 말했다. 너를 찌르면 나도 물에 빠져 죽는데 왜 그런 바보짓을 하겠어. 옳게 생각한 개구리가 전갈을 태우고 강으로 들어갔다. 중간에 이르러 물살이 거칠어지자 움찔 놀란 전갈이 자기도 모르게 개구리를 찌르고 말았다. 죽어 가는 개구리가 말했다. 아, 뭐야, 안 찌른다며? 물에 빠져 죽어 가는 전갈이 답했다. 미안해, 나도 어쩔 수가 없었어.

지젝이 자주 인용하는 이 우화는 몸의 차원에서 작동하는 이데올로기의 수준을 보여 준다. 이데올로기란 참다운 인식을 가로막는 허위의식도 아니고, 구조적으로 덧씌워진 색안경 같은 것도 아니다. 그에 따르면, 사람의 몸이 이데올로기를 원한다. 무의식의 능동성이 주체의 수동성을 대체해 버린다. 이데올로기라는 환상은 현실 유지의 필수물이어서 사람들은 그 안에 있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즐기고 있다는 것도 문제가 된다. 이데올로기를 건드리면 사람들은 화를 낸다. 은밀한 즐거움에 방해가 된 까닭이다. 그것이 이데올로기적 향락의 차원이다.

따라서 이데올로기는 참다운 인식을 위한 계몽이나 계도 같은 것으로 해결될 수 없다. 끈질기게 살아남는 잉여 향락은 주체의 입을 통해 말한다. 안다 알아, 그래도 나는 빨간색이 싫다, 내가 이렇게 생긴 것을 어쩔 수가 없다.

이데올로기의 기능은 현실로부터 도피처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 자체를 도피처로 제공하는 것이다. 무엇으로부터? 무서운 꿈으로부터! 히피들은 말했다. 현실은 꿈을 지탱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이데올로기는 말한다. 꿈을 꾸지 말고 일을 해라. 잡생각하지 말고 주어진 일에 몰두해라.

4.그런데 왜 이데올로기가 숭고한 대상인가. 칸트의 숭고는 신의 형상을 만들지 말라는 구약의 종교에 정서적 바탕이 있다. 무서운 존재에 대한 공포가 거룩함의 핵심이다. 반면, 헤겔의 숭고는 처참한 실패의 흔적이다. 고결한 신이 사람의 썩어질 몸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비참하게 처형당한 하잘것없는 인간 존재의 나약함 속에 신이 있다. 무한성과 유한성의 실패한 결합 속에서 신의 뜻이 구현된다. 고통 속에서 피 흘리며 죽어 간 진실의 작은 조각이 곧 헤겔적 숭고의 대표적 형상이다.

현실을 제거해 버리면 남는 것은 공허와 침묵이다. 그것을 방어하는 이데올로기는 가짜이되 거룩한 가짜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숭고한 환상의 실재와 마주 서는 것이다. 가짜는 거룩해도 가짜이기 때문이다. 지젝은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비판자이기도 하다. 특정 사회 현상을 일반화하는 그릇된 보편화 못지않게 모든 문제를 자본주의 탓으로 돌리는 성급한 역사화도 비판 대상이 된다. 중요한 것은 환상 속의 저 일그러진 진실과 맞대면하는 일이다.

문학평론가

인물 설명
슬라보예 지젝 (1949∼)

1981년, 사회주의 체제의 사상 통제 속에서 헤겔을 주제로 류블랴나대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85년, 파리 제8대에서 정신분석학으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구권이 해체되던 1990년에는 슬로베니아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다. 사회주의 이념에 비판적이지만 정통 마르크스주의를 자처하기도 한다. 영국의 한 잡지는 그를 철학계의 엘비스 프레슬리라 칭했다. 한국어로 번역된 책은 현재까지 30여 권을 웃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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