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딱 맞는 옷 같은 산 [등산 패션왕 청계산 매봉]

정유진 2026. 4. 24.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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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번 오른 ‘단골손님’ vs 생애 첫 산행 ‘등린이’

청계산은 친근하다. 서울 강남구와 서초구 주민들에게는 든든한 '동네 뒷산'이다. 평일임을 감안해도 북한산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한산했다. 신분당선 '청계산 입구'역을 빠져나오는 등산객들을 본다. 산에 가는 것인지, 일상을 걷는 것인지 확신하기 어려울 만큼 차림새가 가볍다.

청계산을 찾는 이들은 크게 두 부류다. 먼저 내 집 드나들 듯 청계산을 수십, 수백 번 오른 '단골손님'들이다. 또 다른 부류는 낮은 난이도를 찾아 온 '등린이'들이다. 청계산 매봉까지는 왕복 3시간이면 충분하다. 길도 잘 닦여 있다. 가볍게 오르내리기 좋은 만큼 옷차림 역시 가볍고 자유롭다. 등산복과 러닝복, 그리고 일상복의 모호한 경계가 청계산 특유의 편안함을 대변한다.

올블랙 코디에 핑크색 포인트김성미(34·왼쪽) · 최필환(39·오른쪽)

멀리서 보았을 때 연인처럼 보였지만 둘은 기분 좋게 웃으며 관계를 부정했다. 평소 아웃도어 브랜드 살로몬을 가장 좋아한다는 필환씨는 몸에 딱 맞는 날렵한 핏의 올블랙 코디로 안정감 있는 패션을 보여 주었다. 그가 직접 소개한 배낭과 바지, 신발 역시 모두 살로몬 제품이다. 성미씨는 검은색 바람막이와 어두운 색상의 레깅스로 톤을 맞추고 핑크색 줄무늬 양말로 확실한 포인트를 주었다. 그녀는 활동성이 좋은 레깅스를 평소에도 즐겨 입는다. 두 사람의 수줍은 미소에서 기분 좋은 봄기운이 느껴진다.

산을 달리는 청춘의 '날렵한' 스타일김영제(24)

등산보다는 러닝을 좋아한다는 김영제씨를 만났다. 그의 연두색 후디가 산길 위에서 시선을 사로잡는다. "동네 친구들과 자주 산에 와요." 평소 즐겨 입는 러닝 의류를 산에서도 그대로 입는다. 배낭이나 물병도 없이 가볍게 정상을 찍고 빠르게 하산하는 것이 그의 산행 스타일이다. 푸릇푸릇한 연두색 후디는 무채색 위주의 초봄 산길에 젊고 활기찬 기운을 불어넣는다. 운동화 위로 길게 올려 신은 양말과 데카트론 선글라스까지, 당장이라도 산길을 뛰어갈 듯 가벼운 운동복 차림이 인상적이다.

일상의 편안함을 담은 '산뜻한' 산행 스타일유소연(27)

흙의 기운을 받기 위해 청계산을 찾았다는 유소연씨를 만났다. 산행 경험은 거의 없지만, 함께한 베테랑 친구 덕에 발걸음이 든든하다. 소연씨는 하얀 패딩 조끼와 베이지색 바지를 맞춰 입어 깨끗하고 환한 느낌을 연출했다. 나일론 상의 위에 조끼를 겹쳐 입어 활동성을 높였다. 방한용 장갑까지 챙긴 실속 있는 차림이다. 꽉 끼는 등산복 대신 선택한 통 넓은 트레이닝복 바지는 마치 동네 산책을 나온 듯한 여유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전문 의류가 아니더라도 가볍고 일상적인 옷들만으로 멋스럽고 산뜻해 보인다.

러닝 장비와 함께한 첫 산행이정선(29)

생애 첫 산행을 위해 청계산을 고른 이정선씨는 러닝 기어를 활용한 영리한 코디를 선보였다. 원래 관악산을 가고 싶었으나 경험이 부족해 연습용 코스로 청계산을 선택했다. 등산과 러닝을 병행하기 좋은 'rnrn' 배낭을 메고 산을 찾았다. 연한 회색 바지와 하얀색 플리스, 사이사이 하늘색 포인트 덕에 시원하고 경쾌한 느낌이 가득하다. 밝은색 의류 위에 검은색 조끼형 배낭을 착용해 실용적인 산행 룩을 완성했다.

취향대로 메고 모인 청계산 단골들 최명우 · 김서영 · 한진주(왼쪽부터)

그라트 라이제 25L, 오스프리 하이크라이트 18L, 아크테릭스 인덱스 15L (왼쪽부터)

세 사람은 청계산의 단골손님이다. 셋은 '하산 후 메뉴'를 고민하며 산행의 소박한 재미를 나누고 있었다. 명우씨는 호랑이 인형이 달린 선명한 주황색 배낭으로 다정하고 장난기 어린 성격을 드러냈고, 서영씨는 체크무늬 셔츠에 검은색 패딩 조끼와 레깅스를 매치해 세련된 일상복 느낌을 연출했다. 진주씨는 강렬한 빨간색 후디에 은은한 연녹색 배낭으로 화사함을 더했다. 세 사람의 패션에서는 산책하듯 가볍게 산을 즐기는 여유가 공통적으로 느껴진다.

대구에서 온 열혈 자매이순녕(55·왼쪽) · 이혜영(49·오른쪽)

블랙다이아몬드 트레일 블리츠 12(왼쪽), 아크테릭스 에어리어스 30(오른쪽)

청계산을 오르려 대구에서 출발했다는 이순녕씨와 이혜영씨를 만났다. 둘은 100명산을 도전하고 있는 자매다. 순녕씨는 하얀색 양털 점퍼에 검은색 바지를 입었다. 가벼운 산행에 딱 맞는 작고 콤팩트한 배낭으로 코디를 마무리했다. 동생 이혜영씨는 회색 상의에 짙은 밤색 바지를 입었다. 언니보다 조금 더 크고 듬직한 회색 배낭을 멨다. 가장 아끼는 배낭이라며 등을 돌려 자랑한다. 두 사람 모두 원색 대신 하얀색, 회색, 검은색 같은 차분한 색상의 코디를 보여 주었다. 나란히 서 있는 두 자매의 뒷모습에서 오랜 시간 함께 길을 걸어온 조화로움과 편안함이 묻어난다.

두 베테랑의 블루 톤 우정 황의섭(81·왼쪽) · 박승대(80·오른쪽)

도합 161세의 두 베테랑에게 청계산은 수십 년간 함께 찾은 단골집이다. 두 사람은 푸른색 재킷을 나란히 맞춰 입고 있었다. 20L쯤 되는 비슷한 크기의 배낭도 나란히 함께 했다. "당일 산행에 딱 좋다"며 오랜 세월 함께한 배낭을 뒤돌아 보여 준다. 햇빛을 가려주는 카키색 벙거지 모자가 인상을 한층 부드럽고 환하게 만들어준다. 화려한 유행을 따르기보다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고 편안한 차림이 무엇인지 아는 베테랑들의 품격 있는 우정 패션이다.

월간산 4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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