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신발' 올버즈, 운동화 버리고 GPU 임대업 선언…주가 6배 폭등 후 반토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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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센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부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까지, 한때 실리콘밸리 유명인들의 발을 감쌌던 친환경 운동화 브랜드 올버즈(Allbirds)가 지난 4월 15일(현지시간) 돌연 AI 기업 변신을 선언했다. 주가는 하루 만에 582% 치솟았다가 곧바로 폭락했다. 장중에는 700% 넘게 폭등하기도 했다.

4월 15일 올버즈는 "신발 사업을 정리하고 AI 컴퓨팅 인프라 기업으로 전환한다"는 내용이었다. 사명도 '뉴버드 AI(NewBird AI)'로 바꾼다고 밝혔다. 익명의 기관투자자에게서 5000만 달러(약 740억 원) 규모의 전환사채를 발행해 고성능 GPU를 매입하고, 대형 클라우드 업체에 접근하지 못하는 중소기업들에게 AI 연산 능력을 장기 임대하는 사업을 하겠다고 했다. 주주총회 승인은 5월 18일 예정이다.
발표 전날 종가는 2.49달러였다. 당일 장중 최고 24.31달러까지 치솟았고 마감가는 16.99달러를 기록했다. 시가총액은 하루 사이 2100만 달러에서 1억 5000만 달러 가까이 불어났다. 다음날 주가는 25% 가까이 급락했다. 올버즈는 연이어 하락세를 이어가며 4월 22일 현재 5거래일 만에 8.43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올버즈, 제품·환경·빠른 성장이 겹친 3중 실패
올버즈의 변신 선언이 나오기까지는 10년간의 추락이 있었다. 창업자 팀 브라운은 뉴질랜드 대표팀 주장 출신 프로 축구선수였다. 2014년 '크라우드 펀딩' 킥스타터에서 단 5일 만에 12만 달러를 모았고, 2016년 정식 출시한 '울 러너'는 TIME이 '세상에서 가장 편한 신발'로 선정했다. 5년 만에 연매출 3억 달러. 실리콘밸리 테크 문화의 유니폼이 됐다.

다만 출시 이후 대중에게 팔리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속출했다. 제품에 관한 불만이 가장 컸다. 소비자 리뷰에는 "1년도 안 돼 앞코에 구멍이 생겼다"는 불만이 반복됐고, 젖은 노면에서 미끄러지거나 밑창이 갈라지는 내구성 문제도 잦았다. 특히 150달러짜리 신발이 슬리퍼 수준이라는 평이 퍼지면서 신규 구매자가 줄었다. 러닝화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기 시작한 스위스 브랜드 온(On)과 호카(HOKA)가 성능과 디자인으로 치고 들어오자 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이에 올버즈는 "색깔을 더 다양하게"라는 답을 내놨다. 매 시즌 같은 실루엣을 다른 색으로 내놨고 반응은 좋지 않았다. 러닝화·재킷·레깅스까지 손을 뻗었다가 전부 실패했다. 울 소재 재킷·드레스는 외면받으며 약 1300만 달러어치가 창고에서 헐값에 처분됐다.
'친환경' 브랜딩에도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제품 소재는 친환경이었을지 몰라도, 뉴질랜드에서 양털을 깎아 밀라노로 보내 직조하고, 다시 한국으로 보내 신발을 만든 뒤 미국으로 들여오는 공급망 자체의 탄소발자국이 지적되기 시작했다. 탄소 배출량 상쇄 역시 실제 감축이 아닌 탄소 크레딧 구매에 크게 의존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미국 동물권리보호 단체인 페타(PETA)는 양 복지 문제를 들어 그린워싱 소송을 제기했고,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친환경이라고 샀는데 신발은 금세 망가져 쓰레기가 되고 새 신발을 사야 한다"는 냉소가 확산됐다.

상장 이후 빠른 성장도 올버즈에 독이 됐다. 올버즈는 2021년 상장 이후 전 세계 수십 개 매장을 동시에 열었고, 재고 부담과 임차료로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었다. 2022년 2억 9800만 달러였던 매출은 2025년 1억 5200만 달러로 반 토막 났고 누적 손실만 1억 7000만 달러를 넘어섰다. 결국 2026년 2월 미국 내 전 직영 매장 문을 닫았고, 지난달 신발 브랜드 지식재산권을 아메리칸 익스체인지 그룹에 3900만 달러에 넘겼다. 상장 당시 기업가치의 100분의 1도 안 되는 가격이었다.
몰락은 더욱 씁쓸한 모습이었다. '지속가능성이 모든 걸음에'를 외치던 회사가 주주들에게 정관의 '환경 보전 공익 목적' 문구를 삭제해달라고 요청했다. AI 데이터센터는 에너지 집약적 산업이다. 환경 공약과 GPU 임대업은 애초에 공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GPU도, 데이터센터도, 엔지니어도 없다
올버즈의 변신에 대해 시장 전문가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르네상스 매크로 리서치는 "보도자료와 새로운 이름 외에 실체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GPU 재고도, 데이터센터도, 관련 인력도, 확보된 고객도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올버즈 경영진은 거의 대부분 패션·신발 분야 출신이고, 기술 관련 직함을 가진 임원은 10년 전 터보택스 엔지니어링팀을 이끌었던 CTO가 유일하다. 윌리엄 블레어의 애널리스트 딜런 카든은 담당 커버리지를 전격 중단하면서 "어떤 기준으로 봐도 마지막 도박"이라고 평했다. 5000만 달러 투자는 수십억 달러, 수백억 달러 설비투자가 일상인 네오클라우드(생성형 AI 학습과 추론을 위해 설계된 인프라) 시장에서 새 발의 피라는 지적이다.
그런데 올버즈 사태에서 주가 폭등보다 더 눈여겨봐야 할 건 자금 조달 구조 자체다. 익명의 기관투자자가 약속한 5000만 달러짜리 전환사채 투자를 뜯어보면 선금이 500만 달러뿐이다. 나머지 4500만 달러는 투자자 재량에 따라 집어넣는 구조다. 전환가는 주당 2.99달러인데 발표 당일 종가가 17달러였으니, 500만 달러를 넣고 6배짜리 주식으로 바꿔 팔 수 있는 셈이다.

더 무서운 건 '대체 전환' 조항이다. 일반 전환사채는 전환가가 고정돼 있어서 주가가 그 아래로 떨어지면 투자자가 전환을 못 한다. 그런데 이 계약엔 최근 10거래일 최저가의 93%로 전환가가 자동 조정되는 옵션이 붙어 있다.
예를 들어 주가가 3달러로 떨어지면 93%인 2.79달러에 전환해서 3달러에 팔고, 그 매도 물량에 주가가 2.5달러로 내려앉으면 다시 2.33달러에 전환해서 판다. 주가가 내려갈수록 전환가도 같이 내려가니 투자자는 항상 시장가보다 싸게 사서 팔 수 있다. 문제는 이 매도 물량 자체가 주가를 계속 누른다는 것이다. 하락이 다시 하락을 부르는 구조가 될수 있다.
이름만 바꾼 선배들
이런 패턴은 올버즈가 처음이 아니다. 2017년 음료업체 '롱아일랜드 아이스티'가 블록체인 기업으로 변신하며 '롱 블록체인'으로 이름을 바꿨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나중에 내부자 거래 혐의로 조사를 벌였고, 회사는 이듬해 나스닥에서 상장폐지됐다. 코닥은 2018년 자체 암호화폐 발행을 선언하며 블록체인 기업이 되겠다고 했다. 30년 넘게 노래방 기기를 팔던 '더싱잉머신즈컴퍼니'는 인도 AI 물류 스타트업을 인수하며 '알고리즘 홀딩스'로 간판을 바꿨고, 주가가 세 배 뛰었다가 이후 70% 폭락했다.

올버즈 발표 다음날에는 소셜미디어 기업 마이세움(Myseum)이 'Myseum.AI'로 사명을 바꾸며 AI 기업임을 선언하자 주가가 146% 급등하는 일도 벌어졌다. BNP파리바 웰스매니지먼트는 '2000년대 초반에는 회사 이름에 '닷컴'만 붙이면 됐다. 지금은 'AI'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고 꼬집었다.
이런 모습이 미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국내 증시에서도 블록체인·메타버스 열풍이 불 때마다 사명에 해당 키워드를 끼워 넣고 주가를 띄웠던 사례는 셀 수 없이 많았다. 지금은 그 자리를 AI가 차지했을 뿐이다. 실적도, 기술도, 고객도 없이 간판만 바꿔 단 회사들이 어떻게 됐는지는 이미 역사가 답을 내놨다. 반짝 급등 이후엔 어김없이 더 긴 추락이 기다리고 있었다. AI라는 단어가 붙어 있다고 해서 회사가 달라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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