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이왕이면 폼나게! [등산 패션왕 북한산 백운대]
등산복은 생존을 위한 '최첨단 장비'다. 또 누군가에게는 자신을 표현하는 '가장 편안한 일상복'이다. 고가의 전문 의류부터 가벼운 운동복까지, 오늘날 등산 패션의 범주는 경계가 보이지 않을 만큼 넓어졌다. 이 폭넓은 스펙트럼의 한국 등산 패션을 담기로 했다. 산을 사랑하는 이들의 성지, 북한산 백운대와 청계산 매봉을 올랐다.

북한산 백운대는 서울을 넘어 세계적인 산행 명소다. 2026년 현재, 가장 다양한 등산 패션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거대한 '경연장'이기도하다. 변화무쌍한 등산객들의 차림새를 관찰하기 위해 어느 토요일 오전 10시, 우이동 들머리에 섰다. 입구부터 엄청난 인파가 몰려 있었다. 그들과 섞여 백운대를 올랐다. 그 속에서 유독 눈에 띄는 스타일을 가진 이들을 만나 그들의 패션을 관찰 취재했다.
북한산 백운대를 오르는 길은 가파른 오르막과 정상 부근 암릉 구간까지 난이도 상급 코스다. 이날 마주친 등산객들은 대부분 실용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했다. 과연 '베테랑'다운 면모였다. 친구, 연인과 함께 비슷하게 맞춰 입는 '시밀러룩'을 선보이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집 앞 편의점에 가듯 편안한 '트레이닝복' 차림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격식이 무엇이랴. 산을 즐기는 마음이 진심이고, 입은 이가 편안하다면 그것이 곧 최고의 등산복이다.
유럽에서 여행 온 등산 마니아 커플 맷(29·왼쪽) · 헤더(29·오른쪽)

서울로 6박7일 여행을 온 스코틀랜드·영국 출신의 커플을 만났다. 헤더는 초록빛 경량 패딩과 베이지톤의 바지로 산의 색감과 어울리는 패션을 보여 주었다. 그녀가 가진 대부분의 장비는 '마운틴웨어하우스' 제품이었다. 맷은 무릎 부분에 지퍼가 있어 반바지로도 입을 수 있는 바지와 주먹만 하게 접히는 '데카트론' 배낭을 메고 있었다. 두 사람은 맷이 먼저 신고 추천한 '살로몬' 신발을 함께 신었다. 둘은 비슷한 느낌의 경량 패딩과 차분한 색감을 활용해 감각적인 시밀러룩을 완성했다. 꾸미지 않은 듯하지만 장비의 기능은 확실히 챙긴 고수의 향기가 난다.

무채색 산길 위 초록빛 존재감조용우(37)

어두운 색상의 옷을 입은 등산객들 사이에서 재킷과 두건, 바지까지 온통 초록색을 입은 조용우씨는 단연 눈에 띄었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북한산을 찾았다는 그는 "평소 초록색을 좋아해 산에 올 때면 종종 이렇게 입는다"고 말했다. 그는 등산을 위해 따로 의류를 구입하기보다 평소 가진 옷 중 활동성 좋은 옷을 골라 입는 편이다. 채도 높은 초록색 바지와 톤 다운된 포레스트 그린 바람막이를 조합해 지루하지 않은 톤온톤 코디를 완성했다. 여기에 패턴이 들어간 초록색 두건을 더해 자칫 밋밋할 수 있는 올 그린 패션에 확실한 포인트를 주었다.

동기들과 웃음 가득한 첫 북한산양성재(26)

대학 동기들과 함께 생애 첫 북한산 산행에 나섰다. 아이젠을 못 챙겨와 애를 먹었지만, 친구들과 함께하니 이 또한 웃음 가득한 추억이 된다. 양성재씨는 바위산의 회색빛 사이에서 눈에 띄는 선명한 파란색 경량 패딩을 입었다. 검은 바지 위로 하얀 양말을 올려 신은 모습에서 남다른 감각이 느껴진다. 도심에서 패션용으로 신던 '로아' 등산화를 처음 산에서 개시했다. 전체적으로 젊은 나이답게 가볍고 경쾌한 느낌이 돋보이는 룩이다. 가장 아끼는 '클라터 뮤젠' 배낭은 무거워서 함께 온 친구에게 잠시 넘겨주었다.

산행 마니아 부부의 자연스러운 커플룩김보람(43·왼쪽)·김동선(44·오른쪽)

너른 바위 위에 접이식 의자를 펴고 샌드위치를 즐기던 이들은 한 달에 두 번 이상 산을 찾는 산행 마니아 부부다. 백운대 방문은 벌써 네 번째다. 아내 보람씨는 블랙 앤 화이트 코디에 갈색 헤어밴드를 착용해 세련된 포인트를 주었다. 남편 동선씨는 바람막이와 바지 모두 차분한 베이지 톤으로 맞춰 입었다. 평소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를 좋아한다는 부부의 취향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너무 튀지 않으면서도 세련된 색 조합으로 자연스러운 멋을 보여 준 커플룩이다.

30cm 흉터의 커스텀 배낭정홍철(67)

"북한산은 손금 보듯 훤히 알고 있다"는 그는 수십 년째 백운대를 오르내리는 단골손님이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그의 배낭이었다. 물병을 쉽게 꺼내려 옆구리를 찢어 지퍼를 달았다. 덕분에 거친 30cm 흉터가 생겼다. 옷차림 역시 화려한 원색 대신 차분한 회색 플리스를 선택해 실용성을 챙겼다. 유명 브랜드의 제품은 아니지만 찬바람을 막고 체온을 유지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편한 대로 고쳐 만든 맞춤 장비와 차분한 색감의 코디에서 중년 산꾼의 듬직한 멋이 느껴진다.

야무지고 든든한 '젊은 산꾼' 스타일서원대 산악부 장수빈(21·왼쪽) · 청주대 산악부 인현주(23·오른쪽)

충북산악연맹에서 봄맞이 암벽 등반을 위해 북한산을 찾았다. 눈 때문에 원래 계획했던 '비둘기길' 등반은 포기하고 백운대를 오르기로 했다. 머리 위로 솟은 배낭 높이에서 예사롭지 않은 구력이 느껴진다. 자일과 등반 장비가 들어 있는 38L 중대형 배낭은 그 무게만도 상당하다. 수빈씨는 밝은 베이지색 바람막이에 일상복으로도 활용 가능한 얇은 기능성 바지를 입었다. 그 안에 레깅스를 겹쳐 입어 방한 대비를 했다. 현주씨는 차분한 검은색 옷차림에 청록색 배낭으로 시원한 포인트를 주었다. 둘의 야무진 준비성과 젊은 산꾼다운 든든한 스타일이 돋보인다.

때늦은 설산엔 화이트 톤채란(33)

백운대피소를 지나 이어지는 계단길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한 커플을 마주쳤다. 채란씨는 오랜만에 남자친구와 함께 북한산을 찾았다. 흰색의 재킷이 하얀 설산과 잘 어울린다. 가장 아끼는 '도이터' 배낭은 원래 트레일러닝용으로 나온 조끼 형태의 제품이다. 조끼형 배낭 앞쪽에 물병을 넣고 수시로 마실 수 있어 산행에도 유용하게 쓰고 있다. 배낭의 화사한 민트색은 전체적인 코디에 싱그러운 활기를 더해 준다. 무겁게 차려입기보다 가벼운 장비들을 적절히 조합한 덕분에 산속의 시원한 공기가 느껴지는 듯 경쾌한 차림이 완성됐다.

월간산 4월호 기사입니다.
Copyright © 월간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