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BTS 아리랑, 민족의 노래에서 세계의 언어로
이윤선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전남도 문화재전문위원

BTS의 아리랑에 대해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광화문 공연에 이어 세계적으로 아리랑 떼창과 떼춤이 일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2026년 봄 광화문 광장은 거대한 음향적 제단이었다. 아리랑이라는 우리 민족의 정서적 유전자가 세 번째 대 확산을 시작하며 세계 문명사에 정식으로 탑재되는 역사적 순간이라고나 할까. 나는 이 현상을 기업의 이익이나 글로벌 산업의 논리로만 보지 않는다.
물론 HYBE라는 거대한 시스템과 방탄소년단이라는 플랫폼이 작동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이 이 사건의 전부일 수 없다. 오히려 이것은 폭력과 지배의 언어를 넘어선 비폭력 공명과 집단적 감응으로 세계와 연결되어 온 한국적 에너지, 예컨대 3·1운동에서 촛불로, 그리고 빛의 혁명에 이르는 새로운 매체를 통해 번역되는 과정이라 보고 싶다. 이 점을 주목하여 벌써 여러 차례 귀한 지면을 할애한 바 있다. 매판자본과 기업의 성공 이전에 아리랑이 수백 여년 아니 수천 년을 가로지르며 시대마다 다른 방식으로 세계와 관계를 맺어 온 사건임을 거듭 강조해두고자 한다.
고려가요 청산별곡(靑山別曲)과 불교 구음 라리련(羅梨連)으로부터
조선 후기 사당패나 보부상 등 전기수(이야기꾼)들을 이어받은 경복궁 중수기의 1차 확산, 나운규 영화 아리랑의 2차 확산, BTS의 3차 확산, 오늘은 그 연원을 더 거슬러 올라가 아리랑의 기원이랄까, 그 출처에 대해 내 방식으로 명토 박아 두고자 한다.
아리랑의 심층 기원론은 세 가지 줄기의 혈통을 갖고 있다. 내 제자들이나 후배들이 이를 받아서 다양한 논문으로 비판하고 보완해주기를 희망한다.
첫째, 음악학자 김영운은 아리랑의 후렴구인 '아라리'의 원형을 고려가요 '청산별곡'에서(국악신문 참고) 찾는다. 고려인의 고독과 유랑을 노래한 '청산별곡'의 후렴구 '얄리얄리 얄라성 얄라리 얄라'가 근거이다.
'얄라리'와 '아라리'의 음운적 상관관계에 주목하는 것은 이것이 단순한 의성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리듬과 호흡의 측면에서 볼 때 혀를 굴리며 내는 유음(流音)의 반복은 슬픔을 승화시키는 고도의 음악 장치다.
고려 민중들이 삶의 고단함을 잊기 위해 읊조렸던 낙천적이고도 애잔한 후렴구가 시대를 거치며 민중의 입술을 타고 '아리랑'의 "아라리"로 전이되었다는 주장이다.
즉, 아리랑은 고려 시대의 세속적 슬픔을 위로하던 노래의 혈통을 가지고 있다. 이를 거슬러 올라가면 신라의 향가나 더 이전 구리(고구려)의 노래에 가 닿을 수 있다.
둘째, 전경욱은 저서 '아라리의 기원을 찾아서'(고려대출판부, 2019)를 통해 파격적인 가설을 제시했다.
아리랑의 후렴구가 불교 염불의 구음(口音)인 '라라리'와 '라리련(羅梨連)'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전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범패(梵唄) 등 불교 음악에서 신성한 에너지를 고취하기 위해 사용하던 이 구음들이 사찰의 담장을 넘어 민간으로 흘러나왔다.
민초들은 고통스러운 삶의 현장에서 성스러운 부처의 소리를 자신들의 언어로 치환했다. '라라리'가 '아라리'가 되고, '라리련'이 '아리랑'이 되는 과정은 종교적 신성이 민중의 보편적 정서로 육화(肉化)되는 과정이었다.
이 이론은 아리랑이 단순한 유희요가 아니라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부르는 '치유와 천도(薦度)'의 노래였음을 시사한다.
셋째, 우리가 익히 아는 정선 아우라지의 토속 민요다. 전자들의 기원을 전제한다면 고대의 DNA를 담은 아리랑이 강원도 정선 두메산골에 마지막까지 잔존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정선 아우라지는 지명 자체가 '물이 합쳐지는 곳'을 뜻한다. 하지만 뗏목을 타고 한강 등 타지역으로 떠나야 했던 이들의 '이별의 장소'라는 점에 지리적 미학이 있다. 정선의 산비탈에서 돌밭을 일구며 부르던 거친 소리가 뗏목꾼들의 입을 타고 물길 따라 경기도와 충청도, 전라도로 퍼져나갔다.
이 문명사적 좌표를 다시 짧게 정리해둔다. 경복궁 중수의 제1차 확산기는 '국가적 음향'의 탄생이라 할 만하다. 19세기 중후반, 대원군의 왕권강화 의지에 동원된 전국 각지의 노동자들이 아리랑(특히 정선아라리)등을 통해 광화문 앞에서 충돌하고 섞였다.
지역의 토속 노래가 '국가적 프로젝트'라는 공적 공간에서 울려 퍼지며 비로소 민족 전체의 '대표곡' 지위를 획득한 기간이다.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의 제2차 확산기는 '표준화된 음향'의 탄생이라 할 만하다.
1926년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은 노래에 영상과 서사를 덧입히고 한때 본조아리랑이란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던 서울(경기)아리랑을 탄생시켰다. 식민지 지배라는 집단적 트라우마를 겪던 민중들에게 이 아리랑은 '저항의 암호'로 각인되었으며 전국적으로 표준화되었고, 한민족이라면 누구나 부를 수 있는 '감정의 공용어'가 되었다.

남도인문학팁
방탄소년단(BTS)의 아리랑: 현대적 크로스오버의 정수
방탄소년단이 2016년 KCON 프랑스 무대 등에서 보여준 아리랑 커버와 이번 2026년의 새로운 시도들은 우리 음악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들의 음악적 디테일에 대해서는 지면을 달리하여 분석하고 있지만, 전형이 어떻게 현대의 팝 문법으로 번역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3소박(세마치장단 등)을 현대적인 4/4박자 트랩 비트와 결합한 하이브리드는 애니메이션 케데헌의 골든을 분석하며 언급한 바 있다(관련 내 칼럼을 참고). 국악 특유의 '밀고 당기는' 호흡을 힙합의 묵직한 베이스 드럼 위에 얹어서 전통의 '흥'을 현대의 '스웨그(Swag, 힙합의 멋)'로 치환했다.
이 과정에서 진도아리랑이 제외되어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크다. 어쨌든 가장 원초적인 카타르시스를 글로벌 리스너들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전달하기 위해 고안한 기술을 탑재하였다. 이외 보컬과 래핑의 만남이라던지 텐션과 몽환의 분위기를 섞은 화성 등 거론할 지점들이 한둘이 아니다.
1896년 미국 워싱턴에서 최초로 녹음된 '아리랑'과 일곱 명의 한인 유학생들의 서사를 입힌 것도 신의 한 수였다. BTS의 성공은 단순히 음반 판매량의 성공이 아니다. 그들이 이룬 성과는 한국의 유산을 세계인이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정서적 코드'로 만들었다는 점에 있다.
아리랑은 이제 세계인의 마음을 연결하는 '정서적 인터-네셔널(국가와 국가 사이)', 아니 사실은 (재)아시아인문재단 이사장 김성종이 고안했던 대로 인터-로컬(지역과 지역 사이)이 되었다. 한국이라는 K가 세계로 수출된다기보다 아우라지와 서울의 슬픔이 세계와 만나 업그레이드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고려 시대와 그 이전의 절망을 위로하던 '얄라리'의 숨결, 부처의 가르침을 민중의 노래로 녹여낸 '라리련'의 성스러움, 아우라지의 거친 물길을 견뎌낸 뗏목꾼의 투박한 진심, 이 모든 역사를 껴안고 글로벌 무대에서 당당히 울려 퍼지는 방탄소년단의 비트까지, 아리랑은 단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
그것은 늘 이동 중이었고 변신 중이었다. 이번 아리랑 음반 로고 디자인도 한글은 물론 태극기의 괘를 상기할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그 성과가 크다. 우리는 이제 아리랑을 통해 세계와 대화한다. 아리랑은 한국의 노래를 넘어 인류가 공동으로 소유한 '그리움과 회복의 문법'이 되었다.
지난번 나는 '그리움이 있는 한나절'이라는 프로젝트를 제안한 바 있는데 차제에 이를 글로벌한 기획으로 확장해나가야겠다. 상처 입을 수밖에 없는 세계의 청춘들이 스스로 둘러 입은 갑옷처럼, 전쟁의 위기를 넘어서는 위대한 노래의 행진에 우리 모두 각자의 '아라리'를 얹어 부를 때 비로소 진정한 '문화 공명'의 세계를 맞이하게 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